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비밀경찰 의혹’ 왕해군 황금 인맥 추적

2023.01.09 11:36:17 호수 1409호

왕서방 뜨자 서둘러 인연 지우기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정부와 중국의 관계가 악화일로다. 국제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가 공개한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 의혹 문건이 화근이 됐다. 국내에서는 서울의 한 중식당이 비밀경찰 의혹의 중심에 섰다. 중식당 주인 왕해군 동방명주 대표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으나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하지 못했다.



왕해군 동방명주 대표는 중식당 사업 외에 여러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정치권 인사들과의 교류가 끈끈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라인인 국민의힘 친박(친 박근혜)계 인사를 포함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친분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으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 등이 꼽힌다.

세이프가드
의혹 폭로

스페인 마드리드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세이프가드 디펜더스’(이하 세이프가드)는 지난해 9월, 중국이 ‘해외 110 서비스 스테이션’이라는 이름의 비밀 해외경찰서 54곳을 불법 운영 중이라고 폭로했다. 최근에는 한국 등 48곳에서도 추가 시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10은 한국의 ‘112’에 해당하는 중국 경찰 신고번호다. 이 단체는 중국이 비밀경찰서를 통해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 국적자들을 감시하고 괴롭히며 경우에 따라 본국으로 송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이프가드가 공개한 ‘해외 110. 중국의 초국가적 치안 유지 난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중국이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 21개국에 54개의 비밀경찰서를 개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도망친 중국 반체제 인사들을 비밀경찰서에서 잡아들이고 정보를 수집하는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당시 중국 당국은 이 시설들이 주재국 현지에 사는 중국 국적자들의 운전면허 갱신이나 여권 재발급 등 서류 작업에 행정적 도움을 주려는 것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공관이 문을 닫는 등 서류 작업이 지연되면서 어려움을 겪은 중국 국적자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시설들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세이프가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해외 110 서비스 스테이션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 대유행보다 몇 년 전이다. 중국 당국의 해명과 달리 중국의 비밀경찰서는 일본과 캐나다 등 세계 곳곳에서 실체가 속속 확인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지난달 19일 도쿄 등 2개 도시에서 중국 공안국이 개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비밀경찰서를 파악했다고 보고했다. 또 캐나다 경찰도 지난해 10월27일 토론토 일대에 3곳의 중국의 비밀경찰서가 설치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네덜란드 정부도 지난달 1일 자국 내 ‘중국 불법 경찰서’ 2곳을 즉시 폐쇄했다고 발표했다.

미국도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 의혹에 우려를 표명했다. 지난 11월 미 연방수사국(FBI)의 크리스토퍼 레이 국장은 미 상원 국토안보위원회에서 의원들의 관련 질의 때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 경찰서들의 존재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100여곳 존재
일부 국가 조사 후 폐쇄

우리 정부도 범정부 차원에서 국내의 중국 비밀경찰서 실태 파악에 나섰다. 이번 실태 파악은 군과 경찰의 방첩 조직과 외교부 등 관련 정부부처가 동원됐다.

국내 중국 비밀경찰서로 지목된 동방명주 식당 대표 왕씨는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나섰으나 의혹을 말끔하게 해소하지 못했다. 동방명주는 자본 잠식 상태에도 불구하고 5년 동안 영업을 해온 사실 등으로 인해 방첩당국의 의심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3000만원에 달하는 월세를 내지 않아 이 식당의 운영권을 가진 임대인과 갈등을 빚는 상황이다.

적자에도 불구하고 운영을 지속하다 의혹 제기 후 문을 닫았다는 지적에 대해 왕씨는 “총 60년의 계약을 체결하고 이미 45억원 이상을 리모델링 등에 투자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라며 “(영업 종료는)새로 유선장을 인수한 업체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선박 안전 문제가 제기됐던 것이고, 타이밍이 공교로웠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왕씨는 자신을 ▲한화중국평화통일촉진연합총회 및 중국재한교민협회 총회장 ▲중화국제문화교류협회장 ▲서울화조센터(Overseas Chinese Service Center·OCSC) 주임 ▲서울 화성예술단장 ▲동방명주 실질 지배인 ▲HG문화미디어 대표 등으로 소개했다.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를 중국으로 송환하는 것을 돕는다는 의혹이 제기된 OCSC에 대해서는 “중국 국적의 중환자나 정신질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안전하게 귀국하도록 도운 것”이라며 “반중 인사 강제 연행 같은 일은 절대 없었으며, 그럴 능력이나 권한도 없다”고 강조했다.

법무부·경찰
관계자들 접촉

OCSC는 국내에서는 화조중심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비밀경찰서로 이어지는 통로로 알려져 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OCSC는 국무원 화교판공실의 지원을 받아 현지 중국교포들을 위한 긴급 지원, 통일 교육, 법률 지원, 빈곤 완화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단체다.

하지만 중국 언론의 설명과 달리 OCSC는 단순한 민간단체가 아니다. 2016년부터 화조중심센터 대표를 맡아온 왕씨는 2017년 5월부터 서울 영등포 여의도 인근 한강 유람선에서 주한중국대사관 영사부, 서울 남부 출입국 관리사무소, 재한중국교민협회총회 등을 초대해 화교와 중국인의 고충을 해결해주기도 했다.

