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일감 몰빵’ 대기업 내부거래 실태 (24)벽산그룹-인희

2011.10.18 09:15:00 호수 0호

차라리 거지 ×××서 콩나물 빼먹지…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대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곳간’을 채워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민단체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적해 왔지만 변칙적인 ‘부 대물림’은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한때 재계 순위 30위권에 들었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는 벽산그룹은 지난 9월 기준 총 6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중 오너일가 지분이 있으면서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회사는 ‘인희’다. 이 회사는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줘 실적이 거의 ‘안방’에서 나왔다.

1952년 설립된 인희는 아파트에 들어가는 시멘트, 레미콘, 철근 등 건자재 납품과 창호 공사, 발코니 확장 등 실내건축 업체다. 생전 영화에 애착이 컸던 고 김인득 벽산그룹 창업주가 극장사업을 벌이기 위해 창업한 회사(설립 당시 동양영화)로, 이는 벽산그룹의 모태이기도 하다. 명동 중앙극장과 종로 단성사·피카디리극장, 부산 부영극장·대영극장, 광주 동방극장, 대구 만경관·제일극장, 진주 시공관, 인천 동방극장 등을 운영했다.



매년 80∼90% 의존

그러나 1991년 장남 김희철 회장에게 경영을 맡긴 이후 1994년과 1998년 인희산업과 벽산산업개발을 잇달아 흡수합병하면서 사명을 인희로 바꾸고 지금의 사업영역으로 전환됐다. 일각에선 김인득 창업주와 아들들(희철-희용-희근) 이름의 가운데자 ‘인’자와 ‘희’자를 따서 회사 이름을 ‘인희’로 지었다는 설도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인희의 주요주주는 벽산그룹 오너일가로, 김 회장과 특수관계인들이 73.7%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인희는 다시 그룹 주력사인 벽산건설 지분 52.1%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오너일가가 인희를 통해 벽산건설을 지배하는 구조다.

김 회장은 부인 허영자(고 허정구 삼양통상 회장 장녀)씨와 사이에 2남1녀(성식-찬식-은식)를 두고 있다. 이중 두 아들은 각각 ㈜벽산 사장, 부사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물론 두 며느리(박성희-장현주)까지 ㈜벽산 주요주주로 있다.

사실상 오너일가 회사에 벽산건설 집중지원
신생 벽산엘티씨도 한해 수백억씩 몰아주기


문제는 인희의 자생 능력이다. 그룹 차원에서 ‘힘’을 실어주지 않으면 사실상 지속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건설 연관 사업을 하다 보니 내부 물량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할 처지다.

인희는 지난해 매출 2616억원 가운데 87%인 2269억원을 계열사와의 거래로 올렸다. 인희에 일거리를 넘겨준 곳은 벽산건설. 벽산건설은 건설 사업장에 들어가는 건축자재 등을 인희에 발주했다. 2009년에도 내부 매출이 87%나 됐다. 총매출 2025억원에서 벽산건설과 거래로 거둔 금액이 1759억원에 달했다. 

그전엔 더 심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매출이 벽산건설에서 나왔다. 인희가 벽산건설과 거래한 매출 비중은 ▲2000년 74%(총매출 564억원-벽산건설 거래 415억원) ▲2001년 51%(775억원-396억원) ▲2002년 58%(404억원-235억원) ▲2003년 46%(50억원-23억원)로 평균 절반 이상 웃도는 수준이었다. 이후 의존도는 더 높아져 ▲2004년 97%(633억원-612억원) ▲2005년 98%(1010억원-993억원) ▲2006년 97%(1723억원-1665억원) ▲2007년 90%(2438억원-2184억원) ▲2008년 93%(2107억원-1966억원)로 치솟았다.

한 시민단체는 “벽산건설과 인희간 내부거래는 불공정 가능성이 높고 거래 자체도 매우 불투명하다”며 “벽산건설의 김 회장이 인희의 최대주주로 있어 이해관계가 상충하고 인희와의 거래로 인한 이익은 김 회장의 개인 이익이 되므로 불공정 거래나 회사 기회 유용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눈여겨 볼 점은 인희가 기대고 있는 벽산건설도 사정이 녹록치 않다는 사실이다. 1998년 외환위기(IMF) 당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가까스로 위기를 극복한 벽산건설은 시공능력평가 20위권의 중견 건설업체로 재도약했지만, 지난해 7월 기업신용위험 평가 결과 부실징후기업으로 분류돼 또 다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벽산건설은 지난 8월 채권단으로부터 1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받는 등 재무구조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지난해 상반기 6874억원이던 매출액이 올해 3643억원으로 줄었고 당기순손실도 187억원에서 561억원으로 적자폭이 더 커지는 등 힘든 상황이다. 인희는 한창 경영정상화에 진땀을 흘리고 있는 벽산건설에 큰 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장남 회사도 의심

벽산건설이 왜 굳이 인희를 업고 가는지도 의문이다. 두 회사는 2002년 합병을 추진하다 갑자기 취소한 적이 있다. 당시 취소사유에 대해 “합병이 불가해 자진 취소한다”고만 했을 뿐 정확한 이유나 배경을 밝히지 않았다.

계열사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의심되는 벽산그룹 계열사는 또 있다. 바로 ‘벽산엘티씨엔터프라이즈’다. 지난해 설립된 이 회사 역시 건축자재 업체로, 김 회장의 장남 성식씨가 지분 20%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아직까지 그룹에서 밀어주는 정확한 물량은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역으로 계열사 공시를 통해 거래 내역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벽산은 지난해 벽산엘티씨로부터 142억원어치의 상품을 매입했다. 


올 들어 지난 6월 말까지 매매금액은 115억원 정도. 하츠도 벽산엘티씨에서 원부자재를 매입하고 있는데, 그 금액이 올 상반기까지 93억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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