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추적>‘당당한 소수’ 대학가에 부는 ‘동성애 바람’

2011.12.19 09:35:00 호수 0호

“나도 대한민국 길바닥에서 ‘동성연애’ 하고 싶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동성애’는 어느새 우리 곁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챙피해>와 같이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거리낌 없이 안방극장을 드나들고 있고, 대학에서도 각종 동아리란 명목으로 활동하는 동성애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비교적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관대한 대학이라는 공간이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이 기지개를 펴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일요시사>는 심상치 않은 대학 내 ‘동성애 문화’에 대해 집중 취재해 봤다.

‘이반’ 동아리 대학마다 한 두 개씩…오프라인 활동도 활발
모임에서 서로 교제도 이뤄져…“문제는 우리 아닌 편견”

최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업전시에 반(反)동성애 작품이 출품돼 논란이 일었다.

논란은 미대 디자인학부 시각디자인 전공인 A씨가 전시한 ‘이성애 권장 반동성애 캠페인’이란 작품에서 시작됐는데, 이를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은 서울대 성소수자 동아리 큐이즈(QIS). 큐이즈측은 규탄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A의 작품이 엄연히 존재하는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8일 대학가에 따르면 큐이즈와 같은 성적소수자 동아리가 대학마다 한 두 개씩 존재하고 이들은 과거 음지에서 활동한 것과 달리 온·오프라인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서울 소재 대학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성애 동아리만 40여개.

“나는 동성애자”
당당해진 대학생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는 이모(23·여)씨와 김모(22·여)씨는 1년째 교제하고 있는 캠퍼스 커플이다. 고교시절 때부터 성적 정체성으로 고민해온 이들은 교내 성적소수자 모임에서 처음 만나 지금까지 교제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교내에서 공공연한 캠퍼스커플(CC)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최근 대학 내에선 우리와 같이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당당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여전히 동성애를 ‘사회악’이나 ‘공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상존한다”라며 “성소수자도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대학가 동성애 모임은 서울대 ‘마음001(현재 큐이즈)’과 연세대 ‘컴투게더’ 등이 그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이후 여타 대학들에도 동성애자 모임이 차례로 만들어졌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들을 위한 문화공간도 생겼다.

연세대 한 관계자는 “물론 일방적인 편견과 무관심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생 동성애 모임이 극히 폐쇄적으로 움직이고 있긴 하지만 모임 내에서 만나 공공연하게 연애가 이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그는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남들의 편견 섞인 시선보다 혼자라는 막연한 외로움인 것 같다”며 “이런 이유로 음지에서 활동하는 것보다 양지에 나와 당당히 자신을 밝히고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큐이즈’와 ‘컴투게더’ 외에도 고려대 ‘사람과 사람’, 중앙대 ‘레인보우피쉬’, 경희대 ‘이반모임’, 성균관대 ‘성퀴인’, 이화여대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 등이 성소수자를 위한 대학 내 모임들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들은 서로 교류는 자주 하지 않지만 외부 활동을 통해 만나 근황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들은 “동아리 내에서 만큼은 보이지 않는 벽이 사라진 기분이 들어서 좋지만 학교생활에선 크게 달라진 점을 찾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며 “일반 사람들과 우리가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이와 같은 생각은 대학 내 성소수자들의 모임이 ‘그들만의 공간’이라는 것을 넘어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앞장서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이중에서도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모임은 레즈비언들이 모인 이화여대의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이하 변날)’이다. 변날은 정기적인 회의와 세미나를 통해 레즈비언과 성소수자 인권의식을 높이고 있다.

변날 활동가 하라(23·닉네임)씨는 “변날은 레즈비언의 모임을 넘어 인권운동을 하는 자치단위”라며 “학교를 벗어나면 아직 성소수자의 개념조차 낯설어 하거나, 또 성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을 가진 학생들이 많은데 우리(레즈비언)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 변날의 가장 큰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변날은 지난 2001년부터 매년 레즈비언 문화제를 열며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알려왔다. 또 지속적으로 무지개행동과 차별금지법 제정연대 대학모임(이하 차별금지모임)에 참여하고 있으며 지난 학기부터는 ‘다양성 하이high라는 강의실 모니터링 프로젝트를 상시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지난달 18일에는 차별금지모임이 주최한 ‘퀴어 스토리 in 캠퍼스’라는 행사에 참여해 성소수자 인권신장에 목소리를 높였다.

‘성소수자 운동’
‘테러’에 시달리기도…

그러나 대학 내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라씨는 “매년 문화제가 있을 때마다 변날에 대한 테러가 있어왔다”며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걸개가 학생들에 의해 찢기는 등 다양한 사건이 있어왔지만 그 중 가장 논란이 된 사건은 2009년 테러였다”고 말했다.

당시 이화여대 중앙동아리로 등록되어 있던 ‘그레이트비전’이라는 기독교 동아리의 전 회장이 무지개 걸개를 도난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일이 밝혀지면서 ‘변태소녀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변날을 지지하는 이화인들의 임시모임이 생기기도 했다. 결국 전체 동아리 대표자회의를 통해 그레이트비전은 중앙동아리에서 제명됐다. 

하라씨는 “변날에 대한 호모포비아적인 사건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지만 대체적인 학내 분위기는 동성애자 뿐 아니라 이성애자가 아닌 다른 성소수자들에 대해서도 존중하고 지지도 많이 해주는 편이다”라며 “그러나 문제는 입학 후 지금 4학년이 될 때 까지도 교내에서 동성애를 대하는 태도가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는 것. 4년 전에도 타 학교에 비해 동성애를 많이 존중했고, 지금도 딱 그 정도다”라고 말했다. 

“당당한 소수로서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숨기지 않겠다”
“대학가 성소수자 인권 찾기”에 나선 동성애 학생들…


한 인권운동단체 관계자 역시 “사회·문화적으로 동성애 문화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게 된 것은 큰 변화”라면서도 “한국사회에서 차별적 시선·고립감과 싸우는 동성애자의 삶이 근본적으로 나아졌다고 보기는 힘들다”라고 전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사회에 존재하는 차이에 의한 차별과 배척의 시선,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아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의식을 확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소수자들 역시 피해의식 보다는 사회와의 소통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대학생 황모(25·남)씨는 “대학마다 성적소수자 동아리가 한 두 개씩 있다고 알고 있지만 편견과 무관심 속에 대부분 학생들이 존재조차 모르거나 관심 밖에 있다”고 지적하며 “이런 이유로 일부 학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 내 동성애 관련 동아리는 특성상 음지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소수자의 인권?
‘인식 전환이 중요’

이어 그는 “학기 초 동아리 신입생 가두모집 기간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못하고 동아리방도 없는 동성애 모임이 있다고 들었다”며 “상대적으로 사상과 표현의 자유에 관대하다는 캠퍼스 안에서도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실이 씁쓸하다. 이런 현실이 계속된다면 한국의 길거리에서 동성애자들이 당당하게 연애할 수 있는 날이 올수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학 관계자들은 “물론 대부분의 대학생 동성애 모임이 극히 폐쇄적으로 움직이고 있긴 하지만 일부 대학의 경우 공개적으로 회원을 모집하는 대자보를 학교 게시판에 붙이는가 하면 온라인카페 통해 비회원들도 이들의 주장과 활동을 알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기도 한다”면서 “이런 노력들이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 전환을 시키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수자들 역시 피해의식 보다는 사회와의 소통 노력을 보여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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