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칼럼> 편법과 위법의 아비투스를 넘어서

2019.10.07 10:50:33 호수 1239호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을 제창했다. 아비투스는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개인의 취향이나 습관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



파티에 다녀오면 사회적 위치에 따라 묻는 것이 다르다고 한다. 빈곤층은 음식을 많이 먹었는지를, 중산층은 음식이 맛있었는지를, 상류층은 분위기가 좋았는지를 묻는다고 한다. 사회적 계급에 따른 아비투스를 설명하는 예화라 할 수 있다. 

한 국가나 지역에 광범위하게 나타났던 사회문화적 환경이 그곳에 거주하는 다수의 공통된 아비투스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개인뿐만 아니라 지역·국가·민족 단위로도 아비투스가 구분될 수 있다.

일례로 우리는 종종 “밥 먹었니?”라는 인사를 하는데 이는 밥도 제때 챙겨 먹기 어려웠던 시절의 아비투스가 세대를 거쳐 이어진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한국 전쟁 직후의 폐허서 오늘날의 경제 수준에 이르는 고속성장 과정서 우리 국민 다수가 공유하는 아비투스가 생겼다. 개중에는 고속성장의 이면에 드리워진 그늘과 같은 부정적인 아비투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자신의 이익이나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편법과 위법을 마다하지 않는 습속이다. 

고위직 임명 청문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위장전입이다. 주로 자녀의 진학이나 부동산 투자를 위해 이뤄진다. 주민등록법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청문회서도 ‘그 당시에는 관행이었다’는 변명이 반복된다. 위장전입이 십수년 전의 관행일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지금도 인터넷서 검색해보면 위장전입 의도를 가진 여러 질문과 답변을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국 법무부장관과 관련해 자녀의 인턴 경력이나 수상 경력이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입시를 위해 부모가 인턴 경력이나 수상 경력을 만들어주다시피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심지어 대학에 진학할 자녀가 없는 필자조차도 비교적 구체적인 내용을 알고 있다.

남들이 다 하니까 내가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이 같은 현상이 특정 계층서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린이집 입소 순위를 올리기 위해 지인을 통해 재직증명서를 만들어 맞벌이 부부임을 허위 증빙하거나 음식점이나 놀이공원서 할인받기 위해 어린 자녀의 연령을 속이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다지 죄의식도 없는지 인터넷서 이 같은 내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편법이 생활의 지혜로 둔갑하는 경우도 잦다. 

편법과 위법의 습속이 우리의 발전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편법이 발견되면 이를 막기 위해 다시 새로운 규제를 만들거나 강화한다. 그러면 대중은 다시 그 규제를 피할 방안을 만들어낸다. 타인의 편법적 행위를 비난하지만 그런 자신도 활용할 수 있는 편법적 방법이 있으면 마다하지 않는 사례도 많다.

상호 신뢰가 부족하다 보니 갈등과 잡음이 많다.  

고도성장기를 통해 형성된 결과나 이익 중심의 사고를 바꿔야 한다. 물론 수십년 간 형성된 집단적 습속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올바른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타인의 변칙적 이익추구를 비난했다면 본인은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정당하지 못한 절차를 통해 얻은 이익은 철저히 환수해야 한다.  

편법과 위법의 아비투스를 넘어서 선진국에 걸맞은 시민의식을 갖춰야 한다. 경제 수준만을 고려하면 ‘졸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의 자녀 세대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애써야 할 것이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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