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C 교수의 고민과 침묵

2024.01.08 11:52:01 호수 1461호

지난 연말 종무식을 마치고 회사 전 직원과 함께 오찬을 했다. 당시 종무식에 참석했던 C 교수가 “연휴 때 선악과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했다.



도시개발사업 기획 및 전략수립의 전문가인 C 교수가 에덴동산서 선악과가 주는 의미가 도시개발사업 기획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에덴동산은 인류가 죄를 범하기 이전 최초의 인류 아담과 하와가 거했던 기쁨의 동산이자 침묵의 동산이고,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가 있던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곳이기도 하다.

공학박사이자 프로젝트경영학석사이면서 개발투자전문가인 그는 ‘선악과를 만든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선입견을 버리고 한 번 하얀 종이 위에 그려보겠다”고 했다.

아무리 아름다운 기업혁신파크 같은 도시를 만들어도 거주하는 사람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기획 의도가 잘못 이해됐을 때 그 시행착오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가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 때 선악과나무 대신 무슨 나무를 심으면 좋을까?’를 고민했던 것 같다.


필자는 그에게 에덴동산이 만들어질 당시 침묵의 상황으로 들어가야 진짜 선악과와 선악과나무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해줬다.

태초에 온 세상은 침묵의 시간이었고, 침묵의 공간이었다. 그 최초의 침묵의 시공 속에 소리가 등장했고, 감정이 등장했고, 언어가 등장했고, 그래서 온 세상을 소리와 감정과 언어로 꽉 채웠다.

사람도 침묵이라는 무대를 배경으로 태어나지만, 인생이라는 무대서 온갖 연출을 거듭하면서 그 무대를 자신만의 연극으로 꽉 채운다.

또 언젠가는 세상도 사람도 종말과 죽음을 통해 다시 침묵의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결국 침묵은 과정 속에 있지 않고 처음 이전과 끝 이후에 존재하면서 과정보다 훨씬 거대한 처음과 끝의 영역으로 이해해야 한다.

교회학교 교사 시절 8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수련회서 죽음 체험프로그램을 가진 적이 있다. 한 사람이 들어갈 공간의 웅덩이를 파고, 한 사람씩 관(체험용)에 넣어 못을 박고, 웅덩이에 내려놓은 후, 흙을 뿌리면서 목사님이 기도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학생들과 달리 죽음체험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은 아무 말도 어떤 감정도 없는 침묵 그 자체의 모습에서 깨어나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필자도 죽음 체험을 했는데 내 삶의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진정한 침묵의 상태로 들어갔고, 체험을 마치고 난 후 다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필자의 침묵은 분명 내 삶의 과정 속에 있지 않고, 내 삶의 시작과 끝에 있는 침묵이었다. 침묵은 소리의 문제를 넘어 감정과 생명까지도 비워야 하는 인간 심연의 문제다. 지구촌도 탄생과 죽음, 그리고 생성과 소멸이 이어지면서 침묵의 시간이 연출되고 있는 곳이다.

에덴동산은 역사적으로 실재한 장소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하나님이 회복하실 지극히 복된 곳이고, 살기 좋은 땅으로 묘사됐다. 그리고 회개한 인간이 마지막 날 이르게 될 최종 목적지(천국)라고 성경은 설명하고 있다.

연휴 이후 그를 아직 만나지 않았지만, 만나면 지역균형발전 및 실현 가능성 높은 기업혁신파크 같은 도시를 기획 설계할 때 오동나무를 적시하라고 권하고 싶다.


에덴동산엔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가 있었지만, 새로운 도시엔 선악과나무 대신 사람이 죽을 때 관으로 사용하는 오동나무를 심어 삶의 끝을 체험할 수 있는 침묵의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다.

전국 지자체에 뉴에덴동산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그의 열정이 담겨있는 기업혁신파크 프로젝트가 세계적인 철학자와 사상가도 배출하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찾아와 삶의 근본적인 문제의 답을 얻어가는 공간을 만들어내리라 믿는다. 사람뿐만 아니라 기업도 혁신도 침묵서 답을 찾아야 한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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