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레드모델바’ 김동이 대표의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 13>

2011.01.04 10:33:40 호수 0호

소 팔아 마련한 500만원, "나는 철없는 아들이었다"

전국 20여개 지점을 가지고 있는 국내 최고의 여성전용바인 ‘레드모델바’를 모르는 여성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레드모델바는 기존의 어두운 밤 문화의 하나였던 ‘호스트바’를 건전하게 바꿔 국내에 정착시킨 유일한 업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 근무하는 ‘꽃미남’들만 전국적으로 무려 2천명에 이르고, 여성들의 건전한 도우미로 정착하는데 성공했으며 매일 밤 수많은 여성손님들에게 생활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한때 ‘전설의 호빠 선수’로 불리던 김동이 대표의 고군분투가 녹아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삶과 유흥업소의 창업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여자의 밤을 디자인하는 남자>를 펴낸다. <일요시사>는 김 대표의 책 발행에 앞서 책 내용을 단독 연재한다.



‘아, 어떻게 한다? 나에게 돈을 빌려줄 사람은 전혀 없는데…’
“이번에 엄마가 돈 안 해주면 나 다시는 시골에 안 올 거야.”

■ 첫 작품이 주·조연?

대표님이 나보고 잠시 나가 있으라 했다. 밖으로 나온 나는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담배맛이 달랐다. 공기도 상쾌했고 몸도 날아갈 듯 가뿐했다. 이제 방송국 PD까지 만났으니 모든 게 다 확실해진 듯했다. 실질적인 캐스팅 담당자가 나에게 확신을 주었는데 이제 더 이상 뭐가 필요하겠는가.
PD와의 길지 않은 만남이 끝나고 나는 회사 사장님과 단둘이 차에 앉았다.
“동이야, 오늘 수고했다. 잘했어. 이제 남은 건 네가 열심히 일 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말이야 이제 네가 뭘 준비해야 하는지는 알지? 이번에 저 PD하고는 첫 거래다.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이제는 내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3000만원이 아니라 6000만원이라도 만들라면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돈을 만드는 방법이었다. 이리 저리 머리를 굴려보고 친구들에게 조언을 들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방법은 생각보다 쉬웠다. 그건 다름 아닌 ‘카드깡’이라는 것이었다.
카드를 만들어서 그 한도 전체를 현금으로 바꿔버리는 것이었다. 물론 중간 업자에게 10%의 수수료는 떼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내가 가장 빨리 돈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특히 그때는 지금처럼 신용에 대한 규제가 많지 않아서 카드를 만드는 것 자체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단 일주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단 3일 만에 7개의 카드를 만들어 버리고 중간 브로커에게 넘겼다. 그의 말에 따르면 대략 2500만원 정도는 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500만원이 문제였다.
‘아, 어떻게 한다? 나에게 돈을 빌려줄 사람은 전혀 없는데…’
그런데 그때 생각났다. 강원도에 계신 엄마. 마지막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나는 그날 바로 강원도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오랜만에 가보는 시골길로 향했다.
어스름한 저녁. 동네에는 인기척도 없었고 불빛도 별로 없었다. 겨우 길을 밝혀주는 가로등만이 쓸쓸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엄마~!”
나지막이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또다시 불렀다.
“엄마~.”
그제야 엄마는 눈을 비비시고 밖으로 나오더니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다.
“막내야! 네가 갑자기 웬일이냐!”
엄마도 적지 않게 놀라셨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집에 찾아간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말은 ‘그냥 왔어’라고 대답했지만 내 심정은 여간 복잡하지 않았다. 엄마는 다리가 여전히 아픈 듯했다. 10년간 앓아온 관절염이었다. 지난 세월 동안 엄마의 다리 한번 제대로 주물러드리지 못한 불효자라는 생각이 언뜻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위안했다. 이제 곧 스타가 되면 관절염 수술비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그때 이제까지 못했던 효도까지 전부 해드리자.
엄마는 그 늦은 시간에도 고기 한 덩이를 꺼내 구우시며 혹시나 배가 고플 막내를 위해 밥상을 차리셨다. 나도 그때서야 겨우 배가 고픈 것이 느껴졌다. 생각이 복잡하니 밥 생각도 전혀 없었던 것이다.

 ■ 철없는 막내아들

“엄마.”
막상 돈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하지만 꼭 해야 했다. 내가 이 말을 하지 못하면 나의 성공도 없었다.
“막내야, 무슨 일이냐? 왜 불러 놓고 아무 말도 안 해?”
“실은… 나 돈 500만원이 필요해. 그리고 자동차도 있어야 하고. 이제 나도 방송국에 뻔질나게 드나들 텐데 차도 없이 어떻게 해.”
강원도 깡촌에서 500만원이면 적지 않은 돈이었다.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가슴으로 가져가 쓸어내리고 계셨다. 알고 봤더니 얼마 전에 형이 다녀갔다고 했다. 사업이 흔들리고 있어서 엄마에게 돈을 빌리러 왔다는 것이다. 엄마는 막내까지 이러는 모습에 무척이나 실망을 많이 하셨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제 엄마에게 돈이 남아있을 리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온갖 떼를 다 썼다.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달라는 둥, 남아있는 소 두 마리를 팔아달라는 둥, 정말이지 그때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 필요한 돈 500만원이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나에게 딱히 답을 주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내가 또 얼마나 철이 없어 보였을까. 엄마는 아픈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아들이 먹었던 밥상을 치웠다. 그렇게 한동안 침묵이 둘을 갈라놓았다. 급기야 나는 이런 몹쓸 말까지 하고 말았다.
“이번에 엄마가 돈 안 해주면 나 다시는 시골에 안 올 거야.”
엄마는 아무 말도 없으셨지만, 가슴이 찢어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말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엄마 젖을 먹으며 뒤뚱뒤뚱 걸음마 연습을 했던 자식이 이제 돈 때문에 엄마를 더 이상 보지 않겠다고 하다니. 나도 속이 상했다. 물론 엄마와 같은 심정은 아니었다. 돈이 필요한데 돈을 주지 않으니, 그게 속상했다. 문을 쾅 닫고 건넌방으로 가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 어쩌지, 엄마가 돈이 안 되면 안 되는데, PD님에게는 뭐라고 말할 것이며, 대표님의 얼굴은 또 어떻게 본단 말이야’
새벽이 깊어갔고 그렇게 나도 어슴푸레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잠결에 시끄러운 자동차 엔진소리가 들렸다.
‘뭐지?’
창문을 내다보니 집 밖에는 커다란 트럭이 한 대 와있었고 엄마는 소를 끌고 나가고 계셨다. 순간적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밖으로 뛰어나가 엄마에게 소리쳤다.
“엄마, 소 파는 거야? 이거 팔아서 나 돈 해주는 거야?”
엄마는 그저 짧게 ‘으응’이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엄마가 우시장으로 향하는 트럭기사 아저씨에게 이야기했다.
“아저씨, 우리 막내를 위해 파는 거예요. 좋은 값에 좀 팔아주세요. 조금 있다가 첫차 타고 우시장에 갈게요. 거기서 봐요.”
그렇게 해서 어머니가 평생 동안 소중하게 키워온 소를 500만원이라는 돈으로 바꾸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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