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의 시사펀치> 수안보만 봉이냐!

2016.06.01 10:27:14 호수 0호

신혼 초에 일이다. 평상시는 직장에 매달리느라 짬을 내지 못하다 여름과 겨울에 정기적으로 주어지는 휴가를 맞이하면 어김없이 아내와 여행을 떠났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아내와 지도 한 장 들고, 배낭을 메고 전국의 고적지를 돌아다녔다.



지금이라면 당연히 차를 몰고 갔을 터이지만 당시 자가용을 구비하고 있지 못한 관계로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현지에서는 여하한 일이 아니라면 주로 발품을 팔며 물어물어 다니고는 했다.

지금으로 살피면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당시는 한창 때였고 또 둘만의 시간을 공유한다는 기쁨으로 어려움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아니 여행이 지속되자 오히려 그 재미에 빠져들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이제 나이 60을 목전에 둔 아내의 제안으로 다시 지난 시간 속으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외향으로는 지난 시간 속이라 했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앞으로의 삶에 새로운 추억을 만들고자 함이다.

하여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집을 나서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지난 시절과는 달리 아내와 번갈아 핸들을 잡고 길에 오른다. 그 외에는 지난 시절과 동일하다. 그 흔한 ‘내비게이션’ 없이 역시 지도만 지니고 현지를 찾아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인다.

그러던 중 지난 주말 아내가 제안을 해왔다. 우리가 가장 먼저 여행지로 선택했었던 충주를 찾아 지난 시간을 더듬어보자고. 아내가 충주를 거론하자 오래전 여름 휴가 중에 중앙탑을 찾으면서 일어났던 해프닝이 떠올랐다.


충주에 도착해 중원 고구려비를 찾아보고는 지나는 사람들에게 중앙탑의 위치를 물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중앙탑의 소재는 물론이고 그 존재 자체도 알고 있지 못했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고 기어코 한 사람으로부터 중앙탑의 위치를 전해 들었다. “저쪽으로 걸어서 20분 정도 가면 탑이 나올 것”이라고.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고 아내와 그 뜨거운 여름에 햇빛을 고스란히 받으며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20분이 아니라 근 2시간을 걷고 나자 허허벌판에 외롭게 서 있는 중앙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중앙탑에 이르러 아내와 흘러내리는 땀을 번갈아 닦아주며 “세상에 정말 믿을 인간 없네”라며 한바탕 웃었던 경험이 있다.

여하튼 그 일을 떠올리며 충주에 들어 천등산 삼탄역, 충주호 등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다 불현듯 전에 가보지 못했던 탄금대가 떠올랐다. 즉각 차를 세우고 아내와 의기투합해 충주로 들어서면서 구한 관광 안내지도를 살피고 차를 몰아갔다.

막상 안내지도를 살피고 차를 몰아갔지만 이미 어둠이 완전히 깔린 저녁 시간에, 또 근 30년만에 찾은 충주가 생소하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지도 살피는 일을 멈추고 이정표에 의지해 찾기로 결론 내렸다.

충주 시내를 돌다 한순간 ‘탄금대’란 이정표를 발견했다. 고생 끝에 낙이라고 쾌재를 부르며 이정표가 일러주는 방향으로 차를 몰아갔다. 그러기를 잠시 후 황당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다음 사거리에 또 그 다음에도 이정표는 보이지 않았다.

이후로 ‘탄금대’란 이정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 그대로 욕지기를 하며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순찰 중인 경찰관들로부터 과분할 정도의 친절한 도움을 받아 찾아갈 수 있었다.

탄금대에 도착하자 시간은 어느덧 밤 10시에 이르렀고 어두운 그곳을 잠시 둘러보다 다시 거리로 나섰다. 순간 충주 시내를 돌다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눈에 띄었던 ‘수안보’란 이정표가 시선에 들어왔고, 막 육두문자를 내뱉으려는 순간 아내가 한마디 한다. “수안보는 돈이 되잖아.”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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