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파동 속 형님정권 논란 밀착취재

2010.12.21 09:33:25 호수 0호

급하게 먹은 떡에 속 부여잡고 ‘끙~끙’

예산안 강행통과 속 형님 지역구 예산 ‘승승장구’
형님 감싸주다 한나라당 몰매, 예산안 역풍 거세



‘형님’이 다시 정국의 중심에 섰다. 한나라당의 내년도 예산안 강행처리가 계기였다. 정치권에 폭언과 폭력이 난무하는 와중에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 예산이 증액된 것으로 알려진 것. 그 액수가 무려 1623억원이다. 이 의원은 고개를 저어 부인했다. 세세한 금액을 따지자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 의원을 감싸다 예산안 강행처리 후폭풍의 직격탄을 맞았다. 여기에 민주당이 이 의원의 2선 후퇴 뿐 아니라 의원직 사퇴와 정계 은퇴를 촉구하고 나서면서 정국은 예산안 후폭풍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12월8일 폭력국회 속에서 내년도 예산안이 날치기 통과됐다. 주먹과 폭언이 오가는 가운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예산안이 확정된 것이다. 한나라당이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앞세워 본회의장을 장악, 새해 예산안을 처리했다.

정상적이지 않은 처리 과정에 여론의 뭇매가 쏟아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도 터졌다. 복지 예산이 대거 삭감된 것이다. 저소득층 에너지 보조금 903억원, 사회적 일자리 창출 지원금 340억원, 저소득층 의료비 지원비 880억원 등 저소득층을 위한 예산이 줄줄이 삭감됐다.

이 중 절반은 보육시설 미이용 아동양육지원, 보육돌봄서비스, 국가예방접종실시 지자체 보조, 결식아동급식지원 등 보육과 저출산 예산이었다. 한나라당이 불교계와의 화해를 위해 중점 추진했던 템플스테이 예산도 있었다.

혼란의 국회서
지역구 예산 챙기다?


예산안을 강행처리하면서 정작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확인하지 않은 탓에 스스로 휘두른 방망이에 뒤통수를 호되게 맞은 것이다.

이 와중에 제 몫을 챙긴 이들이 있다. 그리고 299명의 국회의원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예산이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포항시 남구·울릉군)가 있는 포항시 개발에 배정됐다. 그 금액이 1623억원이다.
민주당은 현 정부 출범 후 이 의원의 지역구에 배정된 이른바 ‘형님예산’의 전체 규모(미래 투자액 포함)가 10조원에 육박한다며 공세를 이어갔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형제가 이렇게 (예산을) 날치기했는데 형님의 반성은커녕 ‘왜들 그러느냐, 당연한 것 가져왔지 않느냐’는 말은 또 한번 국민을 우롱·무시하는 작태”라며 “(이 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하고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이춘석 대변인도 “이명박 정권 권력 사유화의 정점인 형님권력은 이제 물러날 때”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나라당도 반격에 나섰다. 이종구 정책위 부의장과 국회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 위원들이 기자회견을 자청,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와 서갑원 예결특위 간사의 ‘쪽지예산’을 공개하며 공방전에 나섰다.

안형환 대변인은 민주당의 ‘형님예산 10조원’ 주장에 대해 “포항과 울산의 산업 거점 사이를 연결하는 복선 전철은 대한민국 전체를 위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라며 “민주당의 정치공세는 여권 분열을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작 이 의원은 “별 일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한나라당이 이 같이 발 빠른 대응을 하고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형님예산’ 논란이 예산안 강행처리의 후폭풍에 기름을 붓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야당과의 공방전으로 내부의 시선을 밖으로 돌릴 필요도 있었다. 예산안 강행처리와 관련, 당 안팎에서 한나라당의 판단 하에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의혹어린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예산안 강행처리는 이 대통령의 ‘주문’에서 비롯됐다는 게 정가 인사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지난 2일 이 대통령이 국민경제대책회의에 참석, “국회가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까지 반드시 예산안을 통과시켜줘야 한다”면서 “예산이 기일 내 통과되고 내년 1월1일부터 집행돼 상반기 중 재정을 55∼60% 집행해야 연말이면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예산불용액의 낭비적 집행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한 후 한나라당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낙연 사무총장은 “여당의 예산안 강행처리 배경에는 청와대의 명령이 있었을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몇 일까지는 예산안 심사를 하자’고 야당과 합의해 놓고 청와대의 지시 한마디에 합의를 깬 것은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 것”이라고 일갈했다.

