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까지만 해도 건강했던 50대 초반의 거래처 이사가 임파선암으로 얼마 전 유명을 달리했다. 사타구니에 혹이 생기고 체중이 감소하고 식은땀을 자주 흘려 병원에 갔는데 너무 늦게 병원을 찾은 게 화근이었다고 한다.
흔히 ‘림프절’이라고도 불리는 임파선은 세균의 침입을 막으며 체내 이물질을 처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임파선암은 임파선에 생긴 악성 종양을 말한다.
불현듯 지난해 여름, 대구 처남댁에 가면서 괴산휴게소 도자기 가게에 들러 건강에 좋다는 겨드랑이 두드리개를 샀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도자기 가게 사장은 “우리 몸에 나쁜 균을 죽이는 림프구가 림프절에 모여 있는데, 겨드랑이에 림프절이 가장 많이 모여 있다”면서 “겨드랑이 마사지를 잘해줘야 건강에도 좋고, 임파선암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필자는 겨드랑이를 자주 두드리면 건강에 좋겠다는 생각에 콩나물 모양의 겨드랑이 두드리개를 샀고, 지금도 가끔 사용하고 있다.
우리 몸에는 혈관과 림프관과 신경관이라는 세 개의 순환관이 있다고 한다. 그중 신경관은 중간중간 끊어져 있어 아드레날린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전기를 신경세포에 전달하지만, 혈관과 림프관은 전체가 하나로 연결돼 혈액과 림프액을 순환시키고 있어 실제 우리 몸의 관은 혈관과 림프관이라고 한다.
혈액은 혈관을 통해 주로 우리 몸 곳곳을 돌며 산소와 영양분을 전달하고 노폐물을 제거하지만, 림프액은 림프관을 통해 주로 혈액이 운반하지 못하는 노폐물 중 단백질, 지방과 같은 커다란 덩어리를 운반하고, 체내에 침투한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의학 전문가들은 림프액 순환이 혈액 순환만큼 우리 몸에서 아주 중요한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혈액은 심장의 운동 기능에 의해 반복 순환되지만, 림프액은 주변 근육에 의해 천천히 순환된다. 운동을 하면 건강에 좋다는 근거도 바로 근육의 움직임이 기존 대비 활성화돼 림프액 순환도 더욱 빨라지기 때문이다.
림프절은 생체 내 전신에 분포하는 면역기관으로서 세균과 싸우는 림프구를 생성하고, 균 침입 시 림프구를 출동시켜 싸우게 하는 역할을 한다. 림프절은 아주 작게 생긴 강낭콩 모양인데, 사람의 체내에 500~600개 존재하고, 도자기 가게 사장 말대로 겨드랑이를 비롯해 사타구니, 목, 귀 뒤쪽에 주로 많이 모여 있다고 한다.
우리가 편도선염 또는 감기에 걸렸을 때, 목이 붓는 이유가 림프절서 체내의 면역세포와 바이러스가 서로 싸우기 때문이다. 림프계(림프관, 림프구, 림프절)가 망가지면 면역력이 저하되기 때문에 바이러스와 싸워 지게 되고, 결국 임파선암 같은 치명적인 병을 유발하게 된다.
사람의 혈관이나 림프관을 일직선으로 연결하면 각각 약 10만㎞에 달하며, 지구를 두 바퀴 반 정도 도는 거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렇게 긴 우리 몸 속 혈관은 상수도 같고, 림프관은 하수도 같기도 하다.
국가도 크게는 정치와 경제라는 두 개의 순환관으로 돼있다고 볼 수 있는데, 통치자의 국정운영 방향에 따라 정치나 경제가 혈관이 되기도 하고 림프관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대체적으로 정치가 혈관 역할을, 경제가 림프관 역할을 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정치가 림프관 역할을, 경제가 혈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혈관이 우리 몸에 산소를 공급하듯이, 경제가 우리나라에 행복하고 살맛나는 사회를 제공하고, 림프관이 우리 몸에 노폐물을 제거하고 바이러스 침투를 막듯이, 정치가 잘못된 규제를 없애고, 국가를 좀먹는 좋지 않은 바이러스를 퇴치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처럼 정치가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상수도 역할을 하고, 경제가 비전을 뒷받침하는 하수도 역할을 해선 안 되고, 경제가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상수도 역할을 하고, 정치가 이를 뒷받침하는 하수도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가 사고를 당해 혈관과 림프관이 손상될 때, 다친 부위가 붓는 것은 혈액이 고여 있어서가 아니라, 림프액이 고여 있어서라고 한다. 즉 우리 사회 곳곳이 환자처럼 퉁퉁 부어 있다는 것도 경제 상황이 원활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여야가 정쟁으로 민생을 챙기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혈관과 림프관이 둘 다 건강해야 우리 몸이 건강하듯이, 경제와 정치가 둘 다 안정돼야 국가가 안정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큰 문제가 생겨 사회가 불안할 땐 하수도 역할을 하는 정치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나라가 혈관은 건강했지만, 림프관이 망가져 명을 달리해야 했던 거래처 이사가 주는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제가 아무리 발달해도 정치가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면 세계 10대 강국인 우리나라도 언젠간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특히 정치인들이 명심해야 한다.
괴산휴게소 도자기 가게서 산 겨드랑이 두드리개로 우리나라 경제가 살아나라고 두드릴 게 아니라, 우리나라 정치가 살아나라고 두드려야 맞을 것 같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