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부업’ 상장사 사외이사 대해부

2011.07.19 10:10:00 호수 0호

일당 1000만원짜리 한 마디 “오너 말에 동의요~”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거액의 연봉을 받지만 하는 일은 거의 없다. 1년에 열 번 정도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하는 게 전부다. 그마저도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다. 혹 가더라도 올라온 안건에 찬성표만 던지면 된다. 그래도 걱정은 없다. 책임질 게 없어서다. 이는 모두 기업·금융권의 사외이사 얘기다. 이들이 이처럼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업무를 외면한 채 오너가 주는 떡고물을 받아먹고 있는 사이 소액주주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현대제철, 연봉은 9700만원…하루 임금이 970만원  
총 2685건 중 사외이사의 반대로 부결된 안건 4건

국내 100대 상장사 사외이사들의 연봉이 공개됐다. 이들은 최대 1억원 가량의 연봉을 받으면서 1년에 약 열흘만 이사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당이 1000만원 수준인 셈이다. 그야 말로 ‘신이 내린 부업’이다.

최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제철 사외이사의 평균 연봉은 9700만원이었다. 이 회사 사외이사가 정기?임시 이사회에 참석한 날은 모두 열흘. 하루 임금이 970만원 꼴로 계산됐다.



현대모비스 9400만원
LG전자 8300만원

현대제철 사외이사들은 이사회의 분과위원회인 윤리위원회, 감사위원회 위원으로서 각각 별도의 회의를 했다. 하지만 개최일은 이사회 날과 같았다. 이 기업의 사외이사 평균 연봉은 등기이사의 15억5700만원보다는 적지만 직원들의 7000만원보다는 많았다.

현대모비스 사외이사들의 평균 연봉은 9400만원이었으며 모두 11차례 정기·임시 이사회에 참석했다. 1차례에 855만원인 셈이다. 이 회사 사외이사 역시 윤리위와 감사위 위원을 겸직하고 있으나 회의 날은 정기·임시 이사회와 겹쳤다.

LG전자 사외이사 연봉은 8300만원이었다. 10회의 정기·임시 이사회를 고려하면 일당은 830만원으로 환산됐다. 또 현대차 8100만원, SK텔레콤 7800만원, LG 7600만원, 기아차 7100만원 등으로 파악됐다. 삼성전자 사외이사 연봉은 6000만원으로 중간 수준이었다. 금융기관인 신한지주는 5100만원, 우리금융은 4700만원으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사외이사들의 연봉이 공개되자 하는 일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평소 회사 현안을 고민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해당 회사들의 항변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연봉수준이라는 게 대체적인 정서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사외이사에게 이처럼 많은 돈을 주는 까닭은 뭘까. 그 해답은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감사위 회의 등에 참석해 활동한 내역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100대 상장기업의 이사회 안건은 모두 2685건이었다. 이 가운데 사외이사의 반대로 부결된 것은 전체의 0.15%인 4건에 불과했다. 또 전체 사외이사 466명 중 찬성 이외의 의견(반대·보류·기권·수정의결·조건부찬성)을 단 한 번이라도 낸 사람은 46명(9.8%)에 그쳤다.

나머지 90.2%는 어떤 안건이 올라오건 무조건 찬성표를 던졌다. 이사회에 올라온 2685개 안건 중 사외이사의 반대로 부결된 것도 4건이 전부였다. 웬만하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는 얘기다. 오너 입김이 강한 기업일수록 반대의견이 적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작년에 9차례 이사회를 통해 31개의 안건을 처리했으나 사외이사 4명 중에서 반대의견을 제시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사회 산하 내부거래위원회는 대규모 내부거래를 심의했으나 소속 사외이사 3명이 모두 찬성했다.

오너가 결정하는
선임구조가 문제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이사회를 13차례 열어 28건을 심의했지만 사외이사 4명은 한 번도 반대하지 않았다. 최대주주와의 거래 승인, 계열사에 대한 유상증자 등의 안건이 사외이사의 100% 찬성으로 통과됐다. LG화학 이사회 역시 임원에게 특별상여금을 지급하는 방안 등 24건의 안건을 심의했지만 반대의견은 없었다.

여기서 문제는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노릇을 한 안건 중에 임원 특별상여금 지급, 계열사 유상증자 참여, 회사채 발행한도 승인 등 소액주주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사안도 포함됐다는 점이다. 사외이사들의 무책임한 ‘손들기’에 대한 피해가 소액주주에 고스란히 전가 될 수 있단 얘기다. 결국 사외이사들이 고액의 연봉을 챙기면서도 ‘대주주 견제와 비판’이라는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소액주주 권리를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사외이사들은 어째서 거수기로 전락하는 걸까. 그 이유는 사외이사 선임구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외이사는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주주총회가 선임하게 돼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너, 대주주, 최고경영자, 기존 이사가 사실상 결정권을 행사한다. 그러다 보니 오너의 고향 친구, 대주주의 학교 동문, 사장의 친인척 등이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것이다. 정년퇴직이 가까워진 인사들이 ‘어디 사외이사 자리 없나’라는 농담 섞인 진담을 동문 조직에 흘리는 진풍경이 형성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오너 입김이 강한 기업일수록 사외이사 반대 적어
소액주주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사안도 다수 포함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외이사진에는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인사가 포진해 있다. 경영진 의견에 반대할 만한 인사는 애초 싹이 잘린다. 사외이사들이 독립성을 가지기 어려운 구조다.

독립성은 고사하고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모두 이런 불합리한 선임구조 때문이다. 이런 사외이사들이 회의 때마다 무더기로 상정되는 안건들을 제대로 들여다볼 리 만무하다. 결국 사외이사들의 안건 심의가 형식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사외이사제는 IMF사태 이후 지배주주를 비롯한 이사의 직무 집행을 감시 ·감독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투자자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지난 2001년 도입됐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사외이사는 대기업의 거수기로 전락했다. 기업의 경영 감시는 엄두도 못 낸다. 경영진 의사를 기계적으로 따라갈 뿐이다. 물론 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제도 운영에 있다. 

이런 폐단을 없애려면 무엇보다 지배주주가 전권을 휘두르는 사외이사 선임 구도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주주 입김을 최대한 배제하고 공익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들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외이사 법적
책임 부여해야”

일각에서는 사외이사에게도 경영실패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의 이지수 변호사는 “사법부가 법을 적극 해석해 사외이사들도 법적 책임에 부담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