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옥지훈 기자 = 일본 정재계를 주름잡던 야쿠자들이 좀도둑 신세가 됐다. 한 야쿠자 출신 60대는 과수원서 과일을 훔치다 걸리기도 했다. 야쿠자를 향한 관심도가 시들해졌고, 조직원들이 노쇠화에 접어들면서다. 이른바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1990년대 일본은 버블 경제가 꺼지면서 정재계가 연루된 야쿠자를 대거 소탕했다. 이후 젊은 조직원들은 궁핍해진 삶에 조직을 떠났다. 야쿠자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지면 5년간 취직할 수도 없다. 반면 국내에선 아직 조폭이 판을 치며 각종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 국민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 신준호 부장검사는 2020년 10월 서울 하얏트호텔서 난동을 부린 조직폭력배 윤모씨 등 12명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지난달 기소했다. 이들은 윤씨와 수노아파 부두목급으로 알려진 최씨가 모그룹 회장이 운영하는 사모펀드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자 모 회장이 인수한 호텔서 난동을 부렸다.
조직원이
120명이나?
당시 수노아파 조직원들은 호텔 레스토랑서 밴드 공연 중이던 악단과 앉아 있던 손님들에게 나흘간 난동을 부린 것으로 확인됐다. 또 모 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면서 전신의 문신을 드러낸 채 단체 사우나를 이용하거나, 객실서 흡연하는 등 위협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2월 경찰은 모그룹이 이들을 고소하면서 수사를 시작해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보완 수사 과정서 사건과 관련 있는 수노아파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서울 합숙소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펼쳤다.
검찰은 수노아파 규모가 더 확장된 것으로 보고 조직원이 120명가량 될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나 이번 하얏트호텔 사건으로 핵심 조직원을 대거 구속하면서 사실상 조직이 와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수노아파를 포함한 폭력조직에 조직원으로 가입해 활동만 하더라도 범죄단체조직죄 혐의로 처벌받는다.
범죄단체조직죄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또는 집단을 구성하거나 조직원으로 활동할 때 적용된다.
이에 검찰은 수노아파에 신규 가입해 활동한 행동대원 27명도 범죄단체조직죄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이들은 2016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수노아파에 가입해 윤씨와 최씨의 지시에 따라 사건에 가담했다.
경찰은 윤씨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고소 취하가 반영돼 기각됐다. 경찰은 윤씨 등 12명을 검찰에 불구속 송치해 현재 풀려나 재판을 받고 있으며 윤씨는 수노아파 조직원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번 난동 사건이 단순 업무방해가 아닌 중대 폭력조직 사건으로 판단해 재수사에 돌입했다. 수노아파 강남 합숙소와 운영 유흥주점 등 6곳을 압수수색했고, 이들의 단합대회 첩보들을 입수해 연락책을 구속 수사하면서 조직 구성과 규모가 새롭게 밝혀졌다.
검찰은 모 회장과 모그룹의 불법 행태 관련 수사도 이어갈 방침이다. 모 회장의 4000억원 대 배임 혐의 및 사모펀드 관련 의혹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매각 입찰 방해 의혹 등을 수사 중이다. 해외 도피 상태인 모 회장은 인터폴 적색수배 및 여권 무효화 조치가 내려진 상태다.
폭력조직도 세대교체?
양성소 ‘또래 모임’
검찰은 모 회장 귀국을 압박하기 위해 수노아파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CCTV, 계좌·통화내역 재분석을 통해 수노아파 합숙소 2곳, 조직원 운영의 유흥주점 등을 파악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수사 과정서 수노아파가 경찰 수사를 받는 도중에도 20여명 이상의 신규 조직원을 추가 모집한 정황이 드러났다.
검찰은 행동대원으로 새로 가입한 조직원 21명도 범죄단체조직 혐의 등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조직원 39명이 기소되고, 주요 가담자들이 구속되면서 고령자들을 제외한 주요 활동 조직원들이 사법처리 대상이 돼 조직 재건에는 장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전국의 주요 폭력조직들이 계파를 초월한 이른바 ‘또래모임’이라 불리는 정기모임을 통해 연대를 강화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수사 과정서 조직원들의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SNS 등에서 확보한 사진을 공개했다.
