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실태> ‘왕따’에 멍든 대한민국

2012.01.02 10:45:05 호수 0호

‘따돌림’에 피눈물…“학교 가기가 무서워요”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지난달 성탄절을 앞두고 대구에 사는 중학생 K(14)군이 자신의 집에서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기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투신, 목숨을 끊었다. 이후 K군의 유서4장이 공개되면서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K군을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으로 이끈 폭력의 실상이 양파껍질 벗겨지듯 밝혀지면서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K군의 죽음으로 우리는 학교폭력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경각심이 싹틈과 동시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안전망이 얼마나 허술한지 절망했고 분노했다.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친구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대구 자살 중학생 파문으로 본 학교폭력 실태 ‘경악’
한국 왕따, 일본 이지메보다 가혹행위 잔인하고 악독

“죄송해요. 이 방법이 가장 불효이지만 제가 살아 있으면 오히려 더 불효를 끼칠 것 같아요. 먼저 가서 100년이든 1000년이든 가족을 기다릴게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또래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의 중학교 2학년 K군의 애절한 유서가 공개돼 많은 이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있다. K군은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같은 반 친구들에게 폭력과 협박, 인간 이하의 모욕을 겪으며 살아야 했다.

라디오 선을 목에 휘감은 채 끌려 다니면서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어야 했고, 물로 고문당하고, 단소로 맞아가며 친구들의 온갖 심부름과 숙제를 대신해야했다. 주위에선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자신이 왜 만날 돈을 요구 하는지, 왜 게임을 유독 많이 하고 성적이 떨어지는지, 집안음식이 없어지는지 등 자신이 집단 괴롭힘을 받는다고 말하지 못했다. 뒷감당이 무서워서였다.

결국 14살 아이가 선택한 건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고통 받는 아이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절박함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책을 안은 채 안절부절못하던 대전의 여고 1년생 A(16)양의 최근 동영상도 충격 그 자체였다.

뒤늦게 공개된 동영상에서 그는  몇 번 머뭇거리다 결국 옥상으로 가는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그리곤 세상을 등졌다. 왕따(집단 따돌림)가 원인이었다. A양은 일부 학생들로부터 오랫동안 왕따를 당해 무척 힘들어했으며, 숨지기 이틀 전에는 반장과 담임교사를 찾아갔으나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단 이 두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11월에는 인천 연수구의 한 아파트 25층 옥상에서 중학교 2학년 B(14)양이 투신했다. B양은 옥상으로 올라간 지 약 10분 뒤 유서도 남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뛰어내렸다.

경찰 조사결과 B양은 ‘그룹 내 왕따’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밝은 성격으로 부반장을 맡을 정도로 또래 사이에서도 적극적이었지만, 친구들과 오해가 생기면서 사이가 틀어진 것이다. B양은 친구들과 함께하던 인터넷 채팅공간에서도 소외되고, 점심시간에도 혼자 밥을 먹는 등 따돌림이 계속되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과부 자료에 따르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학교폭력 심의 건수는 2005년 2518건에서 2009년 5605건, 작년 7823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피해 학생 수는 2005년 4567명이었으나 작년에는 3배가 넘는 1만3748명으로 증가했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이 벌인 ‘2010 학교폭력 전국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 폭력으로 자살 충동을 느낀 학생이 전체의 30.8%, 죽을 만큼의 고통스러움을 호소한 학생은 13.9%에 달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오랫동안 지속된 집단 괴롭힘을 대부분의 학교는 물론 부모조차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학교폭력이 지능적이고, 갈수록 집요하고 잔인해진다는 방증인데, 전문가들은 일본에서 ‘이지메’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확산된 왕따 문화가 한국으로 전염된 뒤 세계에 유례가 없고 일본 보다 더 잔인하고 악독한 형태로 진화했다고 말한다.

목격하는 아이들도 대부분 보복이 두렵거나, 왕따의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올까 못 본 척한다. 학교 안전망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셈이다.

“OO셔틀 시대~”
이기적인 문화 ‘아찔’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는 왕따뿐만 아니라 ‘빵셔틀’(빵 심부름하는 것), ‘일진따’(왕따 중의 왕따), ‘신발셔틀’(신발가방 들어주는 것) 등의 용어들이 일상어로 사용된다. 빵셔틀은 컴퓨터 게임에 등장하는 수송비행선의 이름과 빵을 조합한 신조어다.

심지어는 돈을 가져오라고 강요하는 ‘돈셔틀’, 숙제를 해주는 ‘숙제셔틀’, 안마를 해주는 ‘안마셔틀’ 등도 학생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다.

