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적해 왔지만 변칙적인 '오너 곳간 채우기'는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참치로 유명한 종합식품 전문기업 사조그룹은 지난달 기준 총 22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중 오너일가 지분이 있으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회사는 '사조인터내셔널'과 '사조시스템즈'다. 두 회사는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줘 적지 않은 실적이 '안방'에서 나왔다.
1984년 12월 설립된 사조인터내셔널은 고등어, 오징어, 청어 등 수산물 도매업체다. 선박용 비품 및 농수축산물 도매업 등도 하고 있다. 처음 오림이란 회사였다가 2010년 3월 현 상호로 변경했다.
주요 관계사서 지원
사조인터내셔널은 그룹 지배구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 현재 ▲사조산업(3.51%) ▲사조대림(4.35%) ▲사조씨푸드(0.01%) ▲캐슬렉스제주(30%) 등 주요 계열사들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조인터내셔널의 자생력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분석 결과 매출의 절반 가량을 계열사에서 채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통해 매년 200억원대 고정 매출을 올리고 있다.
사조인터내셔널은 지난해 매출 543억원 가운데 283억원(52%)을 계열사와의 거래로 올렸다. 사조인터내셔널에 일거리를 준 '식구'들은 사조산업(162억원)을 비롯해 사조오양(45억원), 사조씨푸드(16억원), 사조대림(11억원) 등이다. 2010년에도 사조산업(132억원), 사조오양(42억원), 사조대림(35억원), 사조씨푸드(25억원) 등 계열사들이 총매출 487억원 중 234억원(48%)에 이르는 일감을 사조인터내셔널에 몰아줬다.
2009년의 경우 계열사 매출 비중이 59%에 달했다. 총매출 408억원에서 사조산업(131억원), 사조씨푸드(39억원), 사조오양(36억원), 사조대림(35억원) 등과의 거래액이 240억원이나 됐다.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사조그룹 계열사는 또 있다. 바로 사조시스템즈다.
1982년 10월 설립된 이 회사는 사무실, 상가 등 비주거용 건물 임대업체다. 용역경비업과 전산업무 용역서비스업 등의 사업도 하고 있다. 처음 청태개발이란 회사였다가 2009년 9월 현 상호로 변경했다. 사조시스템즈도 ▲사조산업(1.97%) ▲사조해표(3.64%) ▲사조오양(9.54%) ▲캐슬렉스제주(20.5%) 등 주요 계열사들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사조시스템즈 역시 계열사 의존도가 높다. 지난해 매출 66억원 가운데 44억원(67%)을 특수관계사들과의 거래로 채웠다. 사조시스템즈는 공시를 통해 "특수관계사들은 본사에 유의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조산업과 그 종속회사들"이라고 설명했다.
매년 200억씩…매출 절반 계열사서 채워
오너일가 최대주주 "이미 등기직에 포진"
그전에도 다를 바 없었다. 2010년 특수관계사들이 사조시스템즈에 밀어준 매출 비중은 60%에 달했다. 총매출 57억원에서 34억원이 내부거래였다.
사조인터내셔널과 사조시스템즈의 내부거래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너일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각각 '황제'와 '황태자'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사조인터내셔널은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의 장남 지홍씨가 지분 43.42%(33만9주)를 소유한 최대주주다. 주 회장도 23.03%(17만5024주)의 지분이 있다.
사조인터내셔널에 장남이 있다면 사조시스템즈엔 차남이 있다. 사조시스템즈 최대주주는 지분 51%(51만주)를 갖고 있는 주 회장의 차남 제홍씨다. 주 회장도 19%(19만주)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고 주인용 사조그룹 창업주의 2남3녀 중 장남인 주 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을 밟던 와중에 1978년 부친이 갑자기 뇌일혈로 타계하면서 가업을 승계하게 됐다. 그의 나이 29세 때였다. 급거 귀국한 주 회장은 직원 6명과 원양어선 1척으로 수산업을 시작했다. 그해 매출은 20억원.
그랬던 사조의 매출은 지난해 2조원이 넘었다. 34년 만에 1000배 성장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사조그룹은 2004년 사조해표(구 신동방)와 2006년 사조대림(구 대림수산), 2007년 사조오양(구 오양수산) 등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작은 수산업체에서 종합식품 전문기업으로 변모했다.
주 회장은 정치를 공부한 만큼 '금배지의 꿈'을 간직하다 1996년부터 8년간 15·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경북 고령·성주)을 지내기도 했다. '외도'를 끝낸 그는 2004년 사조그룹 회장으로 다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2007년 17대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주 회장은 이듬해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두 황태자가 장악
주 회장은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올해 35세인 장남 지홍씨는 연세대 사회학과와 미국 미시건주립대 MBA 과정을 마치고 외국계 컨설팅업체인 베어링포인트에 재직하다 최근 사조해표·사조대림 기획팀장(부장)으로 입사해 근무 중이다. 기존 사조산업 기획팀에서 전담했던 M&A 등 그룹의 미래 신성장 사업을 맡아 본격적인 후계자 수업에 들어갔다.
31세인 차남 제홍씨는 아직 입사하지 않았다. 연세대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미국에서 유학 중이다. 지홍·제홍 형제는 각각 자신이 지분을 쥐고 있는 사조인터내셔널(2006년 선임), 사조시스템즈(2008년 선임)의 등기이사직을 맡고 있다. 주 회장은 후계구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