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삼국비사 (27) 요청

2017.04.03 10:13:50 호수 1109호

백제와 손잡고 신라를 친다?

소설가 황천우는 우리의 현실이 삼국시대 당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간파하고 북한과 중국에 의해 우리 영토가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런 차원에서 역사소설 <삼국비사>를 집필했다. <삼국비사>를 통해 고구려의 기개, 백제의 흥기와 타락, 신라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파헤치며 진정 우리 민족이 나아갈 바, 즉 통합의 본질을 찾고자 시도했다. <삼국비사> 속 인물의 담대함과 잔임함, 기교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정도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우리 뿌리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과 아울러 진실을 추구하는 계기가 될 것임을 강조했다.



“제가 고구려에 가서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백제가 고구려와 손잡고자 한다는데 느닷없이 고구려를 방문하여 도움을 청하다니, 대체 정신이 있는 겐가?”

“여하튼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서 가서 여주를 만나자니까요.”

유신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서는 춘추의 뒤를 따랐다.

“그게 무슨 소린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유신이 의아한 눈초리를 보내며 다시 다그쳤다.

“무슨 말이오?”

“고구려에 가겠다는 이야기 말일세.”

담판을 짓다

“지금 백제군만 해도 벅찬데 고구려 군까지 합세하면 그야말로 대책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 고구려를 찾아가 백제에 동조하지 못하도록 담판을 지어야지요.”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겠네만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담판 짓겠다는 말인가?”

“무엇이라니요?”

“그러면 맨 손으로 가겠다는 건가?”

춘추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무릎 꿇었다.

“왜 그러는가?”


유신이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았다.

오고 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둘을 향했다.

“처남,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 그 이야기가 아니지 않은가.”

“무작정 가보려 합니다. 오래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유사한 일이라니?”“오래전 내물왕 때 왜구의 침략을 받은 일이 있었지요.”

“그랬었지.”

“당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군사를 파견하여 왜구를 물리쳤습니다.”

“그거야 경우가 틀리지 않은가. 당시는 이민족인 왜구였고 지금은 같은 민족인 백제란 말일세. 백제!”


유신이 답답한 듯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고구려의 생각을 돌려보겠습니다.”

“지원요청을 빌미로 말이지. 그러다 일이 틀어지면 어찌할 텐가. 게다가 만에 하나 고구려에서 자네를…….”

“처남이 계시지 않습니까.”

춘추가 말을 함과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내가 뭘!”

“처남께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뒤를 부탁드립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그동안 처남을 무시하고 설쳐댄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유신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도 춘추와 같은 진골이었지만 가야 출신이라는 이유로 결정적인 일에는 늘 소외당하고는 했었다.

작금의 상황 역시 자신의 뜻이 반영되지 않아 초래된 결과였다.

“저와 처남이 한 몸임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유신이 춘추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정녕 자네의 경솔했음을 깨닫는가?”

“그러합니다, 처남. 알량한 핏줄 운운하며 처남을 무시하고 또.”

“또 무언가?”

“결론적으로 너무나 가볍고 소심하게 굴었습니다.”

유신이 가만히 춘추의 손을 잡았다.

“향후에는 반드시 처남 의견에 따라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번만은 저의 뜻을 따라주십시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으나 자네의 뜻이 그렇다면 가게. 뒤는 내가 책임지도록 함세.”

“고맙습니다, 처남.”

위기의 신라, 고구려 회유에 총력 대응
근심 어린 선덕여왕…연개소문 선택은?

의기투합된 두 사람이 서둘러 궁으로 들어가 선덕여왕을 만났다.

만나자마자 춘추가 자신의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려던 참인데 굳이 고구려에 가야겠단 말이오? 게다가 고구려는 지금 백제와 손잡고 우리를 공격하려 한다는 말이 있는데요.”

이야기를 듣고 난 선덕여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비록 백제가 고구려와 함께 일을 도모하려 하나 고구려는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당나라에 사신을 보냄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춘추 공이 고구려에 가서 신라의 뜻을 제대로 전해 통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승산 있습니다. 그러니 보내시지요.”

잠자코 있던 유신이 나서자 선덕여왕이 춘추와 유신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행여나 춘추 공에게 불미스런 일이 생긴다면 소장이 목숨 걸고 나서겠습니다.”

“어떻게 말인가요?”

“춘추 공이 떠나자마자 바로 병사들을 모집하여 대기하고 있다 기간 내에 돌아오지 않으면 곧바로 고구려로 쳐들어가겠습니다.”

유신이 힘주어 답하자 선덕여왕이 근심스런 눈빛으로 춘추를 바라보았다.

“마마!”

“말해보세요.”

“제가 길을 떠나면 모든 병권을 김유신 장군에게 일임하여 주십시오.”

둘의 표정을 살피던 선덕여왕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개소문이 마차에 온갖 재물을 싣고 길 나설 차비를 갖추었다.

“선 책사, 이른 대로 일처리하고 돌아오리다.”

“소인은 연정토 장군과 차후의 일을 준비하겠습니다.”

답을 한 선도해가 연정토를 바라보았다.

“형님, 아니꼽고 더럽더라도 이번 한번만 눈을 질끈 감으십시오. 그런 연후에는 이놈들의 생간을 씹어 먹든 삶아먹든 아무 말 않겠습니다.”

“그런 염려 말고 아우는 책사의 말에 따라 철저하게 준비를 갖추게.”

말을 마친 연개소문이 말에 오르기에 앞서 우마차를 바라보았다.

“이리 그놈 참 대단하네 그려. 들이 넣고 들이 밀어도 끝이 없으니.”

“조만간에 배가 터져 죽을 터이니 조금도 서운해 하지 마십시오.”

“하긴 잠시 보관 장소만 바뀌는 것 뿐이지.”

“아니지요, 형님. 일종의 투자지요.”

“투자라니?”

“더 큰 것을 얻기 위해 들이는 것이니만큼 당연히 투자라 해야지요.”

순간 연개소문과 선도해가 눈을 맞추었다.

“허허, 연정토 장군도 대단한 구석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시오. 내 명색이 연정토요, 연정토!”

연정토가 무지막지하게 큰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허풍을 떨자 연개소문과 선도해가 파안대소했다.

“내 아우가 맞네, 맞아.”

호탕하게 웃고 난 연개소문이 말위에 올랐다.

말위에 올라 자신의 집과 배웅하는 사람들을 한번 쭉 훑어보고는 천천히 이리의 집으로 방향을 잡았다.

길을 가는 내내 그동안 가슴 졸였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새로운 고구려

이리를 중심으로 뭉친 귀족들로 인해 대대로의 직위에 오르는 일이 장벽에 부딪치자 연개소문은 책사인 선도해의 의견에 따라 뇌물공세를 펼쳤다.

처음에는 자신의 속내를 익히 알고 있던 이리가 거만 떨면서 외면하자 다시금 자신의 계획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죽여 버리려는, 실행에 옮기고자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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