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로 쪼개진’ 노량진수산시장은 지금…

2018.05.23 10:34:51 호수 1167호

활기 사라지고 팽팽한 긴장감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노량진 수산시장이 신시장과 구시장으로 쪼개진 지 2년이 훌쩍 넘고 있다. 하나의 시장이 두 곳으로 나뉘면서 과거 노량진 수산시장 특유의 활기 넘치고 정겨운 분위기는 없어진 지 오래다. 과거에 한 지붕 아래서 오랜 세월을 울고 웃으며 함께 생업을 이어나간 사람들. 현재는 10m라는 짧은 거리를 두고 적막과 긴장감만이 감돌고 있다.
 



노량진 수산시장이 신시장과 구시장으로 쪼개진 지 2년이 지났다. 신시장 건물이 2015년 10월 완공되고, 이듬해 3월 정식 개장했다. 그러나 신시장을 운영하는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수협)와 구시장 상인들과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수협은 구시장 강제철거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량진 수산시장 입구에는 ‘신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오세요’라는 안내문과 ‘구시장 정상영업 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 있다. 2년 넘게 진행 중인 해묵은 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모습이다. 

여전한 대립

처음엔 점포 크기(4.95㎡·1.5평)와 임대료를 두고 설왕설래 했다. 이제는 크기와 임대료로 다투지 않는다. 그저 “신시장에 들어와 장사하라”고 하면 “싫다. 구시장서 장사하게 해달라”는 외침만 반복하고 있다. 좀처럼 이 평행선이 좁혀지지 않는다. 

갈등이 계속되는 사이 국내 최대 수산시장이라 불리던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실제 신시장과 구시장을 모두 둘러본 결과 시장이 분리돼있다 보니 손님들도 어디를 찾아야할지 고민하고 전체적으로 한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매출도 줄어들었다. 수협에 따르면 수산시장 매출은 2016년 3037억원, 지난해 3163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구시장만 운영할 때보다 최대 10%가량 줄어든 수준이다. 구시장 상인들은 “예전보다 손님이 30~40%정도 줄었다”고 아우성친다.

수협은 협상이 최종 결렬되면 강제집행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당장은 물리적 충돌이 없는 상황이지만 언제라도 갈등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신시장에는 1000여개의 점포가 입점해 장사를 하고 있고, 구시장에는 270여개 점포가 남아있다.
 

지난해 10월 말까지 서울시가 다섯 차례나 갈등조정협의회를 열었지만 수협과 구시장 측은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했다. 수협은 구시장 상인들의 신시장 입주 방침을 전달했다. 구시장 상인들은 구시장에서의 장사를 고수했다. 

이들은 높은 임대료와 좁은 공간을 이유로 신시장 입주를 거부한다. 구시장 상인 허모(61)씨는 “판매 공간은 줄었는데, 임차료는 두 배 이상 뛰었다”고 말했다. 

신시장의 점포는 구시장에 비해 판매대 주변의 여유 공간이 좁다. 매장 면적은 구시장과 신시장 모두 4.95㎡(1.5평)로 같지만 구시장이 더 넓은 셈이다. 이는 구시장 상인들이 통로 공간을 무단 사용한 것에 따른다고 수협 측은 주장하고 있다. 

신시장의 임대료는 구시장보다 1.5~2.5배가량 높다. 

3년 동안 이어진 갈등…양측 강경한 입장
매출 10% 감소…‘국내 최대’위상 퇴색

수협 관계자는 “높아진 임대료에는 환경 개선에 들어간 투자 비용이 포함된 것이다. 구시장 상인들에게 ‘이주하면 임대료를 4개월간 면제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사태와 관련해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수 차례에 걸쳐 갈등조정협의회를 열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김임권 수협중앙회장이 직접 구시장 상인 대표들을 만나 신시장 구조 변경 등의 개선을 약속했지만 이 역시도 구시장 측의 반대로 협상이 결렬됐다.


신시장에 입주한 상인 이모(58)씨는 “구시장에서 버티면 쫓겨날까 봐(명도집행) 염려돼 어쩔 수 없이 왔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추위나 더위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는 등의 장점이 있다. 영업 환경도 쾌적하다”고 말했다. 

김모(58)씨는 “손님이 구시장과 신시장으로 나뉘면서 매출이 30%가량 줄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시장을 자주 이용한다는 주부 전모(60)씨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하루빨리 합의점을 찾아서 예전처럼 정겨운 시장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결국 일이 터졌다. 서울 한복판에서 성인 수십 명이 격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수협이 구시장의 주차장을 폐쇄하기 위해 쇠사슬을 설치하자 상인들이 막아선 것. 

검은 옷을 입은 남성들이 다가오고 대열을 만든 상인들이 이를 막아섰다. 한시간 넘게 욕설과 몸싸움이 오갔다. 밀고 밀리는 가운데 다치는 사람도 속출했다.

지난달 26일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비상대책총연합회 소속 상인들이 생존권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날 결의대회에 참석한 상인들은 수협이 구시장의 활성화와 상인들의 생존권 확보를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협은 구시장을 완전히 폐쇄하고 상인들을 신시장 1층과 2층으로 나눠 이사하도록 할 계획이다. 하지만 일부 상인들의 반발은 커져만 간다. 배정된 장소가 협소하고 2층의 경우 손님 접근성도 떨어진다는 이유다. 구시장에 대한 강제 철거도 거론되는 상황서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협 관계자는 “문제가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바라지만 이 상태로 계속 갈순 없다”며 “결국 안 되면 강제집행 절차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강제철거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강제철거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노량진시장 소유권을 가진 수협은 명도소송(소유자 외의 사람이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는 경우 넘겨달라는 소송)서 승소한 상태인 만큼 법적으로는 구시장 상인들을 쫓아낼 권리가 있다. 


돌파구 없나?

구시장 측 비상대책총연합회 관계자는 “앞으로도 대화는 계속해 나갈 것”이라며 “더불어 법적 대응과 투쟁을 병행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또 “모든 협상이라는 게 벼랑 끝에 가야 타결이 된다고 본다”며 “만약 강제집행이 시작되면 죽기 살기로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신중한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이달 열리는 수협 설명회에서 두 당사자 간 대화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끝내 협의를 하지 못하면 시가 다시 중재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수협과 구시장 측은 이달 중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 논의를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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