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계 인사 빼곡, 건설사 ‘뇌물 수첩’ 미스터리

2011.11.14 09:20:00 호수 0호

메가톤 충격 담긴 ‘회장님 다이어리’

[일요시사=박민우 기자] 정·관계가 술렁이고 있다. 지방발 ‘스폰서 살생부’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기업체 오너가 작성한 이 리스트엔 그동안 접대한 인사들이 빼곡하다. 거액의 돈을 건넨 정황도 담겼다. 지검장을 낙마시킬 정도로 메가톤급 충격이 담긴 ‘회장님 다이어리’를 펼쳐봤다.

하도급 비리 수사 과정서 ‘스폰서 리스트’ 발견
수백만원씩 건넨 내역 메모…‘판도라 상자’ 덮나


신종대 대구지검장이 돌연 사표를 냈다. 신 전 지검장은 대구지검장 발령 2개월 만인 지난달 27일 사직했다. 지병을 앓고 있는 부모와 개인 건강 등 일신상의 이유로 물러났다는 게 검찰 설명. 하지만 신 전 지검장의 갑작스런 사퇴를 두고 뒷말이 많다. 금품수수 의혹으로 경찰의 내사를 받던 중이어서 더욱 그랬다.

전남지방경찰청은 지난 4월부터 건설업체 하도급 비리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도장전문업체 P사 K회장이 신 전 지검장에게 금품을 전달한 정황을 포착했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2006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1400만원이 신 전 지검장 측에 넘어간 메모를 발견했다. K회장의 다이어리였다.

마당발 인맥 자랑



경찰은 이 메모를 근거로 6개월 동안 강도 높은 내사를 벌였다. 그러나 신 전 지검장을 기소하지 않았다. 경찰은 1400만원 가운데 확인된 금액이 90만원으로 소액이고, 공소 시효가 대부분 지난 데다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검찰 지휘를 받아 지난달 25일 최종 내사종결 처리했다.

경찰은 이튿날 K회장과 그의 사위이자 P사 대표, 경리사원 등 3명에 대해 최근 3년간 약 110억원 상당의 공사를 수주한 후 무면허 건설업자 23명에게 불법 재하도급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신 전 지검장은 조용히 사표를 냈다.

이렇게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했지만, 최근 K회장의 다이어리에 정·관계 인사들에게 금품을 전달한 내역이 담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경찰 안팎에선 메가톤급 충격이 담긴 다이어리가 공개될 경우 파장이 만만찮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어 정·관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경찰은 지난 4월 불법 재하도급 비리를 수사하면서 K회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13권의 다이어리를 압수했다. 문제는 이 다이어리에 이름을 올린 인사는 신 전 지검장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신 전 지검장 외에 정·관계 인사 4∼5명도 돈을 받은 것으로 적혀 있다. K회장이 신 전 지검장뿐만 아니라 정·관계 인사들에게도 금품을 건넸다는 정황이다.

경찰에 따르면 책상 달력 형태의 이 다이어리엔 2000년부터 K회장이 만난 사람, 장소, 시간, 금품 내역 등이 메모 형식으로 기록돼 있다. 여기엔 K회장이 이들에게 2000년부터 2006년 9월까지 수표로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의 금품을 건넨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K회장과 리스트에 오른 정·관계 인사들의 계좌 100여개와 자기앞수표 2000여장 등을 추적한 결과 이같은 증거를 일부 확보했다.

나아가 관련 업계는 K회장이 평소 정치 쪽으로 마당발 인맥을 자랑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K회장의 ‘스폰서 다이어리’에 거물급 정치인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도 “K회장의 다이어리에 등장하는 인사들은 신 전 지검장 말고도 한두명이 아니다”라며 “금품수수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일단 돈이 오간 표시는 돼 있다”고 귀띔했다.
K회장이 오너로 있는 P사는 1980년대 중반 설립된 회사로 연매출 수백억원대의
도장·방수 전문업체다. 서울과 전남 여수에 사무실이 있다. K회장은 P사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2008년부터 경영을 사위 김씨에게 맡기고 대외 행보를 본격화했다. K회장이 정치권으로 발을 넓힌 것도 이때부터다.

K회장은 2007년 6월 김영삼 전 대통령 직계의 민주계 인사 200여명이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할 때 참여했다. 또 모 단체 고문을 맡으면서 정치권 인사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래서인지 K회장은 경찰 조사에서 “내가 누군지 아느냐. 이명박을 지지한 김영삼 직계”라고 으스댔다는 후문이다.

경남 거제 출신인 K회장은 김 전 대통령과 동향이다. 신 전 지검장도 고향이 같다. ‘회장님 다이어리’에 올라있는 정·관계 인사 4∼5명 역시 K회장과 동향이거나 개인적 친분 관계가 깊은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는 “K회장은 자신이 유명 정치인들과 친하다는 말을 주변에 자랑스럽게 하고 다녔다”며 “지금은 정계에서 은퇴한 정치인이 대부분이지만 현직에 있는 정치인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신 전 지검장과 마찬가지로 K회장이 돈을 건넨 것으로 표시된 인사들에 대해 내사를 벌였다. 뇌물수수, 배임,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 적용을 검토했다.

정치인들과 친분

내사 과정에서 모 사립대 교수 3명이 걸려들었다. 다이어리엔 이들이 2006년 K회장의 대학원 논문을 대신 써준 대가로 각각 수백만원씩을 K회장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경찰은 조만간 교수들을 불러 논문 대필 혐의에 대해 조사, 입건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경찰은 지방발 ‘살생부’에 오른 나머지 인사들에 대해선 신 전 지검장처럼 내사 종결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소시효가 모두 지난 데다 대가성 역시 입증하기 어렵다는 까닭에서다.

일부의 경우 단순히 개인적인 친분관계에 의한 금품제공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또 금품이 전달된 시점에 정·관계 인사들이 현직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직무 내지 업무관련성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경찰은 소환조사 등 관련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수사를 하지 않은 채 내사 종결해 부실수사란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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