이들은 세미나에서 ▲중국인이 귀국 시 국민연금 되돌려 받는 법 ▲취업비자 발급방법 ▲중국 방송 불법송출 예방법 등을 정부 관계자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왕씨와 부인 배모씨(39)는 평소 ‘친중 행보’를 보여온 것으로 전해진다. 왕씨는 중국 관영매체 <신화통신> 자회사인 한국채널과 문화콘텐츠업체, 재한교민협회, 중국화교연합회 등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개발·여행·문화교류 등 사업에도 참여한 바 있다.

배씨 또한 유명 연예 엔터테인먼트 F사의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리고 중국 자본이 들어간 사극 드라마 제작에 참여했다.

2002년 왕씨가 중국재한교민협회총회를 설립할 때 “협회의 취지와 방침은 ‘중국의 교민사업’과 ‘평화통일 사업’을 위한 것”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은 이들이 “우리는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부의 관리를 받는다” “중국대사관의 지도를 받았다”고 언급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통일전선부는 중국 공산당 하부 조직으로 해외 정계·고위 공직자와의 교류, 중국에 대한 비판 약화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영사 역할
OCSC 실체

OCSC는 중국 반체제 인사들에게 비판적이었던 한국 화교 1세대 인사의 건물에 주소지를 둔 바 있다. OCSC는 2015년 서울 강남구의 한 빌딩에 입주했다. 이 건물은 한국 화교사회의 원로였던 고 한모씨가 소유했다가 현재는 아들 명의로 돼있다.

한씨는 2002년 중국 교민협회를 주도적으로 세웠고 초대회장을 맡았다. 이 협회는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며 대만과 홍콩의 독립에 반대하고 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기 위한 취지로 설립됐다. 종종 반체제 인사에 대한 비판 의견도 냈다.

한씨는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비공식 주치의로서 한·중 수교를 위한 ‘비밀특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만큼 중국 내 인맥이나 영향력이 탄탄했던 인물로 볼 수 있다.

OCSC는 중국 국무원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소속 관할구역 ‘대사관’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중국 화교 네트워크’ 홈페이지에는 2015년 ‘한국 화조중심’이라는 제목과 함께 관할구역, 교단명칭, 연락 방법 및 주소와 전화번호 등이 나와 있다.

화조중심은 OCSC의 중국식 표기다. 중국 국무원 소속 화교판공실이 교민들을 위한 정보제공을 위해 운영하는 홈페이지로 일종의 정부 공식정보인 셈이다. 이 게시글에는 관할구역을 뜻하는 관구에는 ‘사관’이라고 적혀 있다. 통상 ‘대사관’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OCSC는 2017년부터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까지 ‘1일 영사관’ 행사를 진행했다. 2017년 5월과 12월에는 한 업체에서, 2018년 10월에는 동방명주에서 진행했다. 이렇게 세 번의 행사에는 주한중국대사관 영사부 직원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찰청과 법무부 관계자도 참석했다.

윤상현·홍문표·김두관…
정치권 막강 라인 과시

경찰청, 법무부 직원들은 이 자리에서 생활안전, 출입국 등에 관해 중국 교민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왕씨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의외의 정치권 인맥을 형성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2015년 8월 왕씨는 한중민간경제협력포럼 정례회에서 당시 대통령 정무특보였던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과 이기주 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장석영 전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실 선임행정관, 유진규 전 동티모르 대사, 정승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오신환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을 만났다.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과의 인연도 있다. 김 의원은 경남도지사 시절 2012년 중국 투자 유치와 경남 관광 홍보를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 김 의원의 자녀는 2004년 베이징에 머물며 공부해 중국인민대학을 졸업해 중국은행 서울지사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2020년 10월 동방명주에서 열린 ‘태권도 세계화 개척의 역사 사진 전시회’에 참석했다. 당시 월남전 파견 교관단과 국회태권도협회장인 국민의힘 홍문표 의원과 윤 의원, 윤영석 의원,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김두관 의원, 서춘수 전 함양군수가 참석했다.

김 의원은 같은 해 11월12일 왕씨와 동방명주에서 ‘코로나 시대 한·중 문화 및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왕씨와 김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한·중 발전을 위한 기자협의회’ 발대식이 열리기도 했다.

2021년 6월에는 조선족 경제인들의 구심체가 되는 재한동포경제인연합회가 창립됐다. 이 자리에는 김 의원을 포함해 문희상 전 국회의장, 민주당 이해찬·이낙연·송영길 전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 김무성 국민의힘 전 의원 등이 참석했다.

여야 가리지
않고 친분

중국 측에서는 중국 외교부 산하 아주경제발전협회 권순기 회장과 왕씨가 자리했다. 같은 달 열린 서울차세대영화제에는 윤 의원과 이왕재 서울대학교 교수가 참석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형식적 자리에 간 것이지, 왕씨와 깊은 친분이 있는 분들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도 “윤상현 의원이 실제로 왕씨와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서로 아는 사이라는 게 논란이 될만한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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