예산안 강행처리 뒷수습을 위해 고흥길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 사퇴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고 전 정책위의장이 당직 사퇴 하루 전인 지난 11일 이 대통령이 주재한 당청 회동에 참석한 것이 알려진 것.


청와대와 당 일부 인사들은 “고 전 위의장의 자발적인 사퇴였다”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가 당직 인선까지 좌지우지한다는 따가운 시선만 늘고 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지난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고 의장의 사퇴를 청와대가 정한 것처럼 돼 있는데, 당이 결정해야 할 일을 당청이 회동해 사퇴를 결정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홍 최고위원은 이어 “예산 파동의 책임자로 고 의장이 사퇴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당이 독자성을 상실했다는 일각의 지적”이라며 “당이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끌려 다니지는 않는지 돌아봐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보이지 않는 손’
한나라당 좌지우지 

그러면서 “한나라당 지지는 국민으로부터 오지 청와대로부터 오는 게 아니다. 총선은 당이 치르는 것이지 청와대가 치르는 것이 아니다”라며 “정부 여당은 재편하고 전열을 재정비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정두언 최고위원도 “민심이 중요하다. 총선과 대선 등 선거라는 큰 틀에서 이번 사안을 봐야 한다”며 홍 최고위원을 거들었다.

예산안 강행처리 후폭풍이 당의 내홍으로 번진 것이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지난 14일 김무성 원내대표 주재로 열 예정이었던 원내대책회의를 취소했다. 당이 예산안 강행처리의 후폭풍에 휩싸인 가운데 당내 분란으로 비춰질 수 있는 모습이 외부에 노출될까 우려한 탓이다.

하지만 이미 당 안팎의 분위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한구 의원은 지난 14일 예산안 강행처리 후폭풍과 관련, “2012년 총선 참패와 이명박 정부 레임덕이라는 위기감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 요구예산이 누락됐기 때문이 아니라 설익은 예산의 변칙처리, 실세 지역구에 토목예산을 챙기는 내용으로 예산이 처리됐다는데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고 분석한 후 “당 지도부가 너무 자기 자리를 추구하는 형태로 움직이면 당은 큰 피해를 본다. 예산처리의 책임자는 원내대표이지만 그동안 당에 대해 쌓였던 불만이 같이 터져 나온다면 책임질 사람은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또 “너무 청와대에 끌려 다니는 문제에 대해 의원들 생각이 많이 좋지 못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당 분위기가 굉장히 좋지 않다”고 전했다.


홍 최고위원도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그는 이번 예산안 파동을 1996년 12월 신한국당의 노동법 기습 처리 사태에 빗댔다. 홍 최고위원은 “당시 우리는 승리했다고 축배를 들었다”며 “하지만 결국 그것이 김영삼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 됐다”고 말했다. 이후 한보 사태와 IMF 사태가 터지면서 50년 보수 정권을 진보 진영에게 넘겨줬다는 것이다.

차기 총선과 관련, 대다수가 수도권을 지역구로 하는 소장파 의원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누구보다 높다. 한 소장파 초선 의원은 “총선에 대한 위기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예산안 강행처리와 ‘형님 예산’이 부각되면서 싸늘해진 지역 민심을 짚었다. 또 다른 의원도 “지역 민심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구상찬·김성식·김세연·정태근·홍정욱 의원 등 수도권 및 소장파 의원은 모임을 갖고 앞으로 청와대와 당이 물리력을 동원한 쟁점법안 처리를 강요할 경우 이를 거부키로 했다. 만약 강행처리에 동참하면 19대 총선에 불출마 하겠다는 각오다.

여권 악재 ‘엎친 데 덮친 격’
총선 참패, 조기 레임덕 우려

이와 관련, 정치권 일각에서는 차기 총선을 기점으로 신 계파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거론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총선이 다가오면 친이계 내에서도 변함없이 ‘강행 돌파’를 외치는 이 대통령과 이 대통령과 보폭을 맞추며 여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보이고 있는 이재오 특임장관, 현 정권 출범 후 크고 작은 의혹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형님’ 이상득 의원과 관련, 쌓이고 쌓인 불만이 폭발할 것이라는 것.

한 정치전문가는 “이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의원이 현 정부 들어 제기된 대부분의 의혹에 이름을 올린 것은 아닐 것”이라며 “야권이 예산안 강행처리와 관련, ‘형님 예산’을 강조하며 이를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로 이어갈 경우 정국에 미칠 파급력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총선이 다가올수록 이 의원의 2선 후퇴 뿐 아니라 의원직 사퇴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야당 뿐 아니라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제기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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