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덮친 ‘게이트 역풍’ 막전막후

2010.07.20 09:12:01 호수 0호

청와대 컨트롤 ‘로봇 회장님’…‘영포’ 맞고 폭발 직전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게이트 불똥이 재계로 튀었다. 일부 기업이 ‘영포게이트’파문의 직격탄을 맞은 것. 게이트 핵심 인물의 인사 개입 또는 비호 의혹이 쟁점이다. 정치권 대공세에 몰린 기업들은 초비상이다. 자칫 여론의 뭇매를 맞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혹시 모를 검찰 수사도 걱정거리다. 게이트 역풍으로 진땀을 빼고 있는 기업들과 그 이유를 살펴봤다.

비선라인, 일부기업 인사개입·비호 의혹 급확산
“하나씩 차례로” 금융·공기업서 민간회사로 전이


재계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에서 불거진 ‘영포게이트’의 역풍을 맞고 있다. 공방전의 중심이 민간인 사찰 의혹에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권력 실세의 연루 의혹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영포목우회(영일·포항 출신 공직자 모임) 인사들의 부당한 권력 개입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민주당을 통해 국내 굴지 기업의 인사 개입, 비호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실직고 안하면…”
추가 ‘줄폭로’예고

먼저 불똥이 튄 곳은 금융권이다. 그중에서도 신한금융지주에 가장 큰 불똥이 떨어졌다. 영포회 일원이 라응찬 회장을 비호했다는 의혹이 나온 것. ‘영포게이트’저격수로 연일 불을 뿜고 있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9일 ‘영포게이트 진상조사특위’회의에서 라 회장을 향해 새로운 의문을 던졌다.

박 원내대표는 “라 회장의 50억원 문제가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하고 있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영포라인 고위직에 있는 인사가 비호세력으로 있어 김종창 금감원장이 조사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 사건은 또 하나의 영포라인의 비리”라며 “만약 당사자가 이실직고하지 않으면 실명을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박 원내대표가 지목한 영포라인 고위직에 대해 “박영준 총리실 국무차장이나 정인철 청와대 비서관보다 높은 TK(대구·경북) 출신의 고위 공직자로 라 회장과는 절친한 사이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지난해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하면서 라 회장이 2007년 2∼3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50억원을 건넨 사실을 확인했다. 이 돈은 라 회장 개인계좌가 아닌 차명계좌에서 인출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검찰은 돈의 성격이 규명되지 않은데다 불법 거래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사 종결한 바 있다.

라 회장이 개인돈을 차명계좌로 관리했다면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금융실명제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한다. 회장직에서도 물러나야 한다. 금융지주회사법상 지주사 임원이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거나 금융관련법 위반으로 벌금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사임해야 한다.

금융감독원은 라 회장의 차명계좌 관리 사실을 알고도 그냥 넘어갔다.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는 이유로 조사에 착수조차 하지 않은 것. 라 회장이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로 금감원의 조사를 받지 않자 정치권과 금융권에선 정권 실세의 비호 의혹이 일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박 원내대표 등 민주당이 ‘영포게이트’에 금감원의 봐주기 의혹을 얹어 추가 폭로를 예고하자 금감원은 부랴부랴 조사에 착수했다. 1년 넘게 질질 끌다 이제야 조사에 나선 것과 관련해 논란이 적지 않지만, 금감원은 라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여부를 꼼꼼히 들여다볼 방침이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와 협의 뒤 검찰에 라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자료를 보내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라며 “자료가 확보되는 대로 금융실명제법 위반 여부를 검사하겠다”고 밝혔다. 비호 의혹에 대해선 “구체적인 정보가 부족해 조사에 나서지 못했을 뿐 누구의 압력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신한금융지주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라 회장의 실명제법 위반 논란은 무혐의로 이미 끝난 사안인데 왜 또 거론되는지 모르겠다”며 “금감원의 조사도 검찰 수사와 마찬가지로 별 문제 없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억울하다는 반응도 있다. 한 직원은 “현 정부 실세들의 각종 스캔들과 맞물려 괜한 된서리를 맞지나 않을지 걱정”이라며 “게이트란 굵직한 정치 공세의 희생양이 되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영포게이트’역풍이 덮친 곳은 신한금융지주 뿐만 아니다. 다른 금융사와 공기업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KB금융지주가 대표적이다. ‘KB호’는 지난 13일 새 선장을 맞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어윤대 회장이다. 어 회장은 이날 여의도 본사 강당에서 취임식을 갖고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회장직 선정 과정의 공정성 시비에 휩싸여 있다. 여기엔 ▲청와대 압력설 ▲정권 실세들의 회장 후보들 정리설 ▲선진국민연대(MB캠프 외곽조직) 인사들의 개입설 ▲어 회장의 회장후보추천위원장 종용설 등 여러 의혹이 달라붙은 상황이다. 물론 당사자들은 하나같이 “터무니없다”고 일축했지만,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양상이다.

