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두고 솔솔 부는 심상찮은 ‘북풍’ 실체

2012.03.26 20:02:43 호수 0호

스쳐가는 ‘미풍’일까? 쓰나미급 ‘태풍’일까?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4·11 총선을 앞두고 또 다시 ‘북풍(北風)’이 불어 닥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풍은 형태만 다를 뿐 거의 모든 선거에 등장하곤 했던 ‘단골손님’이었다. 북풍은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선거를 좌지우지할 만한 큰 변수였지만, 그 위력은 갈수록 반감되고 있다. 특히 2000년 이후로는 ‘미풍’에 그친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정치판에서 북풍은 여전히 매력적인 카드로 거론되고 있다. 예전처럼 태풍을 일으키지는 못하더라도 보수세력을 결집시키고 판세를 유리하게 돌릴만한 위력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또 다시 떠오르는 ‘북풍’의 실체를 살펴봤다.



북한, 총선 앞두고 ‘광명성3호’ 발사 예고, 파장 들끓어
임태희, 선거 앞두고 한 달 사이 두 번 북한 인사와 접촉? 

북한이 다음 달 중순 광명성3호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고 발표함에 따라 이번 총선에서도 안보 변수, 이른바 ‘북풍’이 몰아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과거에도 북한이 남한의 주요 정치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영향력 행사를 꾀했다는 점에서 이번에 예고된 발사시점도 예사로워 보이지 않는다.

4·11 총선을 20 여일 앞두고 나온 북한의 발사 계획은 총선 정국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김정은 후계 체제가 빠르게 안정을 되찾으면서 이번 총선 정국엔 북한 변수가 없을 것으로 예견됐지만 북한의 갑작스런 발표로 북풍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의혹 더하는
임태희의 중국행

여권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차차기 대선을 노리고 있는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의 중국 방문을 두고 대북 비밀접촉설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달 3~5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임 전 실장은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중국 내 동선을 공개했다. 이에 일부 외교소식통은 “임 전 실장이 일행 1명과 함께 북한대사관 참사관 2명을 만난 것으로 안다”고 전했고, 그와 동행한 인물은 북한전문가 겸 사업가인 유모씨인 것으로 알려져 의혹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임 전 실장은 청와대를 통해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한배구연맹 회장으로서 알고 있던 웨이지중 국제배구연맹 회장이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위원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지원해준 데 감사를 표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만난 곳 역시 베이징 외교1블록이고 근처에 북한대사관이 있어 불거진 의혹 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방중에 대한 의혹이 채 가시기도 전에 중국을 또 다시 방문한 것으로 알려져 의혹은 더욱더 커지고 있다.

임 전 실장은 이틀 일정으로 베이징을 방문했다가 지난 12일 귀국했다. 이번 방문은 페이스북을 통해 동선을 공개했던 지난달 방문과 달리 일정을 알리지 않았고, 임 실장도 “일요일에 북경 갔다 월요일 저녁에 돌아왔습니다. 중국 배구관계자들을 만난 것뿐인데, 일부 언론들이 많이 앞서가네요”라며 의혹을 일축하기만 했다.

하지만 약 한 달 만에 또 다시 중국을 방문한 것에 대해 북한 측 인사와 접촉하려 했다는 의혹이 또 다시 제기되고 있다. 총선을 눈앞에 둔 민감한 시점에 임 전 실장의 연이은 베이징 방문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해 보인다.

당사자인 임 전 실장의 적극 해명에도 의혹이 가라앉지 않는 것은 그가 노동부장관 시절이던 200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비밀회동해 정상회담 추진 문제를 논의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접촉한 별도의 대북라인이 있는 것을 방증하는 부분이다. 청와대는 당초 임 전 실장이 웨이지중 회장 취임을 축하하러 베이징을 방문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취임이 2008년이었다는 지적이 나오자 “전달자가 잘못 들었다”면서 방문목적에 대한 설명을 바꿨던 적이 있다.

런 의혹과 더불어 정권 말기 숱한 반대 의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주 강정마을에 군사기지 건설을 강행하는 것도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 군, 보수언론, 그리고 극우 기독교 세력은 제주 기지 건설 논란을 ‘북한을 겨냥한’ 군사적 안보문제로 몰아가고 있고 반대세력들을 ‘종북세력’으로 몰아붙이며 ‘매국노’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군은 지난 2월 말에 연평도 해상에서 대규모의 해상사격훈련을 감행했다. 위험한 군사도발은 없었지만 남북한 양국 정부는 매우 자극적인 발언으로 상대방을 자극하기도 했다.

