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동 최루탄’으로 본 국회 폭력 실태 현장

2011.11.28 09:40:00 호수 0호

벼랑 끝 대치에 흉기는 ‘선택 아닌 필수?’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전기톱·해머·쇠사슬…. 언뜻 보면 잔혹한 유혈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흉기들이다. 하지만 이제 이 도구들은 ‘민의의 전당’으로 불리는 국회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해마다 폭력 사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회에서 몸싸움이 일어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것. 급기야 지난 22일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던 본회의장에는 최루탄까지 등장했다. 국민들의 정치 혐오감을 심화시키고 있지만 여전히 뿌리 뽑히지 않고 있는 국회 폭력 실태를 들여다봤다.

‘민의의 전당’에서 갖가지 흉기 사용…폭력국회
국회 몸싸움 방지법 재추진에 입 맞춘 여야의원


지난 22일 국회 본청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이 터지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한미FTA 비준안을 기습적으로 통과시키면서다.

당시 여야 의원들의 대치로 본회의장 관람석 유리창이 깨지고, 고성이 오가는 등 국회는 이내 난장판으로 전락했다. 급기야 한나라당의 날치기를 방해하기 위해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 최후의 수단으로 최루탄을 사용한 것.



‘최루탄 국회’ 조롱대상

김 의원은 노트북 가방에 넣고 온 최루탄을 의장석에 앉아 있는 정의화 국회부의장을 향해 터뜨렸다. 순식간에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국민적 혐오감과 불신을 키웠던 폭력국회의 모습이 또 다시 재현된 것이다.

반복되는 한국 의회의 물리적 대치는 협정 상대국인 미국의 언론들에도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외국 언론은 일제히 이 소식을 타전했다.

<뉴욕타임즈>는 “법안을 강행 처리하기 위해 물리적 대치에 의존하는 한국 정당의 성향으로 봤을 때 폭력적인 충돌은 불가피했다”고 전했다. <AP통신>은 “한국 국회에서 이 같이 혼란스런 상황은 흔하다”고 보도했다. 실제 국회의 폭력사태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때마다 조롱의 대상이 됐다. 정치 전문가들은 “누군가 죽어서 나가기 전까지는 국회에서 폭력이 상습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갖가지 흉기들이 국회에서 버젓이 사용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흉기들은 회의장 출입을 막거나 막힌 회의장을 뚫기 위해 매번 등장한다. 그 종류도 서류뭉치, 물컵, 신발부터 쇠사슬, 철봉, 전기톱, 해머까지 다양하다.

18대 국회에서는 지난 2008년 12월 여야의 폭력사태가 처음 벌어졌다. 당시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여야는 한미FTA 비준동의안의 상임위 상정을 두고 맞붙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야당의 ‘방해’를 피해 비준동의안을 상정하기 위해 외통위 본회의장 문을 걸어 잠궜다.

이에 맞서 문학진 의원을 필두로 민주당 당직자들은 대형 해머와 전기톱을 동원했다. 안에 있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민주당 의원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소화기 분말을 뿌려댔다. 당시 문 의원은 문을 때려 부숴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2009년 7월에는 여당의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과정에서 폭력사태가 재현됐다. 민주당 의원과 보좌진은 미디어법 본회의 처리를 막기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출입을 막았다. 소파와 집기류 등으로 만든 바리케이드가 쳐졌고 출입문은 쇠사슬 등으로 봉쇄됐다.

2010년 12월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는 본회의장 출입을 놓고 여야 의원과 보좌진 간에 난투극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김성회 의원은 민주당 강기정 의원을 쫓아가 주먹질하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의원은 물론 보좌진까지 코뼈가 부러지고 실신하는 등 폭력으로 국회가 마비됐다. 이후 두 사람은 화해했지만 ‘격투기 국회’로 기록되는 오명을 남겼다.

2007년 BBK특검법 처리 때도 전기톱이 등장했다. 대선을 앞두고 BBK특검법은 정국의 가장 민감한 사안이었다. 국회 사무처 소속 경위들은 한나라당이 전날 원천봉쇄한 본회의장 개방을 위해 전기톱으로 출입문을 막고 있던 파이프 등을 절단했고, 통합신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 진입해 의장석 주변을 점거 중인 한나라당 의원들을 밀어내고 의장석을 차지했다.
 
당시 한나라당 차명진, 최구식 의원 등이 각각 허리와 얼굴 등에 부상을 입었고, 통합신당 정봉주, 서갑원 의원 등도 지팡이 등에 맞아 다쳤다.

국회 폭력 근절될까?

이처럼 국회가 폭력으로 얼룩지자 18대 국회에서 ‘몸싸움방지법’이라도 확실하게 처리, 반복되는 나라 망신을 근절하자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예산국회가 진행 중이지만 다음달 9일까지 열리는 회기 내 2년째 방치된 ‘몸싸움방지법’을 재추진하자는 것.

사실상 국회 폭력을 방지하는 법안은 이미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국회폭력 방지 등 선진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원내수석부대표 등으로 구성된 ‘6인 회의’는 지난 6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강화하고, 본회의에서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제도를 도입하기로 합의까지 했다.

이들은 천재지변 등으로 인한 국가재난이 있을 경우에만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대신 상임위에서의 법안·안건 심사 완료시한을 정하는 ‘신속처리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야는 본회의에 자동 상정할 수 있는 정족수와 보좌관의 회의장 출입 금지 등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다 한·미 FTA 대치국면을 맞은 것이다.

유난히 폭력으로 얼룩졌던 18대 국회. 스스로의 잘못을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후대의 선진 국회 기틀마련에라도 힘써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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