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나의 화면 위 기억 조각들은 이 순간에도 관리하고자 치닫는 권력 체계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급류의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해 지금도 분투한다.” - 김정인의 작가노트 중.

김정인 작가의 개인전 ‘픽셀 메모리’가 라흰갤러리서 열린다. 김정인은 개인으로 상정되는 여러 파편 이미지를 접붙여 급변하는 시대적 현상을 성찰하고 모종의 관계망을 구축해왔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나무와 인물, 틈새와 천, 스케치 등 단편적인 조각을 정방의 픽셀 패턴으로 반복해 기하학적이고 입체적인 형상을 표현했다.

납작하게

이전까지 김정인은 이미지를 화면에 납작하게 쌓곤 했다. 하지만 이번 개인전에서는 다중적인 경험을 한층 입체적인 층위로 축적해 시간성이 해체된 이미지를 직조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기억으로서의 이미지를 분절한 후 이를 픽셀 단위로 무수히 나열해 누실된 시각적 기억을 회화로 조립하는 식이다. 

김정인은 인간의 망각을 배제하기보다는 가시화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종국에는 망각을 촉진하는 속도에 회화적으로 저항하기를 시도했다. 그의 소실된 기억을 은유하는 대표적인 대상은 전시의 중심 소재로 등장하는 나무. 이 모티브는 변화를 요구하는 세상의 압력으로부터 존재를 견디려는 작가 스스로의 저항술이다. 

문현정 독립 큐레이터는 “김정인의 전시에 등장하는 작품 속 여러 도상은 작품 전반과 공명하며 모든 이미지를 하나의 선상 위에 위치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를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체된 이미지 직조
시간의 관계망 형성

‘기억을 모으는 일’ ‘다시 세워지는 기억’ 등의 작품은 작가 개인이 주변서 경험한 나무, 그 시간 속에 남은 이미지로서의 잔상을 표상한다. 기억 속 단편적인 나무 조각, 인물 모습, 갈라진 틈, 흘러내리는 천, 작업을 위한 스케치 등은 반복되는 정방의 패턴 안에서 기하학적으로 얽혀있다. 

문 큐레이터는 “작품 ‘시간을 품은 잔해’는 부식된 천장의 잔해와 틈이 중심을 이룬다. 주차장의 천장은 시간에 따라 풍화되기도, 또 여러 잔해를 쌓아나가기도 하며 나름의 리듬을 형성한다. 이는 김정인에게 나무와 유사한 시간성을 드러내는 매질로 기능한다. 와해되고 사라지는 자연의 섭리와도 닿아있는 기물에 대한 기억은 전시장 내부의 여러 작품에 녹아들어 있다”고 말했다. 

김정인의 회화는 정방형의 입방체가 반복되는 형태를 통해 하나의 입체적인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하지만 이 같은 결과물은 단일한 형상으로 수렴되기보다는 모호하게 연결된 사슬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여러 시각 정보와 복합적인 시간성이 하나의 평면 위에서 2차원과 3차원을 오가도록 구성하며 회화적 시간의 관계망을 형성했다.

입체적으로

라흰갤러리 관계자는 “김정인은 현재진행형의 시간성을 지닌 회화가 직조되는 방식과 그 과정서 물리적 시간을 따르며 발생하는 변화를 표현해낸다”며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내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이미지의 정적 양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기억을 망실하게 하는 속도에 저항해 회화만이 담을 수 있는 시간의 현재적 실재성을 담아내고자 했다”고 전했다. 전시는 다음 달 9일까지.  

<jsjang@ilyosisa.co.kr>
 

[김정인은?]

▲학력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회화전공 박사과정 졸업(2022)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 석사과정 졸업(2018)
목원대학교 미술·디자인대학 미술학부 서양화전공 졸업(2016) 

▲개인전 
‘Pixel Memory’ 라흰갤러리(2023)
‘이미지 연대(Image Union)’ 서울시립미술관 SeMA창고(2022)
‘잔해 기록(Record of Fragments)’ 성곡미술관(2022)
‘녹일 수 없는 이미지(Image not able to be melted by harsh waves of change)’ 이응노미술관(2021)
‘견고하지 않은 땅을 딛고 서기(Standing firm on unsolid ground)’ 온수공간(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