검찰은 또래모임이 전국 주요 조직폭력배들이 모인 정기 회합이라고 내다봤다. 조직폭력배들은 계파 상관없이 온·오프라인상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각 조직끼리 연대를 강화해나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요즘 조폭들은 예전처럼 계파별로 패권 다툼을 하거나 정면승부를 하게 되면 모든 조직이 와해된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소위 전쟁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다”며 “대신 성매매 같은 불법 사업을 여럿이 참여하면서 서로 연대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조직이더라도 경쟁이 아닌 공생관계로 함께 군림한다는 것이다.
계파 상관없이
정기적인 모임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또래모임은 ‘00년생 모임’ 같이 태어난 연령별로 형성된다. 조직이 달라도 해당 모임을 통해 음성적인 사업을 함께 하며 세력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팀 관계자는 “10여개의 연합이 있고 유사시에는 각 또래모임을 동원하는 식으로 조직돼있다”고 설명했다.
또래모임 중 이제 막 성인이 된 조직원들로 구성된 모임도 있었다. 2004년대생으로 구성된 ‘04모임’은 소위 ‘대기조’라고 불린다. 이들은 불법 성매매 업소 운영과 대포통장 유통업 등을 하면서 수익을 올리고 미성년자들을 포섭해 대기조로 만들어 세대를 확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또래모임을 두고 “전국구서 각 지역 1등이라고 불리는 조직들만 모인 모임”이라며 “나름 지역서 1등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어울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모임 자체가 범법 행위로 볼 수 없지만, 또래모임 명단이나 모임을 가진 행태는 추후 조폭 수사의 단서가 될 수 있다. 검찰이 관리하는 폭력조직원 명단을 통해 기존 가입 여부와 최근 가입 여부를 가려 이들이 연루된 범죄를 조폭 관련 범죄인지 뒷받침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검찰 관계자는 “단순히 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닌 올 하반기에 대대적인 조직폭력배 관련 수사 단서 발굴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수노아파는 국내 10대 조직 중 하나로 알려진다. 1980년대 목포서 결성된 후 1996년 해당 지역 내에서 패권 싸움을 하던 ‘오거리파’와 마찰을 빚고 오거리파 행동대장 김모씨를 살해하면서 조직의 존재가 드러났다.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조폭 소탕’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와해된 세력들 다시 뭉친다
10대 가담 지난 5년간 최대
경찰은 수배령을 내려 사건에 가담한 조직원들을 체포해 살해 혐의로 구속했다. 수노아파 부두목과 조직원으로 수배됐던 장모씨와 김모씨는 광주 시내서 경찰의 검문을 받자 위조된 신분증을 제시했다가 공문서 위조 혐의 등으로 긴급 체포됐다.
이후 1997년 6월 법원 판결을 통해 범죄조직으로 등록돼 관리대상이 됐다. 그 뒤 와해된 조직이 2000년대 들어서 세력을 서울로 확장해 전국 10대 폭력조직으로 몸집을 키웠다. 당시 경찰에 따르면 조직원은 65명 정도 규모로 지역 다른 조직폭력배들도 규합해 ‘연합수노아파’를 만들었다.
이들은 흉기들을 합숙소에 배치하고 차량을 대기시켰다가 이권에 개입할 때마다 곧바로 출동해 무차별 폭행을 행사했다. 조직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호텔 나이트클럽과 건설 공사장, 유흥업소 등 음성적인 사업에 이권을 얻기 위해 개입해왔다.
수노아파는 2002년 12월에는 인천 소재의 한 호텔 나이트클럽 대표를 흉기로 위협해 17억원 상당의 지분을 갈취했다. 또 경기도 용인과 인천 등 수도권 일대 아파트 공사장서 28억원 상당의 철거 공사권을 빼앗는 등 총 51억원가량을 갈취했다. 당시 조직원 규모만 1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경찰은 2006년 수노아파 일당에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검거에 나섰다. 이번 하얏트 호텔 사건과 관련 있는 최씨는 당시에도 조직 부두목으로 활동했다. 당시 경찰은 최씨 등 42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도주한 두목 염씨 등 19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수배에 나섰다.
