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청와대 ‘불안한 동거’ 내막

2011.01.18 09:18:26 호수 0호

벌써부터 ‘딴지’ 걸면 남은 2년 어떡하라고?

김대중(DJ) 정권 4년차인 2001년 DJ는 당시 여당인 민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한동 국무총리를 유임시켰다. 여당은 ‘DJP 공조’가 파기되자 자민련 몫인 이 총리의 해임을 거세게 요구했지만 DJ는 당의 요구를 일축하고 이 총리를 유임시켰다. 이 때문에 당시 김근태 최고위원은 이 총리 유임을 주도한 동교동계 해체를 주장했다. 노무현 정권 집권 4년차인 2006년에도 인사 문제를 둘러싼 당청 갈등이 불거졌다. 그해 3월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 파동’이 불거지자 야당인 한나라당보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이 총리의 사퇴를 요구해 관철시켰다. 당시 노 대통령은 같은 해 7월 김병준 당시 대통령 정책실장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논문 이중게재 의혹에 직면한 김 부총리는 여당의 반대를 버티지 못하고 낙마했다. 한 달 뒤 노  전대통령 최측근인 문재인 전 민정수석의 법무부장관 기용설이 흘러나오자 여당은 또 반발했다.

‘당·청 갈등’ 결국은 대통령 인사 문제
청 “보온병에 한 방 맞았다” 한 “거수기 못해”

장관(급) 인사는 대통령 고유 권한이다. MB정부 들어 여당이 청와대 결정, 특히 대통령 고유권한인 인사 관련해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경우는 없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지난 10일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게 사퇴를 촉구한 것이 여당발 ‘거사(擧事)’로 규정되는 건 그 때문이다.

‘靑이 당 입장 고려 안한다’
4·27 재보선 앞두고 폭발



하지만 이는 그만큼 여당 의원들이 최근 정 후보자 내정을 둘러싼 민심 이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친박계 의원들뿐 아니라 다수의 친이계 의원들도 고개를 가로젓는 상황이었다. 중립 성향의 한 의원은 “지역구에 내려가 지난 열흘 간 민심을 체감한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여권 내에서는 ‘청와대가 당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묵은 감정도 쌓여 있었다. 정두언 최고위원은 “청와대는 아무 생각 없이 (인사를) 하지만 이런 일이 당에 엄청난 피해를 준다”면서 “선거가 점점 눈앞에 다가오니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선거를 앞둔 여당 의원들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이라는 판단에도 무게가 실린다. 이번 거사가 석 달 후에 있을 ‘4·27 재보선’과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행위라는 것이다.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자칫 야당이 대대적 공세를 가할 빌미를 제공하면 ‘민심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당 일각에서 “청와대에 끌려 다니거나 ‘거수기’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수도권 특히 서울지역 출신 한나라당 의원들의 불안감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 25개 구청장 선거구 중 21곳에서 패했는데 현 지역 민심은 지방선거 때보다 더 악화됐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민심이 한나라당 지도부가 청와대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게 된 결정적 배경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이런 상황이라면 대통령과 맞서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당선에) 도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 이후 MB정부 발탁 인사의 인사청문회 낙마율은 11.6%로 노무현 정부의 3.4%에 비해 세 배 이상 높다. MB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총리·장관·헌법재판관·검찰총장 등에 대한 인사청문 요청안은 총 60건이다. 이 중 인사청문회를 통과 못하고 낙마한 인사는 정 후보자 포함 8명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MB정부가 ‘일 잘한 정부’라는 소리는 들을지 몰라도 ‘인사 참 못한 정부’로 기억될 것”이라는 자조 섞인 말을 했다. MB는 인사 때 ‘일머리’를 가장 중시한다. 개인적으로 능력을 잘 알거나 한번 써 본 사람 중 능력 있다 생각되는 사람에게 중책을 맡기는 일이 잦다. 도덕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일 잘하면 쓴다는 게 ‘MB스타일’이다. ‘회전문 인사’라는 지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
인사(人事)가 망사(亡事)?

