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국내 최고의 땅’ 은마아파트는 지금…

2017.01.16 09:53:18 호수 1097호

“강남 노른자가 썩고 있다”

[일요시사 경제2팀] 이한림 기자 = 서울시가 재건축 사업 대상을 선정할 때마다 0순위로 지목됐던 초대형 단지가 더러 있다. 이 중 재건축 논의가 오고간 지 20년이 지났으나 관할 지자체와 재건축추진위의 이견차로 준공 당시 모습 그대로인 아파트가 있다. 최적의 교통여건과 명문학군이 둘러싼 올해 38살의 대치동 은마아파트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28개 동, 총 4424가구로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312번지 일대에 23만7900㎡의 초대형 부지에 자리 잡고 있다. 현재 강남구서 가장 큰 단지인 개포주공1단지(124개 동, 총 5040가구)에 이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준공이 1979년임을 감안하면 1970년대 서울시 강남개발사업의 랜드마크이자 ‘부촌의 상징’으로 각인되는 단지다.

38년된 아파트

은마아파트는 준공 38년차를 맞은 노후한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10억원 이상의 호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1일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해 5월,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 102.47㎡ 평균 매매가는 10억2250만원으로 2010년 이후 처음으로 10억원대로 재진입했다. 당시 대치동과 개포동 일대의 재건축 사업이 착수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따른 상승세로 풀이된다. 이후 8개월 연속 10억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이후 꾸준히 상승한 매매가는 10월 기준 동일 면적서 11억8500만원부터 12억5000만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다만 은마아파트도 11·3 부동산 대책에 따른 집값 감소세가 드러났고 현재 10억9000만원부터 11억6000만원에 시세가 형성돼있다.


대치동 일대의 아파트값이 재건축 기조와 입지 여건에 따라 모두 10억원을 상회하고 있지만 가장 오래된 아파트인 은마아파트의 곳곳에 보이는 주름살은 해당 아파트값이 대체 왜 10억원이 넘어가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것은 물론 균열된 콘크리트, 베란다의 철창이 부식돼 이음새가 절단된 가구가 눈에 띄게 많다.

입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불안 요소는 늘어난다.

입주민에 따르면 시설 및 설비 노후화로 인한 배관 터짐 문제, 균열 콘크리트 파편 낙하사고, 도로 파손으로 인한 단지 내 교통 및 주차 문제 등도 빈번하다. 최근 재개발·재건축이 활발하게 진행돼 초호화 신식 건물이 들어선 강남구 한복판에 있는 건물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있다.

은마아파트 입주민 A씨는 “자녀들 때문에 (은마아파트로) 이사 왔지만 노후한 건물에 따른 전기 및 수도 문제, 배관을 타고 오는 벌레, 각종 소음 문제 등으로 불편한 점이 많다”며 “그러나 주변 신규 분양 아파트서 나오는 시세 반등의 여지와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으로 참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은마아파트 등기부등본상 매입자의 실거주율은 10%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집주인의 80% 이상이 실제로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2년에 4~5억원의 전세를 내놓고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셈이다. 고정 수요가 뒷받침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결국 은마아파트를 둘러싼 유동 자금의 가치는 편안한 주거보다는 인근 환경이 결정하고 있는 셈이다.

우선 서울대곡초, 서울대현초, 대명중, 진선여중, 휘문중, 경기여고, 단대부고, 숙명여고, 중대부고, 진선여고, 휘문고 등이 도보 통학거리에 위치해 있다. 모두 명문학군이라고 불리며 은마아파트 인근 상가가 ‘사교육의 메카’라는 대치동 학원가로 탈바꿈하게 된 계기가 됐다.

교통편은 대놓고 편리하다. 지하철 3호선 대치역 3·4번 출구 자체가 아파트 입구이며 3호선 학여울역도 도보 10분 거리 내외다. 명칭이 ‘은마아파트’인 버스정류장에 정차하는 버스는 5개이며 동부간선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진입도 편해 자가용을 통한 교외 이동이 수월하다.
 