이밖에 청와대 인사들이 KT를 비롯해 산업은행, 기업은행, 우리은행 등에 입김을 불어넣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청와대 실세들은 이석채 KT 회장을 비롯해 민유성 산업은행장, 윤용로 기업은행장, 이종휘 우리은행장 등 CEO들과 정기적으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이 자리에서 각 기업의 경영 또는 인사 등에 모종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냐는 게 논란의 골자다.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조만간 수면 위로 떠오를 것으로 보이는 기업도 있다. 정치권에서 의혹 정황만 공개한 채 실명이 언급되지 않은 곳이다.

백원우 민주당 의원은 지난 14일 모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기업 임직원 인사에 청와대,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이 적극 개입한 흔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당 기업에 대해선 정부가 영향력을 가진 민간기업들이라고 지목했다. 백 의원은 “이곳저곳에서 (인사개입 정황이) 나오고 있고, 제보들이 있기 때문에 확인 작업 중”이라며 “의혹이 다른 기업들로 번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압력설, 정리설,
개입설, 종용설…’

전병헌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1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영포 라인의 청와대 모 비서관이 모 대기업에 수십억원의 후원금을 요구하는 압력을 넣었다고 폭로했다. 전 의장은 비서관과 대기업 이름을 밝히지 않았으나 민주당 주변에선 특정인물과 업체명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형편이다.

전 의장은 “모 비서관이 모 그룹에 수십억원을 요구해 해당사가 수억원을 냈다는 신빙성 있는 제보를 받고 확인 중”이라며 “이외에도 여러 정황이 있기 때문에 시기는 특정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 정부 들어 특정 협회의 운영과 실체적 자금내용을 둘러싸고 영포라인과 선진국민연대라인이 상당히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대기업들의 후원금·행사자금 지원 내역이 공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A그룹, B그룹…’민주당에 제보 쏟아져
숨죽인 의혹투성이 CEO들 ‘곡소리 난다’


이처럼 민주당엔 ‘영포게이트’관련 기업 제보가 쏟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당직자는 “외환위기 때 부도났다 정부의 공적자금으로 회생한 기업들 인사에 정부 고위직이 간여했다는 제보가 많다”며 “이중 인사 과정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억울하다는 사연과 함께 외부세력의 개입 의혹과 정황을 털어놓은 사례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영포게이트’는 또 다른 권력형 게이트로 확대, 대우조선해양을 강타했다. 남상태 사장의 유임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남 사장이 협력업체를 통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뒤 자리 보전을 위해 정권 실세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때인 2006년 3월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된 남 사장은 정권이 바뀐 뒤에도 유임되다가 지난해 3월 연임했다.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가 산업은행인 탓에 사실상 정부가 임명권을 갖고 있어 당초 사장 교체가 유력했으나 남 사장은 그대로 자리를 지켜 그 배경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다른 출자 회사의 경우 대부분 수장이 교체됐었다.

이 미스터리엔 거물급 인사가 오르내린다. 바로 이 대통령과 막역한 친구 사이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다. 강기정 민주당 의원은 지난 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우조선해양의 협력업체가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고, 그 중 수십억원이 남 사장에게 들어가 유임 로비에 쓰였을 것”이라며 “로비 대상자로 현정권의 실세 기업인으로 통하는 천 회장 등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영포라인이 거론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강 의원은 “대우조선해양 상임고문으로 재직 중인 세 사람이 남 사장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며 “이중 두 명 역시 정권 실세의 최측근으로 통하고 있고, 나머지 한명은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영포회 사무국장 출신”이라고 강조했다.

대우조선해양 측은 남 사장의 유임 로비는 물론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검찰이 협력업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확대 해석된 경향이 있다”며 “정치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권력형 게이트 등의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포스코의 경우 ‘영포게이트’와 ‘남상태게이트’두 사건에 얽혀 진땀을 빼고 있다. 두 게이트의 핵심 인물들이 정준양 회장의 회장직 선정 과정에서 개입 의혹이 불거졌었기 때문이다.

야당이 영포회 배후로 꼽은 박영준 차장은 지난해 포스코 회장 인사 때 구설에 올랐었다. 우제창 민주당 의원은 당시 “박 차장이 야인 시절이던 2008년 11월∼2009년 1월 윤석만 전 사장과 이구택 전 회장, 박태준 명예회장 등 포스코 고위 인사들을 잇따라 만나 차기 회장 후보에 대해 논의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박 차장은 만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인사 개입은 없었다고 부인했었다.

‘민주당 리스트’주목
거물급 인사 가득?

또 대우조선해양 인사의 중간다리 역할로 지목된 천 회장도 정 회장 인선에 끼어들었다는 의심을 받았다. 우 의원은 박 차장의 개입 의혹과 함께 “천 회장이 윤 전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이 정준양으로 결정했다. 바꿀 수 없다’며 회장직 포기를 종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천 회장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아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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