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임금피크제’ 예견된 혼란

2022.06.08 09:23:23 호수 1378호

허술하기 짝이 없는 ‘묻지 마 감액’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임금피크제는 중고령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논의됐고, 기업들은 2010년과 2019년 사이에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하지만 노사 간 쟁점이 될 거라고 지적됐던 ▲임금 조정 시점 ▲임금 감액률 등의 문제는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이 된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고 그 대신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보통은 정년을 60세로 늘려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고 정년 3~5년 전부터 단계적으로 임금을 삭감해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거나 정년 후에도 고용을 연장한다. 

단계별 축소

이때 삭감에 들어가기 직전 월급은 ‘피크 월급’이라고 한다. 임금피크제에서 월급이 삭감되는 것은 주로 그만큼의 나이가 됐다는 의미다. 임금피크제 도입은 1998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생산성과 인건 비용 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기업경영의 과제를 해결하려 경영자와 근로자 사이에 합의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 제도는 1998년 일본에서 정년 60세를 의무화하면서 먼저 도입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2013년에 임금피크제가 도입됐으며, 당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체는 8.3% 정도였다.

2016년부터는 ▲삼성 ▲LG ▲롯데 ▲포스코 등 11개 그룹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2019년에는 도입 사업체가 21.7%로 크게 상승했다. 


지난달 26일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퇴직자 A씨가 자신이 재직했던 한 연구기관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고령자 고용법 4조의4 1항의 규정 내용과 입법 취지를 고려하면 이 조항은 연령 차별을 금지하는 강행 규정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며 “이 사건은 임금피크제를 전후해 원고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일정 연령 근로자 임금 삭감하고 정년 보장
“연령 이유로 한 도입은 위법” 잇단 판결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4조에는 ‘사업주는 연령을 이유로 하는 고용차별을 없애고, 고령자의 직업능력 계발‧향상과 작업시설‧업무 등의 개선을 통해 고령자에게 그 능력에 맞는 고용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정년 연장 등의 방법으로 고령자의 고용이 확대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기재됐다.

이날 대법원은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경우란 연령에 따라 근로자를 다르게 처우할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달리 처우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정도 등이 적정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고 기준을 설정했다. 

임금피크제의 문제점은 도입 때부터 있었다. 이미 앞선 대법원 판례에서 임금피크제가 얼마나 허술한 제도인지 드러난다.

교육서비스업을 하는 A 회사는 2006년 임금피크제 개념과 같은 직급 정년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직급 정년제 도입 과정에서 소속 근로자의 의견을 취합하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9년에 A 회사는 직급 정년제 도입과 임금피크제 실시 등을 골자로 한 취업 규칙 개정안에 대해 전체 직원 84.4%의 동의를 얻었다.

그러나 84.4% 동의를 얻는 과정 중 문제가 발생했다. 취업 규칙을 변경한다는 취지는 간단하게 설명하고 의견 취합 일정만을 기재한 서면에다 변경될 제도 내용을 요약해 사내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취업 규칙 마음대로 
소송 대응만 늘어나

특히 취업 규칙 개정안 동의 여부를 파악할 때는 ‘취업 규칙 및 제규정 변경 동의서’란에 직무 등급과 사번, 그리고 성명을 기재한 후 해당란에 마련된 ‘찬성’과 ‘반대’ 중 본인의 서명하는 방식을 취했다. 


관리자인 지점장은 직원을 직접 대면해 동의서를 교부 및 징구하고, 기명날인된 찬반 의사를 취합해 회사의 인사팀에 보고했다. A 회사의 직원은 불합리한 상황에도 관리자 때문에 찬성에 체크할 수밖에 없었다.

A 회사 임금피크제는 직급별로 정년을 2년간 연장하는 대신 직무 등급별로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거나 직급 정년제에 해당할 경우 단계별로 임금을 축소했다. 

정년은 57세다. 바뀐 취업 규칙에는, 가장 직급이 높은 B는 50세부터, 그 다음 C는 48세, D와 E는 55세부터 역산해 약 10여년 이전부터 임금을 삭감했다. 위 연령 기준에 도달하지 않은 근로자도 직급 정년제 적용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했다. 

이에 대법원은 “임금피크제 시행을 위한 취업 규칙 개정에 있어 근로자들의 동의 의사를 구할 때 회의 방식을 통한 근로자들의 자율적이고 집단적인 의사결정 방식을 보장해야 한다”며 “그러나 회사 측이 취업 규칙 개정을 위한 의견수렴을 소수의 관리자가 했다. 해당 절차에 회사 측의 관여도를 직간접적으로 확보하려는 조치로 이해된다”고 판시했다.

고령화 대비하고 청년 취업률 늘려?
차별받는 근로자만 늘어나는 현실

아울러 “이 사건 임금피크제의 경우 불이익의 정도가 너무 심하고 통상적인 임금피크제의 성격과는 너무 달라 사회통념상 합리성도 없다”고 덧붙였다.

판례에서 보듯 임금피크제의 문제점은 첫 도입 시기부터 있었고, 그 문제가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박근혜정부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정년 60세 의무화 시행 전 ‘청년고용확대’ 및 ‘청년고용절벽’을 이유로 강행했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을 발표했고, 여기에는 ‘퇴직 연장자만큼 신규 채용을 실시하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되, 이미 도입한 기관도 권고안에 따라 제도를 보완할 것’을 명시했다.

그러나 당시 정년까지 도달해 퇴직하는 비중은 10% 수준에 불과했다. 노동자의 평균 1차 퇴직 연령은 53세며, 취업 경험이 있는 고령층인 만 55세부터 64세가 이직한 평균 연령은 49세였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정년 연장 효과가 적어서 정년제도가 유명무실했다. 이런 상황에 임금피크제로 발생한 임금 감소는 가계소득을 저하시켜 가계부채 증가에 이은 내수 침체의 악순환을 가져와 경기침체를 심화시킬 것이란 지적도 있었다. 결국 당시의 사항은 고려되지 않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만 한 것이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는 지난달 26일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한 임금피크제 도입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잘못된 정책

이들은 “박근혜정부는 청년 고용을 확대한다는 명분으로 일방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국회예상처가 발행한 ‘임금피크제 도입의 고용효과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청년고용 증대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임금피크제라는 잘못된 정책의 시행으로 ‘임금피크제 대상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숙련 노동자들의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이는 세대 간 갈등이 심해져 협업이 중요한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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