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황금분할’ 노리는 금배지들

2015.09.14 11:02:13 호수 0호

발붙일 땅 찾아 두리번두리번 “어디 없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근 정가의 최대 관심사는 선거구가 어떤 형태로 통·폐합 되느냐다. 의원들로선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여·야 할 것 없이 비례대표 초선의원들은 선거구가 어떤 형태로 쪼개질지 몰라 밤잠을 설치고 있다. 자신들의 정치생명 연장 여부를 결정짓는 선거구 황금분할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의원들의 실태를 <일요시사>가 취재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오는 선거구 재획정 소식에 여·야 의원들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인구수가 기준에 미달되는 지역 의원들은 “19대 국회가 끝나기 전까지 시한부 인생을 사는 꼴”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통·폐합이 예상되는 지역이 농어촌에 편중되고 있다며 해당 지역 의원들은 “지역 대표성을 보장해 달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선거구 재획정
인구 초과 지역

반면 분구(分區)가 예상되는 선거구도 있다. 인구가 기준 상한선을 초과할 것으로 전망되는 지역은 통·폐합이 예상되는 지역과 달리 주로 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지역들은 비례대표들 사이에선 ‘기회의 땅’으로 주목받고 있다. 재선에 성공한다면 향후 정치인생을 책임져줄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들 입장에선 선택할 수 있는 지역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할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들이 선거구 분구를 기대하는 이유에는 재선에 성공하기 힘들다는 현실적 어려움이 내포돼 있다. 지역기반이 약한 관계로 어디로 출마할지 결정하는 것도 녹록지 않다. 이념적 지역색은 차치하더라도 이미 대부분 지역들을 여·야 중진의원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최근 정가에서 불고 있는 ‘정치신인을 발굴하자’는 것도 갈수록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기 힘든 현실 상황의 발로라고 정치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즉 정치신인이 발을 들일만한 땅이 없다는 것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지난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가 지역구 출마에 도전한 사례는 전체 64명의 비례대표 중 34명, 비율로 따지면 53.1%의 비례대표가 지역구 출마에 도전했다. 그 중 재선에 성공한 이는 단 6명에 불과하다. 도전자 중 17.6%만이 19대 국회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떨어진 이들은 ‘선당후사’했다가 ‘토사구팽’ 당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높은 벽이 존재함에도 19대 국회에서 지역구 출마를 선언한 비례대표의 수가 지난 10년 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어 이례적이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67.7%(전체 62명 중 42명)를 기록했던 비례대표의 지역구 출마 비율이 18대 들어서는 53.1%(전체 64명 중 34명)로 감소했다가 19대 들어 76.8%(전체 56명 중 43명)로 급상승했다. 나머지 13명의 비례대표 또한 조만간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수치는 더욱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차기 총선 출마를 계획하는 비례대표의 비율이 높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정가는 기존의 ‘관행’에 최근의 ‘선거구 분구’라는 요인까지 더해진 결과로 보고 있다.

지역구 분구
기회의 땅?

‘초선 비례대표, 재선 지역구’는 정가의 대표 공식이다. 비례대표제는 일찍이 소수자 배려와 전문성 확보, 소선거구제로 인해 발생되는 사표 문제 등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정치 입문을 위한 등용문으로 전락했다는 의견이 많다. 여권에서는 ‘비례대표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비례대표제’는 정당지지 투표를 통해 얻은 표를 비율로 환산해 각 정당에 배분, 정당에서 미리 정해놓은 순번에 따라 국회에 입성하는 제도다. 따라서 몇 번째 순번을 받을 수 있는지가 국회 입성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권력실세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별한 지역활동 없이 국회에 입성하다보니 ‘특권’을 누렸다는 인식도 정가 저변에 깔려있다.

국회에 입성하고 나서도 비례대표들은 온전히 의정활동에 매진하기 힘들다. 직능 전문성을 살려 의정활동을 해도 당장 다음 총선에 어디로 출마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국회의원 4년 동안 전반기 2년은 의정활동에 치중하고, 나머지 2년 동안은 지역에 매진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

때문에 여·야는 제도 개선에 나선 모습이다. 새누리당은 20대 총선 공천을 앞두고 최소 3년 이상 해당 지역에서 거주한 후보자에게 가점을 주는 ‘지역기여도 평가’를 도입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고됐다.

도입 이유는 김무성표 오픈프라이머리(국민공천제)가 시행될 경우 무분별한 후보 난립을 막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용인즉 당은 해당 지역에서 최소 3년 이상 거주한 후보자에게 가점을 주는 대신 그렇지 않은 후보자에게는 감점을 준다는 것이다. 지역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제도라고 새누리당은 설명한다.

비례대표 자생 길은 딱 하나 ‘지역구’
18대 비례대표 중 단 6명 생존, 17.6%


그러나 취지와는 달리 비례대표들 사이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비례대표의 경우 출마를 준비하는 지역에 3년 이상 거주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현실성이 없다’는 주장과 함께 ‘기존 의원들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오히려 국민들의 요구와는 달리 기득권을 공고히 만드는 제도라고 보고 있다. 정치신인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

비례대표로 재선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안도 제기되고 있다. 한 새누리당 당직자는 “현실적으로 의정활동을 잘하는 비례대표에 한해 재선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당내 의견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측에서도 “비례대표의 의정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비례대표 재선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당 일각에서는 “비례대표로 특권을 누렸으니 지역구 출마는 취약지역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법적 제한은 없다. 과거 정치자금으로 인한 비리가 횡횡했기에 각 정당은 17대 국회 이후 당헌·당규에 비례대표 연임 제한 규정을 두고 있을 뿐이다. 당헌·당규를 보면 여·야 모두 “비례대표는 원칙적으로 정치신인을 공천한다”고 나와 있다. 해석상 연임금지로 보인다.
 


