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기획>10·26이 남긴 것들②여야 잠룡 성적표

2011.10.31 09:15:00 호수 0호

혹시나 했던 ‘문풍’ 쏘옥, 역시나 했던 ‘안풍’ 쌩쌩

[일요시사=이주현 기자]2012년 총선과 대선의 바로미터로 여겨졌던 10·26 재보선이 박원순 야권통합후보의 승리로 귀결되면서 차기 대권주자들에게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최대 수혜자는 단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최대 피해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다. 그동안 ‘노무현 정신 계승’을 주장하며 바람몰이에 나선 친노세력도 4·27 재보선 이후 연이은 패배로 ‘노풍’이 사그러들었고, 대세는 ‘안풍’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준 선거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10·26재보선 성적표를 손에 쥔 잠룡들의 득실을 따져봤다.

서울시장 당선 1등 공신, 야권 대선주자 발돋움한 안철수
‘선거의 여왕’에서 ‘잠자는 숲속의 공주’로 전략한 박근혜   
   

서울시장 선거가 가진 의미는 아주 크다. 과거 열린우리당의 집권이 조순 시장의 당선으로 시작되었고 한나라당의 집권도 이명박 시장의 당선으로 그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시장 선거는 대선의 전초전으로 여겨진다. 이번 10·26 재보선의 최대 격전지였던 서울시장 선거는 단순히 나경원·박원순 두 후보의 대결이 아니라 훨씬 큰 의미를 지닌 중요한 선거였다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최대 수혜자 단연 안철수
정계개편 중심에 ‘우뚝’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이긴 것은 박 시장이지만 정작 최대의 수혜자이자 승자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안 원장은 출마의사 표명 단계서 후보직을 사퇴하며 5%에 불과했던 박 시장 지지율을 50%까지 치솟게 해 초반기선 제압에 크게 일조했다. 또한 막판 지지의사 표시 등으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박 시장 승리의 1등 공신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과정은 안 원장 본인 의사와는 관계없이 정치적인 행위로 비쳐졌고 박 시장의 승리로 ‘대선주자 안철수’ 입지도 상당히 강화됐다는 평가다.

이처럼 안 원장은 정치권에 얼굴을 들이민 지 두 달여 만에 일약 ‘주류’로 자리를 잡았다.
 
박 시장에게 서울시장 출마를 양보한 뒤 침묵을 지켰던 그는 2장짜리 편지로 접전 양상이었던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가장 적은 노력으로 제일 큰 이익을 거뒀으니 이른바 ‘닭 잡는 칼로 소를 잡은 격’이다.

향후 정국은 ‘안철수 태풍’이 기성 정치권을 강타할 공산이 크다는 게 정치권의 조심스런 분석이다. “학교 일도 벅차다”며 한 발 빼는 듯한 안 원장이지만 박 시장을 중심으로 신당 창당이 추진되는 등 정치권 재편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 원장은 지난 27일 학생회의 참석을 위해 서울대 행정관을 찾은 자리에서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것에 “당혹스럽다”며 “그런 결과들은, 글쎄요”라고 말끝을 흐렸다. 정치에서 발을 빼면서도 완전히 ‘정치 안 한다’고 선을 긋지는 않은 셈이다.

본인 스스로는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이미 민심은 그의 출마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이자 박근혜 대세론에 필적하는 유일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안 원장이 실제 현실정치에 발을 들이고 총선과 대선 등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검증이라는 험준한 난관을 넘어야 한다.
 
당장 수천억 원의 재산 등이 검증대상으로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또한 조국 서울대 교수와 더불어 대표적인 ‘폴리페서’(정치참여 교수)라는 비판도 넘어야 할 벽이다.
 
또한 이번 선거에 한계로 드러난 ‘50대 이후 중장년층 흡수’ ‘지방세력 확대’를 극복할 방법도 찾아야 한다.


박근혜 흔들리는 ‘대세론’
급부상하는 ‘대안론’


반면 박 후보 당선으로 박 전 대표는 큰 타격을 입었다.

