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칼럼> 다시 강조하는 ‘직장 내 괴롭힘’

2019.04.22 10:11:27 호수 1215호

지난 칼럼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공교롭게도 가까운 이로부터 직장동료의 언행 때문에 괴롭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내용인즉슨,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직장동료가 자신을 불러내 폭언을 했다는 것이다. 하소연을 가만히 들어보니 그 직장동료가 한 말은 업무상 조언이라기보다는 인신공격이었고 일방적인 화풀이에 가까웠다.



또 자신과 나이 차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니고, 직위에 따른 위계가 있는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부하직원에게 지시하듯이 해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전화 너머로 괴로움이 느껴져 위로의 말을 건넸다. 얼마나 그런 일이 자주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두 번쯤이라면 우발적으로 발생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특정 언행이 일방적으로 반복되고 상대방이 그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면 이는 직장 내 괴롭힘이 된다.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할 때 가해자의 의도는 고려되지 않는다. 괴롭힐 의도가 없었다고 해서 상대방의 고통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한 사건의 ‘가해자’는 피해자가 폭언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고 하자 “앞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말로 응수했다고 한다. 직장 내 인간관계 자체를 법률로 규제할 수는 없다. 사적 친소관계는 법 외의 영역이다. 하지만 상대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행위나 냉소적인 표정을 지어 상대방을 힘들게 하는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의 범주에 속한다. 

직장 내 괴롭힘은 직장의 지휘감독 관계서 업무상 필요를 빙자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또 우리 직장 문화의 특성상 상사와 부하관계가 아님에도 입사를 먼저 했거나 나이가 많은 것, 내부적으로 정해놓은 직급상 상위에 있다는 것 등을 이유로 상대에게 억압적 언행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업무상 필요가 있다고 해 타인에게 정신적 타격을 주는 행위가 모두 정당화될 수는 없다. 사회통념상 객관적이어야 한다. 특히 공식적인 지휘감독권이 부여되지 않은 경우, 객관적인 업무상 필요가 인정될 가능성은 낮아지고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될 가능성은 높아진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생활 경험이 있는 만 20∼64세 남녀 1500명 중 73.7%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만약 “직장서 부하직원이나 동료를 괴롭힌 적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많은 이들이 업무상 필요는 과대평가하고 상대의 괴로움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해, 본인이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지난 칼럼의 문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잘되라고 했다”는 말이 화풀이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는지, 단지 자신과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는 이유로 조언을 빙자한 간섭을 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자. 

직장 내에서 다른 직원의 과오를 알게 되거나 직원 간 갈등이 발생했다면 공식적인 지휘감독 계통이나 고충처리 기구를 통해 해결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정도의 사안이라면 서로를 너그럽게 바라봐줘야 한다.

업무와 무관한 사항을 업무상 관계를 이용해 간섭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법률이 시행되면 그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게 마련이다. 법 시행 초기에 이른바 ‘시범 케이스’가 되지 않으려면 법에 대한 이해와 함께 높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사전에 조심해야지, 사후에 ‘몰랐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가중 처벌을 받게 되기도 한다.

‘직장 내 갑질’은 회사 임원 같은 고위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언행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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