정동기 전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도 청와대의 도덕적 잣대가 국민적 기준과 얼마나 다른지 여실히 보여줬다. 정 전 후보자가 7개월 동안 로펌에서 약 7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민심은 등을 돌렸지만 청와대는 “세금을 다 냈기에 문제될 게 없다”(홍상표 홍보수석)고 말했다. 민정라인 핵심 관계자는 “사회적 관행에 비춰볼 때 과도한 액수는 아니다”라고 했다. 문제는 이처럼 도덕성 검증 기준이 점차 느슨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청와대 내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같은 모습이 계속 연출되는 한 청와대는 앞으로도 도덕성에 대한 ‘국민 눈높이’를 맞추는 데 실패할 것이다.

한나라당이 ‘정동기 자진 사퇴’ 입장을 발표하던 시각 청와대에서는 MB가 주재하는 수석비서관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정진석 정무수석은 회의가 끝날 무렵 “급하게 연락을 달라”고 메모를 남긴 원희룡 한나라당 사무총장과 통화가 이뤄졌다. 정 수석은 통화에서 최고위원회의 결과를 ‘통보’받았다. 깜짝 놀란 정 수석이 MB에게 보고했으나 MB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MB의 표정은 매우 굳어 있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보온병’ 맞고 당황한 靑
 한나라‘유감 밝힌 靑’에 유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MB가 보고 받고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래서 우리도 무슨 말도 입장도 내놓을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대통령에게 ‘어떻게 할까요’라고 차마 묻기도 힘들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대통령의 굳은 표정은 이날 청와대의 복잡한 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도 지난 10일 ‘청와대는 당의 결정을 언제 알았느냐’는 질문에 “최고위원회의가 끝나고 연락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정 수석이 당으로부터 뒤늦게 전화를 받았을 뿐 다른 관계자들은 언론에 보도가 나간 뒤에도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 정도로 상황을 알지 못했다. 정권 초기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집권 4년차 증후군 ‘MB 레임덕’ 시발점?
여권 내 힘겨루기 시작? 찻잔 속의 태풍?

청와대는 이날 한나라당이 사퇴 촉구 입장을 발표한 지 6시간이 흐른 뒤 “한나라당이 의견을 밝힌 절차와 방식에 유감”이라는 첫 입장을 밝힐 정도로 경황이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늘이 MB집권 4년차 처지를 상징하는 하루로 기록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한 청와대 행정관은 “정권의 가장 중요한 협력자는 여당”이라며 “그런 여당이 대통령이 어려워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들의 이익만 앞세운다면 정권은 한쪽 팔다리가 없어진 셈이다. 그게 레임덕 아니고 뭐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한나라당 지도부는 청와대의 ‘절차와 방식이 대단히 유감스럽다’라는 논평과 관련해 “청와대가 언제 당과 사전 조율했는가”라며 “청와대가 인사를 마음대로 했으니 당은 당대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인사는 “정 후보 사퇴문제는 결국 청와대가 자초한 것인데 청와대의 어제 대응은 좀 미숙했다”고 말했다.

당의 정동기 후보 자진 사퇴 주장에 대해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신중하지 못한 결정이었다’며 공개적으로 절차상 문제점을 제기해 여당 내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의 문제 제기에 대해 핵심 당직자는 “사퇴촉구 과정에서 청와대와 사전조율이 충분치 않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도 “정 후보 문제로 여론이 급박하게 돌아가던 상황에서 중국 출장을 갔던 김 원내대표가 지도부 결정 과정을 놓고 뒤늦게 공개적으로 문제 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당·청 간의 갈등은 ‘봉합’ 내지 ‘숨고르기’ 수순에 돌입한 분위기다. 치열했던 공방은 일단락됐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지난 11일 신년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의 ‘인사 검증 관련자에 책임 물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전혀 문책할 일이 아니다”라고 물러섰다. 안 대표는 또 당초 연설문에 포함됐던 ‘(정부를)견제할 것은 제대로 견제하겠다’는 내용을 뺐다. 그 이유를 묻는 기자들에게 “당·정·청이 협의해 잘 해나갈 것이다”라며 에둘러 넘겼다.

‘정동기 사퇴’ 당내 파열음
사그러들 태풍?


‘당·청 관계’의 문제는 이제부터다. 앞으로 갈등과 봉합 양상이 반복되겠지만 경우에 따라 당·청 갈등의 파열음은 더욱 커질 수도 있다. 심지어 그로 인해 ‘분당’이라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게 될 수도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진정 친이계 내부 갈등이라면 앞으로 파장과 그 후유증은 클 것으로 보인다. 파장이 일시적으로 봉합될 수는 있지만 근원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내부 갈등은 언제고 다시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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