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장자연 편지 ‘위조 판명’ 미스터리 추적

2011.03.22 09:52:35 호수 0호

사건 수사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 있다?

여성 연예인 술접대와 성상납을 폭로한 고(故) 장자연의 친필 편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2년 만에 재점화 된 장자연 사건은 정신질환 의심 수감자의 자작극으로 결론 났다. 경기지방경찰청 분당경찰서는 지난 16일 편지 진위에 대한 수사 결과 발표에서 “영화 <정승필 실종사건>에 대해 언급한 편지 내용을 보고 ‘가짜 편지’임을 확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짜로 밝혀진 ‘장자연 편지’에 대한 의혹은 여전해 음모론이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국과수 “장자연씨 필적 흉내 내 작성한 위작”
경찰 ‘정신분열’ 전씨 자작극…재수사 않기로

 
경기지방경찰청 분당경찰서는 “장자연씨 친필이라고 주장되던 편지 원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필적 감정, 지문, DNA 분석 결과 장씨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수감자 전씨가 장씨의 필적을 흉내 내 작성한 위작으로 판단했다”며 “문건 전반에 대해 재수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필승 실종사건>
아닌 <그들이 온다>



경찰이 발표한 위작 근거는 크게 네 가지다. 첫 번째는 ‘영화 제목이 다르다’는 것이다. 장자연은 2009년 3월 자살했다. 장씨는 자살 직전 <그들이 온다>라는 영화를 찍었고, 이 영화는 장씨가 자살한 후인 2009년 6월 제목이 <정승필 실종사건>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해 10월 개봉됐다. 그런데 전씨가 ‘장자연이 보낸 편지’라며 보관하다 경찰에 압수된 발신일시 미상의 한 편지에 영화 <정승필 실종사건>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경찰은 “장씨가 살아있을 때는 영화 제목이 <정승필 실종사건>이 아니라 <그들이 온다>였기 때문에 장자연씨가 이 편지를 썼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전씨가 언론에 공개된 편지 내용 외에 장씨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것’이다. 전씨가 작성한 2008년 10월12일자 진정서에 ‘(장씨가) 해외 접대골프를 가지 않아 차를 빼앗겼다’는 부분이 있는데 경찰은 이것이 2009년 2월에 발생한 일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전씨가 장자연씨 편지라고 주장한 50통 230페이지의 편지글을 분석한 결과, 언론에 공개된 것 외에 장자연씨만 알 수 있는 개인적 내용이나 공개되지 않은 사실이 적힌 편지는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은 신문 스크랩 등을 통해 장자연씨 관련 사실을 알아낸 전씨가 언론에 공개된 장씨의 자필 문건을 보고 필적을 연습해 가짜 편지를 만들어 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2009년 6월 부산구치소 교도관이 작성한 전씨의 면회자 접견 내용 기록에 “자연이 편지 온 거 사실 인터넷에서 퍼온 건데”라는 전씨의 말이 나와 있다고 했다.

경찰은 “‘전씨가 시나리오를 쓰는 등 글솜씨가 뛰어났다’ ‘전씨가 하루 5~6통의 편지를 작성하는 모습을 봤다’ 등 동료 재소자의 진술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세 번째는 ‘고인과 전씨의 친분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점’도 위작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전북 정읍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장자연과 초·중학교는 전남 강진, 고교는 광주광역시에서 다닌 전씨의 성장 배경이 판이해 친분관계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경찰은 “장자연씨가 12차례 면회 왔다”는 전씨 주장도 면회 접견부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니고, 장씨와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주장도 우편물 대장을 확인한 결과 거짓으로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또 경찰이 전씨로부터 압수한 물품에서 소인 날짜와 우체국 고유번호 부분을 오려낸 편지봉투 복사본 등이 확인됐다. 경찰은 전씨가 이런 자료를 조합해 ‘가짜 편지봉투’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성장 배경이 판이해
친분관계 찾을 수 없어

마지막으로 전씨가 과대망상 증상과 사고 과정의 장애를 보이는 등 정신분열증 초기 단계로 이 같은 편지의 내용을 지어냈다는 동료 재소자의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전씨가 2006년 1월부터 작년 8월까지 과대망상 증세로 수십 차례 치료를 받았던 병력을 제시했다.

전씨를 면담한 경찰청 프로파일러들은 “전씨가 무분별하게 과시하는 말을 사용했다”며 “정신분열증 초기 단계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편지 원본이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장자연 편지’에 대한 의혹은 여전해 음모론이 퍼지고 있다.

대중들은 최근 종영한 드라마 <싸인>이 다룬 스토리처럼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된 사회 지도층이 자신의 치부를 감추고자 경찰과 국과수에 영향력을 행사한 게 아니냐는 시선이다.  음모론의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엄청난 량의 문건을 혼자 조작했냐’는 것. 50통 231쪽에 해당하는 분량을 조작하는 일이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지만 범죄 전문가들에 따르면 장기간 독방을 쓴 망상장애 문제수라면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죽은 사람의 원혼을 풀어줘야 한다는 사명을 띤 것으로 착각할 수 있고, 독방을 쓰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문제수들이 조작한 편지를 보내는 것도 흔한 일이라고 밝혔다. 두 번째는 ‘누군가의 영향력에 의해 수사가 서둘러 종결됐을 수도 있다’는 것. 경찰은 장자연이 자살했던 2009년 ‘장자연 편지’를 입수했다. 그러나 SBS가 지난 6일 ‘장자연 편지’를 공개할 때까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가짜 밝혀졌지만 음모론 여전…영향력 행사?
경찰 측 “새로운 단서 확보된다면 수사할 것”

세 번째는 ‘전씨를 도운 제3자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 제3자가 전씨가 쓴 편지를 외부로 유출했거나 직접 편지를 써 법원과 언론에 제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경찰이 수사 종료를 선언했기 때문에 제3자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사라졌다. 경찰 발표에도 음모론이 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모론은 사회가 불안하고 혼란스러울 때 유포된다. 한 연예 관계자는 “특정 인사에 대한 경찰과 검찰 수사가 부족해 보였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수사를 진행한 한 경찰 관계자는 “편지가 위작이라 편지 내용에 대한 재수사를 하지 않지만 새로운 단서가 확보된다면 의혹이 남지 않도록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전씨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될까. 전씨가 자작극을 자백하더라도 형사처벌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자의 명예훼손죄가 검토될 수 있으나 전씨는 편지를 재판부에 제출했을 뿐 ‘공연히 허위 사실을 적시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50통 231쪽 분량
혼자 조작 가능(?)


편지는 가짜로 결론 났지만 ‘장자연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지난 16일 공동보도자료를 통해 “편지가 가짜라고 해도 2년 전 경찰의 수사가 정당했다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며 철저한 재수사를 요청했다. 한 네티즌은 “경찰과 검찰이 ‘새로운 단서가 나오면’이란 전제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지 말고 전반적인 재수사에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바란다”며 “등 떠밀려 마지못해 시작하고 서둘러 마무리하는 모습은 이제 지겹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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