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중남미 거점 늘려가는 중국 속내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2023.04.10 16:03:42 호수 1422호

중남미 국가 온두라스가 지난달 26일, 82년 외교관계를 맺어왔던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전격 수교했다. 이번 중국·온두라스 수교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을 앞둔 시점에 이뤄져 미국과 대만의 체면을 손상시킨 중국의 외교적 쾌거였다.



중국은 독립 성향의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취임한 2016년 이후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며 중남미서 대만의 외교적 고립정책을 펼쳐왔다. 그 결과 2017년 파나마, 2018년 도미니카공화국과 엘살바도르, 2021년 니카라과가 차례로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이제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리는 중남미서 카리브해 국가를 제외하면 과테말라와 파라과이만 대만 수교국으로 남게 됐다. 중남미서 중국의 영향력은 커졌고, 대만을 지지하고 있는 미국의 영향력은 작아졌다는 증거다. 

미국이 21세기 들어 중남미와 정치, 경제, 외교관계서 완벽한 힘의 우위를 점하면서 중남미를 경쟁이 필요 없는 지역으로 여기고, 유럽, 아시아, 인도 태평양 지역에 공들이고 있을 때, 중국은 2002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후 중남미에 지속적으로 공들여왔다.  

중국이 중남미에 공들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우선은 석유, 광물, 농산품 등의 확보와 수출시장 확대라는 경제적 요인을 들 수 있지만, 속내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뒷마당을 점령하려는 지정학적 전략에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중국의 중남미 진출은 미국이 중국의 앞마당 정도 되는 한국과 일본에 거점을 만들어 중국을 견제하고 있듯이, 중국도 미국의 뒷마당으로 불리는 중남미에 거점을 만들어 미국을 견제하겠다는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과 친한 대만을 중남미서 고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실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1994년 ‘미주정상회의’를 시작으로 4년마다 북미, 중남미, 카리브해 지역 정상들과 함께 중요 지역 및 글로벌 현안에 대해 논의하면서 중남미와 협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써왔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미국이 ‘비민주적으로 통치되고 있는 국가의 정상은 초청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정상 등을 미주정상회의에 초청하지 않았고, 이에 좌파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중남미 국가들이 강한 불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후 중남미 국가들이 미주정상회의에 불참하거나 대표단만 보내면서 미국 주도의 미주정상회의는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렇게 미국이 중남미 국가들에 경제 회복, 식량안보 같은 경제적 협력보다 인권, 이민 같은 정치적 간섭에 더 비중을 두며 압박하자, 중남미 국가들이 ‘중남미국가공동체’를 만들어 미국의 패권행위와 강권정치를 규탄하기 시작했다. 

중남미국가공동체는 통일된 방법으로 중남미 각 부분을 전체로 묶어, 세계서 가장 광범위하고 탁월하며 또 강력한 국가연맹을 건립하는 데 목적이 있지만, 사실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다. 

혹시 미국의 중남미 전략이 현재도 중남미에 경쟁세력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중남미서 미국의 패권에 저항하는 불만 세력을 없애는 것이라면 큰 오산이 아닐 수 없다. 중남미는 이미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는 패권 싸움터가 됐다. 미국이 중남미 국가들과 모든 문제를 대할 때 이제는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의미다.

미국이 미·중 패권싸움을 할 때 한반도에선 한국 한 나라만 상대해도 되지만, 중남미에선 여러 나라를 상대해야 한다. 그만큼 중남미가 미국 입장에서는 가깝고도 먼 이웃이 됐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미국이 간과한 결과다.

중국 입장에선 중남미가 멀고도 가까운 이웃이 됐다. 미국이 분단된 한반도를 핑계로 한국에 사드를 배치한 것처럼 중국도 언젠가는 중남미에 군사 거점을 만들기 위한 명분을 찾을 것이다. 중남미 국가들도 아직까진 중국을 차이나머니 찬스를 활용하는 국가 정도로 여길지 모르지만, 머지 않아 군사동맹까지 이어지는 게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라는 걸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중국도 중남미 국가들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는 이유만으로 중남미 모든 분야서 미국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중남미 국가들이 미국과 단교한 게 아니고 아직도 미국과는 전통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남미가 중국 쪽으로 기울고 있는 데도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태도와 인식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미국에 대한 중남미의 태도가 변했을 뿐이다. 


미국은 중국이 중남미서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현재의 경제적 상황만 볼 것이 아니라 언젠가 중남미가 중국의 군사 거점으로 변할 수 있다는 미래의 안보적 상황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최근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과 러시아 간의 군사협력 움직임이 빈번한 것을 보면 중남미서 중국의 군사적 거점 확보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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