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건 잇달아 무죄' 박근혜정부 검찰 굴욕사

2015.12.28 11:25:55 호수 0호

'진실한 사람' 돕는 무리한 기소 남발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요즘 정가의 화두는 '진실한 사람'이다. 진실한 사람의 정확한 기준은 박근혜 대통령만이 알고 있다. 소위 '친박'이라고 해서 무조건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청와대의 지침에 잘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검찰도 그랬다. 지난 1년간 검찰은 청와대의 지시에 묵묵히 따랐다. 안 될 사건은 만들어서라도 기소했다. 연이은 무죄 판결에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검찰에는 '진실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외통수에 걸린 검찰이 항소를 포기했다. "정권 눈치를 본 무리한 기소였다"라는 비판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병신년(丙申年) 새해를 앞두고 가토 다쓰야(49·일본)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은 무죄가 확정됐다. 가토 전 지국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대한 칼럼을 썼다가 지난해 10월8일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무리한 수사
결론은 무죄

지난 22일 검찰은 "(1심) 재판부의 판단은 법리적으로 모순된다"라면서도 "항소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검찰은 항소 포기의 이유로 ▲가토 전 지국장이 작성한 기사가 허위임이 규명됐고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이 성립함을 규명했으며 ▲외교부에서도 한일관계 발전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선처를 요청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전했다.

앞서 일본 아베 신조 총리는 "한일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기대한다"라며 가토 전 지국장의 무죄 판결에 대해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또 아베 총리는 21일 가토 전 지국장과의 면담에서 "고생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일본 정부가 이번 사건을 정치적인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검찰의 항소는 곧 한일 양국의 외교적인 마찰로 번질 공산이 컸다. 결국 검찰은 예상대로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한 사법처리를 포기했다. 1년 넘게 끌어온 재판에서 확인된 사실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정윤회씨를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 전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이동근)는 지난 17일 가토 전 지국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가토 전 지국장이 허위사실임을 인식하고 사생활 의혹을 보도했다고 하더라도 박 대통령을 비방할 목적으로 기사를 게재한 것이 아닌 만큼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라고 판시했다. 또 "세월호 침몰 사고는 국가의 매우 중대한 사안으로 대통령의 당일 행적은 공적 관심사에 해당한다"라며 "공적인 대통령 업무 수행에 대한 비판에 해당돼 대통령 박근혜에 대한 명예훼손은 성립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정윤회 뜨면
청와대 발끈

역대 정부 가운데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 외국 언론인을 기소한 경우는 없었다. 가토 전 지국장은 지난해 8월3일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과 관련해 사생활 의혹을 제기하는 칼럼을 산케이신문 인터넷판에 게재했다.

당시 가토 전 지국장은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나고 있었나?'라는 기사에서 "대통령의 행적이 7시간 가량 파악되지 않고 있다"라며 몇몇 풍문을 전했다. 검찰 수사 결과 풍문은 사실과 달랐다. 의혹의 당사자인 정씨는 세월호 참사 당일 한학자 이세민씨와 만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또 다른 당사자인 박 대통령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2014년 4월16일 박 대통령이 언제·어떤 경로로 세월호 참사를 보고 받았고, 언제·어떤 구조·구난지시를 내렸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가토 전 지국장의 칼럼 게재로부터 4일 뒤 청와대는 윤두현 당시 홍보수석을 통해 "민형사상 책임을 반드시, 끝까지 묻겠다"라며 별렀다. 같은 날 보수단체인 사단법인 영토지킴이 독도사랑회는 가토 전 지국장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같은 해 9월15일 검찰은 "정씨가 세월호 참사 당일 이씨와 만났다"라는 내용의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다음날(9월16일) 박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라며 "이것은 국민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틀 뒤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사범 엄정대응' 방침을 발표했다.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다"라는 일본 등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1심 무죄 판결 직후 스스로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무리수를 뒀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대통령에 대한 모독' 발언으로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청와대는 공식 반응 없이 "외교부 입장을 참고하라"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외교부는 지난 17일 "한일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청와대의 이른바 '세월호 물타기' 전략은 법원 단계에 이르러 암초에 부딪혔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5월27일 국무회의에서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원인인 유병언 일가에 대해 반드시 검거해 사법처리하라"라고 주문했다. 박 대통령의 '불호령'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관계된 모든 인물이 수사대상에 올랐다.

이 가운데 검찰이 '도피 총책'으로 지목한 오갑렬 전 체코 대사는 지난 9월24일 무죄가 확정됐다. 이날 대법원은 범인은닉과 범인도피 교사 혐의로 기소된 오 전 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오 전 대사는 생전 유 전 회장의 매제였다.


