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교육부가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차별금지법’ 중 3조에 명시된 학력 부분에 대해 신중 검토 의견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법무부에 제출했다. 이와 함께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과거 국회의원 재직 시절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의 공동발의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유 부총리 겸 장관을 두고 ‘말바꾸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학력 조항 삭제 문제는 문재인정부가 약속한 공약과도 대비된다는 데 있다. 이 문제가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대선 출마 당시 학력, 출신학교 관행 철폐를 공약으로 삼았고, 문정부 출범이후 100대 국정 과제에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예전엔 반대
차별금지법안은 이유 없이 학력, 학벌을 이유로 고용, 시설 이용, 교육에 있어 차별을 두면 안 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법안이다. 법안에 포함된 학력은 고등학교, 대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의 졸업과 이수를 포함해 출신학교까지 포함된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가 차별금지법안 상의 차별금지 범위에서 사실상 반대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교육부가 국회에 학력을 삭제하자고 하는 이유로 학력이 ‘합리적 차별이 가능한 요소’기 때문에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이유다.
교육부는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상당 부분 성취 정도가 달라진다”며 “차별금지법의 학력에 대한 규제가 과도한 규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하 유 부총리 겸 장관)은 곧바로 비판의 대상이 됐다. 과거 국회의원 재직 시절 학력·출신학교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의 공동발의자였다는 점에서 기존 입장을 고수하지 않고, 교육부 수장의 입장이 변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과거 법안 공동발의
입장 바꾸고 대립각?
과거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한 유 부총리 겸 장관은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의 학력, 출신학교 차별금지와 관한 질의에 대한 답변으로 “학력 차별, 학벌 중심의 사회적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학력의 제한 없이 능력 중심 채용이 정착돼야 한다”며 “학력 차별 철폐에 대해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 출석해선 “학력을 합리적 차별로 보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는 점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다”고 과거와 다른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법안을 발의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학력이 노력 문제라는 식의 검토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점은 강력히 비판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역시 “학력을 이유로 고용, 재화와 시설 이용에 있어 학력을 차별해도 된다는 의견”이라고 즉각 비판했다.
교육부가 수정안을 제시한 3조(금지대상 차별의 범위)는 다른 조항과도 차이가 있다. ▲31조(교육기회의 차별금지) ▲32조(교육내용의 차별금지) ▲33조(학교활동 및 교육서비스의 차별금지) 등에서는 신중 검토 의견의 이유만 밝혔으나 3조에는 수정안까지 제시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과거 대학입시에서 출신 고등학교 차별을 철폐하겠다며 ‘블라인드 평가’를 도입한 곳이 교육부다. 블라인드 평가 제도는 문정부가 들어선 뒤 교육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제도다.
학력차별을 철폐하겠다는 과거 입장과는 대비된다는 점에서 검토 의견을 제시한 점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교육부가 이번 의견을 국회에 제출함으로써 과거 차별을 철폐하겠다는 입장을 스스로 뒤집은 셈이다.
삭제 아니라면서
수정안까지 제안
교육부의 이번 검토 의견이 모순된다는 지적도 있다. 문정부가 국정 주요과제 중 하나로 입시 블라인드 면접 도입과 공공기관 등의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학력·학벌차별 관행 철폐를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은 19대 대선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고, 문정부가 출범하면서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학력차별 철폐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또 차별금지법은 과거 더불어민주당 민생특위 사교육비 절감 TF(테스크 포스)의 1호 법안이었다.
이런 점에서 교육부가 문정부의 정책과 대비되는 입장을 내놔 정부와 여권, 교육부의 대립각 구도도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해당 논란에 대해 유 부총리 겸 장관은 “해당 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며 다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지금은 찬성?
정의당 오현주 대변인은 “유 부총리 겸 장관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찬성하던 학력차별 금지에 대해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답변만 내놓고 있다”며 “명확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선 ‘부모 찬스’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불릴 만큼 교육 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유 부총리 겸 장관이 장관으로써 소명을 다하지 못했다는 비판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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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여전한 학력 차별
학력과 학벌 차별 등으로 현재 극심한 경쟁 교육시대라고 불린다. 이는 곧 사교육 부담으로 이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국민 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의 유무에 따른 차별은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국민 5000명 중 56.8%가 “심각하다”고 대답했다.
심각하다는 답변은 2011년 이후로 지속적으로 50%를 넘었고, 2015년에는 66.1%까지 달했다.
2018년 조사에서는 학벌주의 완화를 위해 학력차별을 법으로 금지시키는 방안에 대해 55.5%가 찬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