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은 ‘세계 뇌의 날’이었다. 최근 일부 유명인들의 프로포폴 투약 의혹이 제기되는 등 중독성 약물 오남용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중독(의존)이 단순히 개인의 일탈적 습관이나 성향의 문제가 아닌 치료가 필요한 뇌질환이라는 인식이 전 사회적으로 보다 확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중독연구특별위원회가 지난 6월 실시한 ‘약물오남용 대국민인식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민 절반에 가까운 수치가 중독이 뇌의 문제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해
전국 성인 남녀 1020명을 대상으로 한 해당 조사에서 ‘중독(의존)은 어떤 현상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본 결과, ▲뇌의 조절력 상실에 의한 질병(35.4%) ▲성격과 의지의 문제(22.0%) ▲잘못된 습관의 문제(20.7%) ▲정신질환-우울증, 불안장애 등에 의한 행동문제(15.4%) ▲잘 모르겠다(6.6%)고 응답해 중독의 원인을 개인의 기질적 측면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중독은 뇌과학적으로 봤을 때 신경전달물질이 정상적인 조절 기능을 상실해 병적인 상태로 바뀌게 된 상황인 점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따른 체계적·포괄적인 예방 및 선별, 치료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훈철 중독연구특별위원회 간사는 “중독은 보상·스트레스·자기조절에 관련된 뇌회로의 기능적 변화를 수반하고 오래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뇌질환으로 분류된다”며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을 경우 뇌 기능의 영구적인 변화와 다양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프로포폴과 같은 중독성 물질뿐만 아니라 정상 범위를 넘어선 도박, 스마트폰 사용, 게임 등과 같은 중독성 행동 대부분이 뇌의 중뇌에 위치한 복측 피개 영역과 전두엽 내측 전전두엽, 중격측좌핵으로 이어진 신경망인 보상회로(일명 쾌락중추)를 강력하게 자극하는 요소다.
중독약물 오남용 뇌질환으로 분류
물질·도박중독, 같은 범위로 취급
이 쾌락중추는 마약이나 알코올, 과도한 인터넷 게임 등에 강력하게 반응해, 점차 그 행동의 양과 횟수가 늘어나는 집착의 상태로 만든다. 코카인·알코올·도박 등 중독자의 경우 해당 물질과 행동의 사진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쾌락중추가 강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이런 자극이 더 이상 주어지지 않으면 신체적·심리적 불편함이 발생하는 금단증상이 나타나는 의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특징은 물질중독자뿐 아니라 행위중독자에게서도 동일하게 관찰되고 임상적 특성도 일치하는데, 이 때문에 2013년 미국 정신과 질환 진단분류체계에서는 물질중독과 도박중독을 같은 중독 범위로 분류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중독성 약물, 알코올이나 도박, 인터넷 게임 행위 등이 적절한 범위를 넘어서면 뇌세포의 부피가 줄어들고 쾌락중추에 장애가 생겨, 조절능력을 상실해 개인적·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바로 중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중독 상태가 되면 정상인에 비해 뇌세포가 위축되고 부피가 줄어든다. 기억력 저하, 성격의 변화, 수면-각성 주기의 변화, 판단력과 지각능력 저하 등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특히 뇌의 발달이 미숙한 상태인 청소년의 경우 중독성 약물이나 과도한 인터넷 게임 등과 같은 행위중독에 노출되면, 뇌의 발달이 더뎌지고 전두엽 회백질의 부피도 줄어 사고능력이나 문제해결능력, 충돌 조절이나 통제력 등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 임신 또는 모유 수유 중 약물 중독에 노출된 유아는 출산 시 조산 또는 저체중일 위험이 높고, 떨림이나 발작, 행동발달장애 등이 생기는 신생아 금단증후군이 나타날 수도 있다.
장애
이해국 중독연구특별위원회 간사는 “중독은 그 특성상 기초수급자 등 빈곤층의 중독률이 높고 이 때문에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락해, 또다시 빈곤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쉽다”며 “청소년이나 여성, 빈곤층 등 사회취약계층에 대한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중독 예방 및 치료를 통해 중독 폐해로 인한 개인적·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