언론인 가토 다쓰야 명예훼손 무죄
정윤회 문건 연루된 조응천 1심서 무죄
세월호 물타기 통영함 사건 황기철 무죄

검찰은 "오 전 대사가 유 전 회장의 도피를 주도했다"라며 그 증거로 ▲이른바 '김엄마' '신엄마'와 연락하고 ▲구원파 신도로 알려진 김모씨에게 은신처(별장)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등의 공소장을 꾸몄다. 유 전 회장은 오 전 대사와 연락을 주고받긴 했지만 김씨 별장으로 가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검찰은 신도 김씨가 당시 별장을 청소한 행위에 대해 '범인은닉죄'를 적용했다. 청소를 부탁한 오 전 대사에게는 범인은닉 교사 혐의를 씌웠다. 법원은 "범인은닉죄의 경우 예비 또는 음모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라고 판시했다. 또 '친족 범위 내 가족이 범인은닉 또는 도피죄를 범할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는 형법 제151조 2항을 적용해 무죄를 선고했다.

만약 담당검사가 무죄를 예견하지 못했다면 사법고시를 다시 치러야 할지 모른다. 유독 박 대통령이 가이드라인을 내린 사건에서는 무죄 발생 비율이 높다. 지난 10월5일 방위사업 비리 1호 타깃으로 지목된 황기철 전 해군 참모총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0월29일 "방산·군납비리는 안보 누수를 가져오는 이적행위"라며 "강력히 척결해 뿌리를 뽑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즉각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을 구성하고 대대적인 사정작업에 나섰다. 황 전 총장은 이른바 '통영함 비리'에 연루돼 합동수사단의 조사를 받았다.

통영함은 핵심장비인 음파탐지기가 '고철'과 다름없던 까닭에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작업에 투입되지 못했다. 검찰은 황 전 총장을 통영함 납품 비리의 몸통으로 보고 그를 구속 기소했다. 직속 부하인 오모 전 해군 대령과 짜고 음파탐지기 선정 과정에서 문서를 조작해 성능이 검증되지 않은 A사 제품을 납품하도록 했다는 혐의였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현용선 부장판사)는 "(부실 납품에)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며 황 전 총장과 오 전 대령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세월호 탑승객을 구조하지 못한 책임을 통영함에 떠넘기려던 정부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간 셈이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5시15분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해 "구명조끼를 학생들이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든가"라고 말했다.

모르쇠 기소
책임은 아몰랑

박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은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사건에서도 충실히 이행됐다. 지난해 11월28일 <세계일보> 보도로 촉발된 '정윤회 문건 파문'은 같은 해 12월1일 박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로 규정하며 수사가 시작됐다.


이어 박 대통령은 같은 달 7일 "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라며 검찰을 압박했다. 수사가 진척되기도 전에 문건의 성격을 '찌라시'로 규정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투입된 수사는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을 조준했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의 지시로 박 경정이 청와대 내부 문건 17부를 박지만 EG 회장 측에 빼돌렸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에게는 나란히 공무상 비밀누설 및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지난 1월 검찰은 조 전 비서관과 박 경정을 기소했다.

하지만 1심에서 조 전 비서관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박 전 행정관에게는 징역 7년이 선고됐지만 문건 유출과 무관한 수뢰죄가 인정된 형량이었다. 지난 10월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8부(재판장 최창영)는 정윤회 문건 1부를 제외하고는 남은 16부의 문건 유출에 대해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또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는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보고된 원본이 아니므로 대통령 기록물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정윤회 문건 파문의 핵심은 이른바 '십상시'가 실재하느냐다. 그러나 검찰은 문건 유출 경위에만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조 전 비서관을 찍어 내렸다. "박관천보다 죄질이 나쁘다"라는 언론플레이도 잊지 않았다. 당시 수사를 지휘한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은 최근 검찰총장에 내정됐다. 청와대 입장에선 김 총장만큼 '진실한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검찰 장악
여론 장악

검찰이 '전가의 보도' 마냥 휘두른 국가보안법은 실제 유죄 판결로 이어진 사례가 드물다. 지난 9월11일 주한 미국대사인 마크 리퍼트를 흉기로 습격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종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표는 국가보안법 혐의에 대해 무죄를 판결 받았다. 살인미수 등 혐의만 유죄로 인정된 김 대표는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또 지난 10월29일 '국정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던 유우성씨는 대법원에서 무죄를 최종 판결 받았다. 증거 조작의 공범과 다름없는 검찰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올해 검찰 수사의 '백미'는 성완종 리스트 수사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 등 친박 핵심 인사 6명은 전원 무혐의 처리됐다. 과연 검찰이 가토 전 지국장, 유 전 회장, 조 전 비서관에 대해 화력을 퍼부었던 만큼 '노오력'을 기울였는지는 불분명하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