10여개 조직
연합 움직임
이들은 2002년 초부터 서울 강남, 마포구 등 일대 4곳의 합숙소를 운영하면서 조직원들을 관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마른 체구의 조직원에게는 하루에 6끼를 먹게 하고 인형을 상대로 흉기를 휘두르는 연습까지 하면서 이권 개입에 힘을 실었다.
수노아파 행동강령에는 조직원이 구속 수감될 경우 윗선서 변호사 선임 비용을 부담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합숙소 부근에서는 조직원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었다.
수노아파는 1990년대 중반 와해됐지만, 지방 조직폭력배 세력을 흡수하면서 2000년대 초반 연합수노아파를 결성했다. 이후 행동대장을 포함한 주요 조직원들이 10년 만에 또다시 검거되면서 조직이 사그라드는 듯했으나, 최근까지 활개를 치고 있다.
지난해 폭력 등 범죄행위로 경찰에 붙잡힌 조직폭력배 중 10대가 전년 대비 2배 넘게 증가했다. 조직원들 사이서 세대교체와 신규 유입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은 지난 3월에 “지난해 조직폭력 범죄 검거 인원이 3231명으로 전년(3027명) 대비 6.7% 늘었다”고 밝혔다. 연령대별 검거 인원 중 60% 가까이가 20~30대고, 40~50대가 35%가량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조직에 가담한 10대 조직원은 210명으로 전년(98명) 대비 112명이나 늘었다. 같은 기간 신규 가입해 활동하다 붙잡힌 조직원은 244명으로 전년(203명) 대비 31명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조폭 세계서도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텔 난동사건 전말은?
각 조직끼리 연대 강화
지난해 광주지역 한 폭력조직은 소위 일진이라 불리는 10대 중·고등학생들에게 조직에 가입하라고 꼬드긴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10대들에게 고가의 의류와 식사를 사주는 등 호감을 얻고 조직에 가입하라고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심 한복판서 폭력 조직간 싸움이 벌어져 38명의 조직원들을 검거했다. 이 가운데 6명은 10대의 미성년자로 소년보호사건 처분을 받았다.
폭력 조직 생활을 그만두겠다는 10대를 폭행한 조직폭력배들에게 법원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0대 A군은 조직폭력배가 되고 싶다며 알고 지내던 조직을 찾아갔다. 그러나 며칠 뒤 조직생활을 하다가 같은 폭력조직 선배에게 “조직생활을 그만하고 싶다”고 말하자, 이들은 이에 격분해 A군을 폭행한 것이다.
조직폭력배들에 관한 동경이 늘면서 범죄에 연루돼 검거되는 10~20대가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 10대 조직폭력배 가담률은 5년 새 최고치다. 경찰청은 조직폭력배 명단을 다시 구축해 전담수사팀을 중심으로 특별단속에 나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특별단속 외에도 변종 조직폭력배 활동에 대한 수사 관리체계를 유지할 계획이다.
이른바 ‘조직폭력배 출신 유튜버’ 등이 생산하는 불법 콘텐츠가 관리 대상이다. 전·현직 조직폭력배들이 출연하는 유튜브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청소년들이 모방범죄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해당 유튜버들은 조직폭력배 생활 당시 무용담으로 범죄행위를 미화하고 경찰 수사 내용을 방송에 내보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방 세력들
흡수해 확장
경찰은 해당 조직폭력배들이 인터넷 방송을 통해 하나의 수입원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5년간 청소년들이 인터넷 방송 등을 통해 조폭 유튜버들이 미화한 범죄 경험담을 접하고 나서 조폭 가담률이 늘고 있다”면서 “해당 인터넷 방송 채널에 아무리 연령제한을 걸어도, 부모님이나 지인 등의 계정을 빌려 시청하기 때문에 이를 단속할 수가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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