광명성3호 발사
영향력 얼마나?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다고 했던가? 북한은 지난 16일, 김일성의 100번째 생일 축하 기간인 4월 12~16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예고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 미사일 발사가 총선구도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단계 추진체가 변산반도 등 우리 영해나 영토에 떨어질 경우, 대선정국까지 표심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에 박지원 민주통합당 최고위원은 17일 “북한은 광명성3호 발사를 즉각 취소해야 한다”며 “총선을 앞둔 한국정치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행동으로 평화를 지키려는 세력에게 타격을 주고 강경론자들의 입장을 살려주는 행위”라고 했다.

새누리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위기관리 부재 논란’으로 비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당 관계자는 “모든 책임이 MB정부에 있다는 식으로 문제를 몰고 가려는 게 북한의 계산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민주통합당도 마찬가지다. 당 관계자는 “이번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기보다는 대북 관계개선과 평화 정착을 위해 우리가 어떤 비전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여야 모두 이렇다 할 특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북풍 변수의 예측 불가능성’ 때문이다. 과거 북풍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보수에 유리했지만 2000년 이후에는 달라, ‘역북풍’ 부나?
위력 반감 됐지만 보수세력 결집, 판세 움직일 위력 여전해

북풍은 5년 단임제로 치러진 첫 번째 대선이었던 1987년 메가톤급 위력을 발휘했다. 총 115명을 태운 KAL858기가 그해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중 미얀마 상공에서 폭발했고,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그리고 보름 후 치러진 대선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는 ‘3김’을 물리치고 제1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와 관련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2006년 8월 1일 “전두환 정권이 KAL기 폭파사건을 대통령 선거에 활용했다”면서 “13대 대선 하루 전인 1987년 12월15일까지 김현희를 압송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북풍이 선거에 이용됐음을 밝혔다.

군사정권에 대한 피로감이 심한 상태에서 북풍이 선거판을 뒤집은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1992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고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가 “김대중 후보의 측근이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됐다”고 발표했다. 김영삼 후보는 접전 끝에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먼저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지난 1996년, 총선을 일주일 앞둔 4월4일에는 느닷없이 북한이 종전 후 40년 이상 유지돼온 비무장지대(DMZ)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북한군 100여명이 나타나 금세라도 공격할 것처럼 위협적 모습을 보였다. 국방부는 대북 정보감시태세를 평시 워치콘3에서 도발징후단계인 워치콘2로 급히 격상했다.

북한 중무장 병력의 공동경비구역 출현은 6, 7일에도 이어졌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긴장 분위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홀연히 사라졌다.

결과는 139석을 얻은 신한국당의 승리였고, 국민회의는 76석, 자민련은 50석, 민주당은 15석에 그쳤다.

2002년 대선 때는 ‘2차 북핵 위기’가 터졌지만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이 됐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10·26 재보선 직전에는 ‘대한항공 조종사 종북(從北) 논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최대 승부처였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범야권 단일후보가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에 압승을 거뒀다.

메가톤급 위력을 발휘했던 과거 북풍과 달리 ‘신(新)북풍’은 되레 역풍을 맞은 적도 있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김대중 정부는 ‘평양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발표했으나, 115석을 얻는 데 머물렀다. 반면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133석으로 원내 1당을 차지했다.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 진 것이다.

2007년 10월3일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으나, 두 달여 뒤에 치러진 대선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 북한의 천안함 피격 사건 후 치러진 6·2 지방선거에서도 당시 한나라당은 안보이슈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야권이 광역단체장 9곳 등 자치단체를 장악하며 참패했다.

‘북풍’ 하면 으레 보수 세력에 유리할 것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하지만 ‘북풍’은 보수세력의 결집이라는 효과를 가져와 선거정국에 영향을 끼친다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북풍’ ‘역북풍’
어떤 바람 부나

이처럼 이젠 북풍이 거꾸로 보수정권의 안보실패라는 정반대의 정치적 효과를 낳기도 한다. 최근의 북풍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방향을 가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정치권에서는 제주해군기지·이어도·탈북자 문제를 북풍 3종 세트로, 광명성3호 발사를 현 정부의 안보불안을 건드리는 역북풍으로 구분하는 추세가 크다.

결국 지금의 북풍은 정파의 유불리에 따른 자의적 해석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정치권은 20년 만의 총선과 대선의 해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북풍’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안보가 정치적 유불리에 이용되어서는 안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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