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붓 대신 주사기’ 든 윤종석

2018.10.29 10:30:49 호수 1190호

잔상을 지워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윤종석 작가의 개인전 ‘날개 밑의 바람’이 소피스 갤러리에서 열린다. 윤종석은 이번 전시서 신작 30여점을 소개한다. 날개 밑의 바람이라는 제목은 새가 날아오르려면 바람을 일으켜야 하듯, 현재가 있기 위해서는 과거, 미래를 위해서는 현재가 필요하다는 맥락서 붙였다. 표현하고자 하는 기억과 잔상의 연관성이 모티브다.
 



윤종석은 그동안 일상서 발견한 소소한 장면과 주변의 인물을 주제로 작품을 구현해왔다. 독특한 점은 그가 붓이라는 일반적인 도구가 아니라 주사기를 매개체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반복적으로 무수한 점을 찍어 표현한 이전의 작품들은 멀리서 봤을 때 치밀하게 집적된 형태를 보인다.

점→흩뿌림

최근에는 반복적인 물감의 주입과 흩뿌림으로 여러 겹의 마티에르를 쌓아 올리면서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의 본질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윤종석은 이번 신작서 주사기를 사용한 선 그리기라는 조형 방식의 맥락을 유지하면서도 작품의 화면을 위아래로 분할하고 양면 모두를 사용하는 방식을 선보였다.

평면이면서 작품을 다각도서 볼 수 있도록 설치함으로써 평면성을 획득함과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는 새로운 방향성을 소개하고자 했다. 작품 뒷면의 ‘잔상’은 관람객들이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이미지지만, 앞면은 추상성을 지닌 색면으로 이뤄졌다.

흥미로운 점은 파악이 가능한 이미지인 잔상, 즉 전면이라고 착각할 수 있는 면은 지워진 밑그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뒷면은 지워진 밑그림
앞면은 추상성 띤 색면

윤종석은 뒷면에 밑그림을 그린 후 그것을 지워내는 작업을 통해 작품을 완성시키는 아이러니한 방법을 선택했다. 밑그림을 지워내며 그림을 완성하는 방식은 마치 선명했던 기억이 잊히거나 다른 기억에 덧씌워지는 것에 대한 시각적이며 은유적인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물감이라는 은유의 물성이 쌓이면서 작품의 잔상들은 사라지고 현재의 반대편이 남게 된다.

윤종석은 이런 기법을 통해 기억의 소멸성, 나아가서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이라는 문제에 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기억의 잔상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의 뒷면을 살펴보면 '같은 날의 잔상’이라는 작품의 제목처럼 윤종석이 경험한 어떤 날과 어느 해의 같은 날 일어났던 과거의 잔상들이 위아래로 나뉘어 있다.

예를 들어 발목이 묶여 자유롭게 날지 못하던 가녀린 새 한 마리를 카메라에 담은 날과 과거의 동일한 그날에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교도소에 있어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사오보를 기리는 촛불이 타올랐다.

윤종석은 개인적인 경험과 선택된 일화를 함께 화면에 담는 방식을 취했다. 같은 날 일어났던 개인적이면서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두 장면의 이미지 위에 조형성과 색감을 더해 화면을 통합시켰다. 이 과정서 잔상들은 그림과 동시에 지워졌다.

한날 개인·사회적 기억
한 화면에 상하로 담아

잔상을 지워가며 그림을 완성시키는 방식은 작가의 경험에 의한 작품 변화의 맥락 속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윤종석에 의하면 그의 작품은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바니타스화의 현대적 변용의 표현이다. 바니타스는 허무, 허영 등을 의미한다. 

스러져 가는 기억들을 작품 위에 붙잡아 놓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흐트러짐과 사라짐을 받아들였다.

김민기 대전시립미술관 전시팀장은 “윤종석의 작품을 오랜 시간 천천히 살펴보면 현실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세상의 끝을 바라보고 동시에 이 세상의 끝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상호적인 독특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모든 차원의 틈을 직시하고 새로운 회화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혼란스러울수록 실체와 허체의 양쪽 모두를 이해하는 윤종석의 태도를 보면 이분법적이고 흑과 백을 가리는 것이 무의미해졌는지도 모른다”며 “앞으로 어디까지 선을 그을지 모르지만 선을 긋는 시간만큼 긴 숨을 쉬고 고즈넉한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끝까지 바라보길 기대해본다”고 덧붙였다.

희미한 기억

소피스 갤러리 관계자는 “윤종석의 이번 신작서 작품의 앞을 채워나가며 밑그림이 덮이는 과정들은 바니타스화적 측면이 더 강화됐다고 할 수 있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은 시각적이면서도 형태를 가질 수 없는 기억이라는 주제를 표현한 작품을 보며 이 무형의 기억을 평면에 시각화한 작가만의 시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29일까지.
 

<jsjang@ilyosisa.co.kr>

 

[윤종석은?]

▲1970년생

▲학력

한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졸업(1997)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 졸업(2000)


▲개인전

‘날개 밑의 바람’ 소피스 갤러리, 서울, 한국(2018)
‘New Dimension’ Julia Gallery, 타이페이, 대만(2016)
‘Pli-주름’ 에비뉴엘 아트홀, 서울, 한국(2016)
‘나의 10년의 기록’ 충무아트홀 갤러리, 서울, 한국(2016)
‘That Days’ 갤러리현대 윈도우, 서울, 한국(2015)

▲수상

대전광역시 초대작가상
대한민국 미술대전 우수상 및 특선
대한민국 청년 비엔날레 청년 미술상
롯데 갤러리 유망작가 지원 프로그램 선정
2006 화랑미술제 Best Top 10 작가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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