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의 성남고등학교 야구장서는 이번에 대만 타이페이야구협회가 주최하는 국제대회에 출전 예정인 서울지역 대표A팀과 경기도 성남의 대원중학교 야구부와의 연습시합이 있었다.
연습시합이 끝난 후의 귀가 길에 우연히 조우한 대표 A팀의 유영모(휘문중 2학년, 투수/내야수)와 동행하게 되었는데, 차 안에서 이루어진 그와의 대화 중에 문득 야구선수의 정신력, 흔히 ‘멘탈’이라 불리는 요소에 관해 생각하게 됐다.
유영모는 그 날의 연습경기서 두 가지의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는데, 한 가지는 대단히 공격적으로 그의 적극성을 보여주었던 주루플레이었고, 다른 하나는 3루수로서 두 번의 망설임을 보여주었던 수비에서의 플레이었다.
유영모는 지난 10월, 서울시 중학교 추계리그 때부터 휘문중의 투수와 유격수로 본격 출전하며 뛰어난 기량으로 내년 2017시즌 휘문중의 투타서 핵을 이룰 선수로 기대를 받는 중이었고, 금번 일본서 개최됐던 ‘다카하시 나오키컵’ 일본 초청 대회에도 대표팀으로 출전했던 선수였다. 180㎝에 가까운 신장에 스피드와 센스, 그리고 뛰어난 기본기를 갖추고 있는 유망주이다.
경기 초반 대표 A팀 공격서 2루까지 진루했던 유영모는 이어진 후속 타자의 짧은 중견수 앞 안타의 상황서 3루쪽 주루코치의 정지 사인에도 불구하고 홈까지 쇄도한 이후 포수와의 충돌까지 순간적으로 피해가며 득점을 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며 필자를 감탄케 했다.
그런데 바로 이어진 수비서 3루수로 출전했던 그는 상대 팀 타자의 빗맞은 3루수 앞 땅볼의 처리과정서 두 번의 망설임(타구를 바로 맨손처리하지 않고 글러브로 잡았던 순간과 송구 타임에서 송구를 포기한 점)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유소년야구와 학생야구를 오랜 시간 동안 접하고 취재해왔던 필자의 경험상 전자의 공격적이었던 주루 플레이가 유영모의 타고난 재질, 즉 스피드와 판단력, 그리고 그의 야구 센스와 함께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면, 후자의 수비 시 모습은 현재 야구를 하고 있는 그의 심리상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실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야구선수로서의 책임감과 자존심이 그것이었다. 자신의 앞으로 굴러오는 빗맞은 타구를 처리하려 대시를 하면서부터 그의 머릿속은 타구 처리에 관한 여러 가지의 생각이 지나갔을 것이었다.
촌각을 다투는 순간에 글러브로 공을 잡을 것인지 아니면 바로 송구하는 맨손으로 잡을 것인지, 그 순간에 그를 지배했던 멘탈은 바로 책임감이었다.
3루수로서 타구를 놓치거나 뒤로 빼먹지 말아야 하는 그의 책임감은 글러브로 안전하게 공을 잡아낼 것을 요구했고, 이후 송구해야 할 과정서 멈칫하며 망설이다가 송구를 포기했을 때는 혹여 실수로 악송구가 나지 않을까 싶어 동료들과 지도자들에게 실망을 주기는 싫다는 자존심이 순간적으로 그를 지배했을 것이다.
책임감과 자존심, 그리고 집중력은 유소년야구뿐만 아니라 모든 엘리트 야구선수들, 그리고 심지어는 프로야구 선수들까지도 심리적으로 지배를 하는 정신적인 요소다.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가는 순간부터 야구선수들은 이 세 가지의 정신적인 요소로 심리상태의 변화를 겪게 된다.
야구는 축구와 농구처럼 일반적인 다른 구기종목과 달리 경기장 내에서의 움직이는 순간보다 정지되어 있는 순간이 많은 스포츠라 바로 그 순간 선수들은 여러 가지의 심리적 상태를 겪게 되어 있다.
첫 번째로는 집중력의 유지다. 사실 경기 중 움직임이 정지돼 있는 상태서 집중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정신적 요소이다.
이러한 집중력의 유지는 긴장감의 상승과 반비례하는데, 어떠한 선수가 경기 중 어이없는 실수나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를 한다면 대개는 전부 집중력을 잃어버린 상태서 긴장감이 고조되었을 때이다. 집중력의 유지는 긴장감을 감소시키게 된다.
두 번째는 책임감이다. 야구선수의 책임감은 처음 야구에 입문한 유소년 선수조차도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투입되는 순간부터 생기게 된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야구라는 스포츠의 전반적인 이해가 넓어지고 깊어지는 과정서 자신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숙지하게 하며, 그러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은 또한 책임감의 상승을 유도한다.
임무의 숙지와 그것을 수행하려는 책임감은 야구의 지능을 요구하며 선수들이 성장을 거듭할수록 해당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요소로도 작용하게 한다.
세 번째는 야구선수로서의 자존심이다. 유니폼을 입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토록 고되고 힘든 훈련의 과정들을 극복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소속 팀 내에서는 여타의 동료들과 경쟁을 하게 만들고, 상대하는 팀과의 승부에서 어떻게든 승리하고 싶은 욕망을 낳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심리적 요소다.
바로 이 야구선수의 자존심이 야구를 하는 모든 선수들을 항상 고통스러운 심리상태로 몰아가게 한다. 그들은 야구를 잘하고 싶고, 언제나 승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존심은 때로 선수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게도 하는데, 앞서 기술했던 유영모의 수비 시 망설임이 바로 그러한 상황이었다. 야구선수로서의 그의 자존심이 실수하거나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 때문이었다.
야구는 실패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스포츠이다. 투수가 투구를 할 때마다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는 없으며, 타자가 타석에 나갈 때마다 안타를 칠 수는 없는 그런 스포츠다. 수많은 시도 끝에 몇 차례의 성공을 조합하거나, 아니면 상대방의 실패로 인해 승리를 쟁취하는 종목이기에, 야구선수는 타 종목의 선수들보다 실패에 낙심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의지로 실패를 극복해가며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하게 된다.
그날 동행했던 휘문중의 유영모와 헤어지며, 필자는 그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생각나는, 그리고 하고 싶은 플레이를 마음껏 시도해 보라는 충고를 남겨줬다. 필자가 봤던 현재 14세의 그는, 타고난 신체적 재질과 야구선수로서의 ‘멘탈’을 두루 갖춘 드문 선수였으며, 계속되는 실패의 과정서 몇 차례 극복을 통해 훌륭한 야구선수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자신감’을 언젠가는 반드시 갖게 될 전도가 유망한 선수였다. 내년 2017 시즌 한 단계 더욱 성장할 그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