관행이 굳어지기 전 비례대표 다선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김종인 전 의원은 여·야를 통틀어 비례대표로만 4선을 했다. 새누리당 최병렬 상임고문(12·14대),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한명숙 전 대표(16·19대), 김한길 전 대표(15·16대) 등도 비례대표를 두 차례 이상 지냈다.

여·야 막론
출마 러시

따라서 총선에 불출마하지 않는 이상 비례대표에게는 지역 출마가 유일한 답이다. 선거구 분구는 비례대표의 지역 출마를 끌어들이는 흡인요인으로 꼽힌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4년 10월30일 선거구 간 인구 편차가 최대 3배까지 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며 인구 편차가 2배를 넘지 않게 개정하라는 입법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따라서 일정 기준 이상의 인구수를 보유한 지역은 선거구가 분구될 예정이다. 법정 인구 상한선이 27만명 수준으로 정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비례대표들의 대거 유입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지역구 출마를 선언하는 의원들의 소식을 정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분구가 예상되는 지역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비례대표들을 정당별로 2명씩 꼽으면 다음과 같다. 새누리당 민현주 의원은 최근 인천 연수구에 지역사무실을 열고 분구가 예상되는 송도 출마를 선언했다. 연수구는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4차례 당선된 지역으로 정치경력을 따지면 민 의원이 불리한 상황이지만, 연수구에서 송도가 독자 선거구로 분리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민 의원 측은 “선거구가 새로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 송도에서 20대 총선 출마 준비를 할 것”이라며 “지역구에서 많은 분을 찾아뵙고 있다”고 전했다.

새누리당 이에리사 의원은 일찌감치 출마 지역을 선정했다. 지난 6월11일 기자회견을 연 이 의원은 “여의도에서 3년간 배우고 느낀 것이 있는데 혹시 국회에서 더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전 중구가 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분구 예상 지역에 출마 선언 이어져…
선거구 제출시한 10·13, 핵폭탄 뇌관


대전 중구는 6선을 지낸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무주공산이 된 곳이다. 때문에 이 의원 같은 초선 의원이 노려봄직한 몇 안 되는 지역으로 손꼽힌다. 또한 대전 내에서도 인구 기준 상한선을 초과하는 몇 안 되는 지역으로 분류된다. 이 의원 입장에서는 선거구 분구가 이루어진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전 최초의 여성 지역구의원이 될 수 있을지 지역언론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새정치연합 측에서도 지역 출마를 고려하는 비례대표들이 많다. 그중 육사 출신의 백군기 의원은 경기 용인갑 출마가 예상된다.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백 의원이 수순대로 공천을 받는다면 새누리당 이우현 의원과의 대결이 예상된다. 선거구 한 곳이 신설될 것이 유력한 가운데 지역구 다지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강서 을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진성준 의원도 20대 총선에 도전한다. 강서구는 서울 지역 내에서 몇 안 되는 분구 예상 지역이다. 강서 병이 새로 신설된다면 의석이 추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속 의원 5명 중 심상정 대표를 제외한 4명이 비례대표인 정의당 또한 분구가 예상되는 지역에 잇따라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박원석 의원은 인구가 초과된 경기 수원시에 선거사무소를 개소하고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박 의원은 정의당 수원시 지역위원장을 역임하고 지역활동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로 ‘조건만남’을 검색하는 모습이 한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돼 논란을 빚은 일이 있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박 의원 측은 즉시 보도자료를 통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오늘 본회의장에서 회의에 집중하지 않고, 부주의한 행동을 한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룰 없는 게임
언제 정해지나?

20대 총선을 7개월여 남긴 상황에서 선거구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은 출마를 선언한 비례대표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요인이다. 야권의 한 비례대표의원의 보좌관은 “지역 활동을 하고 있지만 막연하다”며 “선거구가 분구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여권의 비례대표의원 보좌관 역시 “룰 없는 게임을 하는 느낌”이라고 현 상황을 비유했다. 이들이 불확실성을 언급하는 이유는 조건에 부합하는 지역을 찾더라도 공천이라는 돌발 변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지역구-비례대표 의석에 대한 여·야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선거구 획정위는 획정기준 제출시한인 10월13일까지 마감시한을 지킨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자체 기준 수립도 불사하겠다는 모습이다. 과연 획정된 선거구가 비례대표들의 정치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개특위 정문헌 여당 간사 사퇴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 소속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지난 8일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정 의원은 “선거구획정의 이해 당사자가 됐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시한 1개월 남겨두고 파행?

이에 일각에서는 힘주어 출범한 정개특위가 유야무야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 의원은 지난 7일 있었던 회의가 끝난 후 “권역별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등 얘기를 나눴는데 난관에 봉착한 상태로 풀리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어려움을 토로한 지 하루 만에 사의를 표명해 정가에서는 ‘야당과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진 것 아니냐’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지난 9일 정 의원의 사의 표명에 대해 “(정 의원이) 정개특위 운영을 계속해왔던 책임자이기 때문에 업무파악능력이 가장 충분한 의원”이라며 “간사로서 계속 해주길 바라지만 제척 대상이 되는 경우에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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