최근 야당 대표가 공격받은 일로 세상이 시끄럽다. 정치적 의미와 결과는 차지하더라도 사건이 주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야당의 대표가 공격받은 대상이라는 점에서 사건 자체의 상징성이 작지 않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하기에 앞서 “왜?”라는 물음이 선행돼야 할 것 같다.
왜 그는 야당 대표를 공격했으며, 왜 그런 동기를 가졌으며, 그가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
테러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연구가 있지만, 실무나 학문적으로 한결같이 동의하는 바는 테러범들이 과거에는 무작위적으로 폭력을 폭발시켰으나 이제는 테러가 무작위 폭력이 아니라 철저하게 표적을 선택한 작위적으로 계획된 폭력에 가깝다는 것이다.
테러범은 테러가 주는 상징성이 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불안을 고조시킬 수 있는 대상을 표적으로 삼곤 한다. 이런 점에서 야당 대표에 대한 테러가 자행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 같은 유형의 범죄를 어떻게 규정하는 게 옳은 걸까? 아마도 신념이라고 믿을 정도로 확신에 찬 범행이라고 규정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야당 대표를 공격한 사람은 왜 확신 범죄자가 됐으며, 무엇 때문에 확신적 신념을 가졌을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확신 범죄는 종교적·정치적·인종적 또는 계층적 신념이나 편견의 소산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어떤 이유에서건 신념에 가까운 확신은 대체로 편견과 오해의 소산인 경우가 많지만, 잘못된 통념에 가까운 그런 편견과 오해가 깊어지면 일부는 ‘급진화(Radicalization)’되거나, 과격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극단적인 급진화는 테러와 같은 무자비한 반인륜적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부 집단이나 개인의 극단적 급진화는 대부분 자신이 편견과 오해를 가진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이 분노에 기름을 붇거나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일이 사건이 계기가 되면 극단적 폭력으로도 비화될 수 있다.
이를 범죄학에서는 ‘증오 범죄(Hate Crime)’라고 한다. 이런 증오를 동기로 하는 범죄는 대체로 자신이 증오하는 개인이나 집단을 표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표적 범죄(Target Crime)’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과거의 전통적 테러가 조직과 집단, 정치적, 종교이념 등과 결부됐다면, 오늘날 사회문제로 부각되는 ‘신종 테러(New Terrorism)’는 어느 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채 ‘나 홀로’ 행동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바로 ‘외로운 늑대(Lone Wolf)’이다.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자면 나 홀로라는 의미에 가깝지만, 무리서 쫓겨나 홀로 활동하는 늑대와 합쳐지면서 외로운 늑대로 해석됐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테러범은 테러 행위를 정의롭다고 확신한다는 데 있다. 교도소 수형자들의 사회적 역할을 연구한 교정학서 마치 정의를 위한 것처럼 행동하는 수형자를 ‘정의한(Right Guy)’라고 하는 것처럼 자신의 테러에 가까운 범행을 정의로운 행동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잘못된 확신으로 개인이나 집단을 증오하고, 스스로 급진화되고, 과격화해 반인륜적이고 폭력적 행동을 드러내는 걸까? 초창기에는 대부분이 종교적·정치적 이념이 빚은 비극이었지만, 최근에는 대체로 빈부격차, 소득의 양극화 등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채 사회를 대표하는 사람 및 집단에 자신의 증오를 표출하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한다.
과거에는 심각한 상대적 박탈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던 반면, 최근에는 사회 문제라고 믿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윤호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