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TV> 여자 안중근? ‘단지혈서만 세 번’ 여장군 남자현

2023.07.17 13:59:11 호수 1436호

얼마 전 티비를 보는데 OCN서 영화 <암살>이 나오더라고요.



“총알이 두 개지요!!”

아 역시 또 봐도 재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득 전지현씨가 연기한 안옥윤이란 인물의 모티브는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실존했던 남자현 열사를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만주 항일무장 운동의 유일한 여성 대원이었으며, ‘독립운동의 대모’ ‘세 손가락의 여장군’ ‘여자 안중근’ 등 다양한 칭호를 얻으며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던 남자현 열사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안중근 의사‘하면 가장 먼저 나는 생각나는 것은 아마 그의 잘린 손가락일 텐데요. 남자현 열사 역시 단지혈서를 쓴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녀는 세 번의 단지를 하여 세 손가락의 여장군이라고도 불리였는데요.

손가락을 자르는 것은 현재도 매우 고통스럽고 위험한 행위지만 당시에는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세 번이나 단지를 감행했던 남자현 열사, 어떤 이유에서였을까요?

세 번의 단지

1920년 8월 29일,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잘랐습니다. 당시 만주에는 90여개의 한인 독립운동 단체가 모여있었는데, 각기 다른 입장을 고수하며 균열이 일어나 세력분열이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그녀가 ‘나라를 빼앗긴 수모를 잊지 말자(일제 강점 현실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8월29일 국치일(대한제국의 통지권을 빼앗긴 날) 기념식을 행하던 자리서 엄지손가락을 절단하며 단결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50세에 가까운 나이로, 그것도 남성이 아닌 여성이 손가락을 자른 것은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을 충격에 빠뜨리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분열은 멈추지 않았고, 1922년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탄핵 등으로 갈등의 최고조에 달아 유혈 사태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때 그녀는 '독립군의 단결이 우선(싸워선 안 된다)'이라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검지 손가락을 절단하기로 합니다.

당시 주변인들의 만류에도 그녀는 ‘내 손가락을 아까워하지 말고 민족과 동지를 아까워하라‘라는 말을 남기며 두 번째 단지를 실행합니다.

1932년 일제는 대륙침략을 목적으로 만주국을 설립합니다. 이에 대한 실상을 조사하기 위해 국제연맹 조사단에서 하얼빈으로 실사를 나오는데요.

남자현 열사는 어떻게 하면 일제의 만행과 조선의 상황을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다 세 번째 단지를 결심하며 약지를 절단합니다. 잘린 손가락과 ’조선독립원(조선은 독립을 원한다)‘이라고 적은 혈서를 국제연맹 조사단에 전달하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일본의 삼엄한 경계로 실패합니다.

 


두 번의 암살

1926년 순종이 사망하고, 사이코 마코토 총독이 조문을 온다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독립지사들의 제거 대상 1순위였던 사이코 마코토 총독을 암살하기 위해 남자현 열사는 계획을 세우는데요.

그러나 그녀보다 빨리 행동을 취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송학선 의사입니다. 그는 창덕궁 금호문에서, 마차에서 내리는 일본인 셋을 죽입니다.

당시에는 사이코 마코토의 사진이 있던 게 아니기에 송학선 의사는 그의 얼굴을 몰랐고, 그로 추측되는 인물들을 암살한 것인데요. 안타깝게도 일본인 셋 중에 마코토는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일본의 경비가 더욱더 삼엄해졌고, 남자현 열사는 다음을 기약하며 만주로 돌아갑니다.

1933년 3월1일 그날은 만주국 설립기념일이었습니다. 남자현 열사는 설립행사에 올 만주국 대사 부토 노부요시를 암살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를 위해 폭탄이나 총 등을 과일상자 등에 숨겨 들어오기로 계획하는데요.

이일이 바로 영화 <암살>의 모티브가 된 사건입니다. 이미 일본군에 얼굴이 노출된 남자현 열사는 걸인 노파로 변장하는 것도 모자라 직접 칼로 얼굴을 그어 상처를 만듭니다.

그렇게 2월27일 남자현 열사를 포함해 세 명이 투입되어서 무기를 나르던 중, 의열단원 행세를 하며 250명을 밀고한 악질 친일·반민족 행위자 ‘이종형’에 의해 그녀는 일본 경찰에게 붙잡히고 맙니다.


거사를 치르기 전 남자현 열사는 자신은 이미 60이 넘은 나이이니 죽어도 여한이 없으며, 혹시라도 일본군에게 발각된다면 혼자서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밀정에 의해 감옥에 투옥된 남자현 열사는 6개월간 모진 고문을 당하다 심각한 건강악화로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5일 만에 순국하십니다.

단지와 암살 이외에도 남자현 열사는 독립을 위해 수많은 일을 하던 분이었는데요.

남자현 열사와 관련된 추가적인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남자현 열사의 행적과 기록, 후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모은 자료를 토대로 그녀의 생애를 재구성한 이상국 저자의 ‘나는 조선의 총구다’를 한번 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기획&구성&편집:김미나
일러스트 : 정두희

<emn20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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