‘자신을 고2 빵셔틀’이라고 소개한 C양은 “중학교 때 처음으로 같은 반 친구의 심부름을 ‘내꺼 사먹으러 간 김에 사와야지’라는 생각에 싫은 티 안내며 해줬더니 그게 반복이 됐고,  다른 반으로까지 퍼져 다른 반 학생들까지 심부름을 시켰다”며 “나중에 되니 점심시간에 밥도 못 먹고 친구들 심부름을 다녀야 했고 반 친구들까지 날 보면서 ‘빵돌이다~빵사오는길이냐?’며 놀리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그리곤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끝날 줄 알았던 ‘악몽’은 같은 중학교를 다녔던 한 친구가 고등학교에 “쟤~우리학교 빵셔틀이었어”라는 소문을 내면서 다시 시작됐다고 말했다. 

고등학생이 되는 D군은 중학교를 다니던 내내 돈 셔틀, 담배셔틀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D군보다 1살 많은 선배들은 D군에게 “담배를 구해와라” “하루에 친구들끼리 합쳐서 20만원을 모아와라”고 요구했고, 지시사항을 달성하지 못하면 맞아야 했다.

D군은 방학때도 형들에게 돈을 주기 위해 친구들과 알바를 해야 했다. 정말 친한 친구는 옥상에서 자살시도까지 했었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이런 ‘은어의 일상화’ 현상은 따돌림 현상이 10대들의 보편적 문화현상이나 키워드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면서 폭력물에 대한 노출, 가정과 학교의 붕괴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해 학교 폭력이 점차 잔인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왕따는 인성 파괴를 넘어 목숨까지 앗아가는 중대 범죄임에도 가해 학생들은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얼마 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한국 청소년은 다양한 이웃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이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나밖에 모르고 사는 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것이다.

최근 발생한 K군 사건에서도 K군을 폭행한 학생들 역시 “장난 삼아 한 일인데 사태가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고 진술해 충격을 줬다. 그만큼 학교에 왕따가 만연하고 이를 제어할 시스템은 전무하다는 얘기다.

학교폭력 해법은?
소통과 관심이 중요…

전문가들은 왕따의 피해를 막기 위해선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소통의 핵심은 일방적이지 않고, 상의하달식도 피하며, 서로 간에 존중하고 의견을 경청하는 자세, 그리고 이해하며 배려하는 것이다. 학생들의 잇따른 자살도 결국 왕따와 함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발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피해 학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소통의 공간이 있음을 알려줌과 동시에 학생들에게 왕따가 발생하면 학교는 물론 사법당국이 단호하게 대응한다는 신호를 반복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피해 학생에게는 신고하면 문제가 잘 해결된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가해 학생은 잘못을 반성할 수 있도록 강력한 처벌과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빵셔틀, 일진따 등 ‘은어의 일상화’가 문화로 자리잡아
“소통의 중요성” “왕따는 범죄”라는 인식 뿌리 내려야


또 전문가들이 교사가 관심만 갖고 관찰하면 피해 학생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고 말하는 만큼 무엇보다 일선 교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왕따는 저항할 능력이 없는 피해자가 대상이 되는 만큼 교사들의 도움 없이는 해결이 어렵기 때문이다.

교사는 공부만 가르칠 게 아니라 수업시간에 잠자는 학생이 누군지, 특별히 기운 없어 보이는 학생이 없는지, 소매 사이로 멍 자국이 보이는지 등을 살펴 담임교사에게 알리고 상담교사로까지 연결해 조치를 취하는 체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정부는 교사들의 잡무를 획기적으로 줄여주고, 상담교사도 늘려서 학생들을 촘촘히 살피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눈에 보여야만 해결하는 식의 사후처리 대안이 아니라 미연에 방지 할 수 있는 대비책 마련도 시급하다. 이와 관련 ‘핀란드 키바 학교의 역할극’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의 한 중학교에서는 수업에 참여한 모든 학생이 역할극을 하는데 학생들은 돌아가며 ‘왕따’ 역할을 한다. 간접적인 왕따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피해학생의 고통을 공감하고, 또 나머지 학생들은 왕따 학생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습득해 나간다.

지난해 핀란드 학교 절반가량이 사용하는 이 프로그램은 조사 결과 5000여 명의 아이들을 왕따 위험에서 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도 이제 낡은 레코드판을 다시 트는 땜질식 처방들을 버리고 장기적인 대책을 세울 때이다. 사건 직후 반짝 난리를 치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금방 제자리로 돌아가선 안 된다. 더 이상 아이들의 유서를 보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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