인근에 위치한 개포동 재건축 단지들의 호황도 은마아파트 가격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격상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번 달 은마아파트 전용 112.39㎡의 시세는 12억2500만원서 13억원이다. 전년 동기대비 시세가 10억6000만원서 11억3000만원 선이었음을 감안하면 2억원가량이 더 올랐다.

주변 시세 반등으로 이어지는 고가 아파트가 근처에 들어서다보니 ‘우산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재건축 논의 시작한지 20년이나 지나
여전히 난항…등돌린 추진위-서울시
50층이 뭐기에…양측 고집 팽팽

은마아파트 상가 내 B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은마아파트 인근에 입주한 ‘래미안대치팰리스’의 매매가가 현재 14억원 이상을 상회하고 있어 같은 입지환경을 가지고 있는 은마아파트 시세가 떨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은마아파트는 교육과 교통 환경, 주변 아파트 시세의 증가세 등의 요인으로 낡은 건물임에도 높은 아파트값을 유지하며 고정 수요층이 마르지 않고 있다. 뒤집어보면 ‘재건축 떡밥’을 20년째 물고 늘어질 수 있는 원동력인 셈이다.

은마아파트는 서울시가 공표한 재건축 대상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20년 이상이 지나 주거환경이 불량해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는 노후·불량주택이자 공동주택, 300세대 이상, 1만㎡ 부지 이상 등 모든 면에서 당장 재건축에 들어가야할 대상이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추진위(이하 추진위)가 본격적으로 재건축사업에 착수한 것은 지난해다. 입주민들은 재건축추진위 결의를 마치고 추진위를 꾸렸다. 비싼 값을 주고 낡은 건물에 살고 있는 거주민들의 주거 불편 해소가 주된 골자다.

지난 해 9월 추진위는 설계공모를 통해 희림종합건축사무소를 재건축 담당 설계사로 최종 선정하고 계약금 157억8700만원, 기간 2023년에 합의했다. 이어 조감도를 공개하고 강남의 랜드마크 역할을 다질 것을 공표했으나 자문요청을 거절당하는 등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물론, 성과도 있었다. 단지를 둘로 가른다는 논란도 있었지만 단지 내 폭 15m 도로폐지안이 조건부 통과되며 추진위 행정의 숨통이 트이기도 했다. 다만 층수 제한을 놓고 서울시와 이견차를 좁히지 못해 본격적인 재건축 착수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추진위의 은마아파트 재건축 설계안에 따르면, 최고 50층 높이를 요청했다. 추진위가 지난 해 12월 해당 정비계획안을 서울시에 제출했으나 서울시는 ‘2030도시기본계획’에 따라 건물의 목적이 주거인 경우 최고 층수를 35층으로 제한하고 있어 층수 상한선을 맞출 것을 추진위에 요구하고 있다.

추진위는 서울시의 일방적 층수 제한이 거주민들의 환경 개선 요구를 차단하고 재건축 사업의 궁극적 목적인 도시재생을 통한 지역경쟁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했다. 추진위는 서울시의 불허 방침에도 끝까지 초고층 사업을 고수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도 일방적인 특혜를 줄 수 없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해 10월, 서울시는 압구정 재건축 단지 최고 층수를 35층으로 묶고 11월에는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의 50층 계획에 대해서도 재검토 의견을 제출했다.

서울시 도시관리과 관계자는 “추진위가 제출한 설계안이 자문 단계를 통과한다 해도 엄연한 법정계획을 어겨가면서까지 특혜를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추진위의 요구대로 재건축이 진행될 여지는 남아있다.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는 교수 등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외부위원이 참여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오는 18일로 예정된 도시계획위원회의 은마아파트 재건축 심의 결과가 서울시와 다른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대목이다.

추진위는 서울시가 공표한 2030도시기본계획에서 ‘광역중심으로 지정된 지역이 최고 50층의 복합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대목을 역으로 내세우고 있다. 새롭게 단장할 재건축 은마아파트가 추진위가 공개한 조감도와 동일하게 건축된다면 광역중심지역에 걸맞은 ‘명품 주거단지’가 형성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10억 이상 호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해 재건축 협의 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만큼 거주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거주민들의 불만은 확대될 것으로 관측된다. 입주를 원하는 예비 수요층에게는 재건축 분위기에 따라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값이 부담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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