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음악은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다.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용도가 되기도 한다. 멜론, 애플뮤직, 스포티파이 등 다양한 음원 플랫폼이 나오고 있지만 명곡들은 LP를 수집해서 듣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사회가 점점 편리해지고 있다. 버튼 몇 개만 누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시대다. 이와 역행하는 게 턴테이블과 LP(Long Playing Record)판이다. 음악시장이 큰 미국에서는 LP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국내 가수도 LP를 내고 있고 한정판은 구하기 힘들 정도다.
장당 2000원
지난달 22일 서울시 중구 신당동 한 주택가에 위치한 LP숍 ‘모자이크 서울’을 찾았다. LP를 파는 곳이라면 화려한 간판이 있을 법도 한데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mosaic(모자이크)’라고 적힌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나서야 매장 위치를 파악했다.
매장 창문에는 집중해서 봐야 볼 수 있는 레코드숍이라는 글씨와 함께 운영 시간, 전화번호, 메일, 인스타그램 등의 정보가 적혀 있었다.
매장 문을 열고 입장했지만 점원의 격한 환영이나 인사는 없었다. 점원과 손님은 음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고 매장 안을 가득히 채운 LP가 기자를 반겨줄 뿐이었다.
흰색과 청록색이 조합된 매장은 갈색 가구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대여섯 명만 들어와도 비좁을 것 같은 내부는 LP로 벽면까지 가득 찼다. 과거 비디오 대여점이나 만화책 방에서 느낄만한 아늑한 느낌이 났다.
이곳은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는 프랑스 외국인이 운영한다. 사장의 이름은 커티스 캄부. 한국에 온 지 10년된 그는 음악 관련 일을 하다가 지금은 음반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커티스 캄부는 “음악 관련 종사자이며 음반 판매를 한 지는 오래됐다. 나에 대한 얘기보다는 이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말을 시작했다. 그는 “이곳은 음반 마니아들이 많이 찾는 매장이다. 다른 매장에 비해 수입하는 LP 양이 많은 편”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캄부의 말대로 매장 안을 둘러보니 1000장은 족히 넘어 보이는 LP판들이 이목을 끌었다. 매장 중앙도 모자라 벽면을 가득 채운 LP는 인테리어를 따로 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얼마나 많은 LP를 보유하고 있냐는 물음에 커티스 캄부는 “현재 보이는 것만 3000장이고 따로 보관하고 있는 게 2000장이 있어 총 5000장 정도 갖고 있다. 1만장, 2만장이 넘을 때도 많다. 소장하고 있는 LP 개수는 시시각각 변한다. 이곳은 다른 곳보다 회전율이 좋다. 다음 달이면 또 다른 음반으로 매장을 가득 채울 것”이라고 답했다.
이곳은 록, 힙합, 재즈, 하우스,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로 구분해 LP를 비치했다. 고객의 음악 장르를 취향에 맞춰 찾아볼 수 있게 하는 작은 배려였다. 수많은 LP를 구하기 위해 특별한 노하우가 있을 터.
그에게 슬쩍 물었지만 “영업 기밀”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상태가 좋고 저렴한 LP를 찾는 방법은 인맥이라고 귀띔했다.
LP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입문곡’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에 커티스 캄부는 “그런 건 따로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음악으로 단계를 나누거나 레벨을 나누는 건 맞지 않다. 자신이 직접 다 들어보고 취향을 찾는 행위를 해야 한다”며 “LP라고 해서 특별한 건 아니다. 음악을 듣는 하나의 플랫폼이다. 음악에 순위나 랭킹을 매기지 말고 자신만의 취향을 찾길 바란다. 모자이크 서울에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있다”고 말했다.
록, 힙합 등 다양한 장르 구분
턴테이블 통해 청음할 수 있어
젊은 층이 LP 문화 입문에 꺼리는 이유는 아무래도 가격 때문이다. 음원 플랫폼을 구독하면 매월 1만5000원정도 결제 후 음악을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다. 반면 최근 출시되는 LP 가격은 4~5만원선이다. 재출시되는 앨범 같은 경우에는 15만원을 웃돌기도 한다.
모자이크에서는 중고 LP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단돈 2000원으로도 구입할 수 있는 LP가 많다. 매장을 둘러보는 손님 연령층을 살펴보면 20~30대가 주를 이룬 것을 보면 저렴한 가격대가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커티스 캄부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게 접근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매장에는 저렴한 LP는 2000원으로 책정돼있고 보통 7000원에서 1만원 정도 한다. 그 다음 비싼 게 2만원에서 2만5000원정도 수준”이라며 “LP 가격은 공급과 수요에 따라 바뀐다. 비틀스, 마이클 잭슨 등 유명한 아티스트라고 해도 LP를 많이 찍으면 저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곳의 백미는 LP를 직접 청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카세트테이프와 CD 세대였던 기자에게 턴테이블을 활용해 LP를 직접 들을 기회는 흔치 않았다.
수많은 LP 중에 1980년대 가요계를 주름 잡았던 민해경의 ‘제1회 미국 국제 가요제 그랑프리 및 최우수가창상 수상곡’이라고 표기된 앨범과 힙합가수 팀독의 앨범 총 2장의 LP를 집었다. 국내 가요 카테고리에는 민해경뿐 아니라 희자매, 방미 등 과거 국내 가요계를 휘어잡은 가수들의 앨범도 있었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턴테이블 사용법과 함께 LP 잡는 법 등의 설명을 들었다. 꽤 큼지막한 LP를 잡을 때는 손바닥으로 밑면 중앙 라벨에 대고 엄지로 LP 가장자리를 잡아 내피에서 뺀 다음 양손으로 턴테이블을 걸어야 한다. LP트랙에 손자국이 남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귀에 헤드셋을 낀 뒤 LP를 턴테이블 가장자리 끝 부분에 바늘을 위치시켜야 1번 트랙부터 들을 수 있다. ‘지지직’거리는 잡음은 분명 음원 스트리밍과 다른 매력이 있었다. 음악을 듣기 위한 과정을 거친 덕분에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느낌도 받았다.
팀독의 ‘Tim dog i get wrecked’를 들을 때 공연장에 온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다 보니 1곡이 끝나버렸다. 턴테이블 옆에 포스트잇으로 ‘구매 목적을 위한 손님을 위한 것’이라는 글귀를 보고 헤드셋을 내려놓고 LP를 정리했다.
커티스 캄부는 “청음은 5장 정도 들을 수 있다고 적어놨다. LP를 구매할 의향도 없으면서 계속 듣는 무례한 손님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옷 가게에서도 구입할 목적이 없지만 여러 벌의 옷을 입는 것과 같다. 턴테이블이 2개밖에 없기 때문에 다른 손님을 위해 배려하는 자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LP 판매뿐 아니라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서너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작은 공간이지만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공간이다. 다락방 같은 느낌은 이 공간을 더욱 아늑하게 만들어준다. 메뉴는 핸드드립 커피와 민트 티 등 두가지 뿐이지만 3500원의 가격으로 여유를 즐기기엔 충분하다.
5000장 보유
커티스 캄부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찾아와 취향을 이야기하는 등 소통의 장이 됐으면 좋겠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커뮤니티나 모임은 많다. LP는 잠깐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전부터 자리 잡은 문화”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