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칼럼> 의원님들, 일 좀 합시다

2019.12.09 10:13:37 호수 1248호

이번 칼럼의 제목은 필자가 보기에도 진부하기 짝이 없다. 자신이 맡은 일을 충실히 하자는 것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나 나올 내용이다. ‘일하는 국회’ ‘일하는 국회의원’이라는 문구도 심히 상투적이다. 이미 십수년 전부터 여러 사람이 글을 쓴 주제로 독자들의 흥미조차 끌기 어렵다. 굳이 필자까지 나서 또 글을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국회가 달라지지 않으므로 다시 한 번 일할 것을 촉구하는 글을 쓴다.



국회는 입법기관이고 국회의원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임무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일부 국회의원과 당직자들의 행태를 보면 입법은 내팽개치고 내년 총선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 1야당인 자유한국당에선 국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이유로 200개에 육박하는 국회 본회의 계류 법안 전부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필리버스터는 국회법서 보장하고 있는 소수정당의 합법적 저항 수단이다. 2016년에 현재의 여당서도 200여 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를 한 바 있다. 그러므로 이번 필리버스터도 그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왜 필리버스터의 원인이 되는 법안 외에 모든 법안을 필리버스터 대상으로 삼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얼마 전까지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였던 나경원 의원은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으면 민식이법 등에 대해 먼저 상정해 통과시켜주겠다”는 마치 어린이 교통안전을 강화하는 내용의 이른바 ‘민식이법’을 흥정 대상으로 삼는 듯한 발언을 해서 학부모를 비롯한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번 국회서 처리되지 않으면 내년도 징병검사에 큰 지장을 초래할 병역법 개정안, 사립유치원 운영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유치원 3법’ 등 민생과 국익에 밀접한 법률 모두를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저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쓰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도 처리기한을 넘겼다. 필리버스터는 합법이되, 이런 취지로 허용된 제도였겠는가? 더구나 필리버스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법안의 수와 관계도 없다.

급기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가 예산안 처리를 위한 ‘4+1’ 협의체를 구성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비당권파에선 밀실 야합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4+1’ 협의체가 선거법 개정으로 이득을 얻는 세력으로 구성된 것이 사실이지만, 예산안을 우선 처리해야 한다는 명분은 설득력이 있다.  

20대 국회는 의안 본회의 처리율이 30% 수준이다. 지난 18, 19대 국회서 40%를 상회했던 것에 크게 못 미치는 역대 최저 수준의 처리율이다. 입법이라는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한 게 비단 이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다행히 여당에선 자유한국당과의 협상 여지를 남겨뒀고, 최근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물러남으로써 국면 전환 가능성이 생겼다. 여야를 불문하고 국회의원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각 법률에 영향을 받는 각계각층에선 해당 법안의 처리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입법은 국회의원의 의무며, 내년 총선에 대비하는 가장 좋은 전략은 선거제도를 개편하거나 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닌, 국가와 국민을 위한 입법에 각고의 노력을 다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