과거 “대전은요?”라는 한 마디로 판세를 뒤집고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은 박 전 대표지만 이번에는 이렇다 할 ‘한방’이 없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선거지원을 했고 선거 전날 나경원 후보에게 현장의 소리를 담은 ‘수첩’을 전달했지만 안철수의 ‘편지’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실제 <YTN>이 발표한 예측조사에 따르면 ‘박 전 대표의 선거지원으로 나 후보를 선택했다’는 응답자는 19.4%, ‘안 원장의 막판 지원으로 박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응답자는 28.6%였다. 서울에선 선거의 여왕 박 전 대표의 바람이 안 원장보다 약했다는 결과였다.

지난 4년간 침묵을 깨고 중앙당 차원에서 지원에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박 전 대표는 얻은 것이 없다는 평가다. 대신 안풍에 밀려 대세론에 금이 간 게 확인되었고 여권에서 대두되는 ‘박근혜 대안론’과 ‘수도권 한계론’이 그를 덮쳤다.

위기감이 커질 대로 커진 상황에서 박 전 대표의 수도권 한계론은 총선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지방에선 위력을 보여줬지만 서울에서 지고 대권을 거머쥐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20~40대 표심을 잡지 않고서 승리하기란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박근혜 대세론에 밀려 좀처럼 활동 공간을 찾지 못했던 정몽준 전 대표나 김문수 경기지사, 이재오 전 특임장관 등 여타 잠룡들이 정치적 움직임을 모색하면서 박 전 대표를 견제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한나라당 핵심 당직자는 “박근혜 대세론은 한나라당을 안주하게 만들었다”고 자성한 뒤 “그래도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런 분위기를 차단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친박계 한 핵심 의원은 “이번 선거로 박근혜 전 대표가 좋은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평했다.
 
이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 결과만 봐서는 안 된다”며 “박 전 대표가 유세에 나섰던 다른 지역에서 판세를 뒤집은 곳도 많다. 서울시가 민심의 전체는 아니다”고 이번 선거지원을 통해 지방에서 변함없는 영향력을 보여준 것을 강조했다.

친박 의원들은 막판 안 원장이 끼어들며 판세가 야당 쪽으로 기울었지만 초반 ‘대패’가 자명했던 판세를 박빙으로 만든 데는 박 전 대표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노무현 정신 계승하며 잇단 선거 패배로 흔들리는 문재인
공황상태 빠진 한나라당, ‘정체성’ 논란 가중되는 민주당

안 원장을 제외하고 야권 대권주자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 중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화력을 집중한 부산 동구청장 선거에서 이해성 민주당 후보가 다소 큰 표 차이로 낙선해 체면을 구겼다.

문 이사장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친노 진영의 결속을 다지고 야권 통합 논의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선거에 직접 뛰어들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당초 박근혜 대 문재인의 ‘대리전’ 양상을 띤 부산 동구는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강세지역이었다.
 
야권의 유력주자 들이 적극적으로 도왔고 문 이사장은 선거 기간 내내 상주하다시피 전력을 쏟아 부었지만 승부는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 부산에선 “박근혜가 문재인 바람을 잠재웠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문 이사장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어느 정도 득표력을 보여주면서 수도권에서 입지를 다졌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이처럼 문 이사장의 첫 정치적 시험대인 이번 재보선 결과만으로 그의 정치적 득실은 명확히 갈리지 않는다. 부산 동구가 한나라당의 텃밭인 점을 감안하면 문 이사장이 지원한 야권 후보가 36.59%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를 두고 야권에서는 “절반의 패배,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 같다” “현실의 벽을 실감하게 됐을 것이다” 등의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그가 상임대표로 있는 ‘혁신과 통합’이 서울과 부산에서 범야권 단일후보를 당선시켜서 향후 야권통합 국면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려던 계획에는 숨고르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실 벽 실감한 문재인
‘절반의 성공’ 확인


정치권에선 문 이사장이 내년 총선에서 부산 출마를 포함한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번 재보선에서 지원군 역할로는 한계가 드러난 만큼 본인이 직접 부산·경남(PK)지역에서 야권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문 이사장이 내년 총선에서 야권의 PK 진출을 견인하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서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10·26 재보선은 대선주자들의 입지에 크나큰 영향을 가져왔고 이로 인해 정치지형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당내 혼란과 심각한 후폭풍도 몰고 왔다.

한나라당은 공황상태에 빠진 현재의 위기국면을 수습하면서 총·대선 체제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제1야당으로서 후보를 내지 못한 민주당은 지도부 책임론이 대두되며 ‘정체성’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10·26 재보선 성적표를 쥐고 웃고 울고 있는 대선주자들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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