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이 올 1분기에 약 154억2200만원의 보수를 받아 ‘보수왕’으로 등극했다. 유 회장이 받은 금액 대부분은 퇴직금인데 이를 두고 말이 많다. 또한 수백억의 퇴직금을 보수로 챙기면서 경영권을 놓지 않는 행태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지난 19일 재벌닷컴이 1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상장사 1716개사와 비상장사 601개사 등 2317개사의 올해 1분기 임원보수 내역을 조사한 결과, 지난 1분기(1∼3월) 보수총액이 5억원 이상인 임원은 101명이며, 이 중 32명은 10억원 이상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1분기 보수 1위인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으로 총 보수액이 154억2200만원에 달했다.
등기임원 사퇴
2위는 48억6500만원을 받은 박장석 SKC 고문으로 나타났다. 해외 원정도박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도 급여와 퇴직금 등으로 34억5900만원을 받아 3위를 차지했다. 그밖에도 구자영 전 SK이노베이션 부회장, 이완경 전 GS EPS 대표이사, 김윤섭 전 유한양행 사장도 20억원 넘는 퇴직금을 받고 보수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위인 박장석 SKC 고문과 3위인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보수를 합쳐도 넘을 수 없는 벽. ‘보수왕’ 유 회장의 보수는 유진기업에서 급여 1억2500만원과 상여금 6300만원을 받아 업무 관련 소득은 많지 않았지만 퇴직소득으로 86억9358만원, 기타근로소득(퇴직금 중 근로소득 인정분)으로 65억4079만원을 받아 보수가 크게 늘었다.
유 회장은 실질적으로 152억3437만원의 퇴직금을 받았다. 유 회장의 퇴직금을 등기임원이 아닌 일반 사원의 규정(평균 월급여X근속연수)으로 단순 적용하면 244년 이상(월급여 6250만원 기준) 근무해야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유진기업은 지난해 연결재무제표 기준 7389억9747만원의 매출을 올려 303억5590만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금액만 놓고 보면 한 해 영업이익의 절반을 오너가 퇴직금으로 가져간 셈이다. 유 회장은 지난 1985년부터 유진기업의 등기임원으로 줄곧 일했다. 중견기업 중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등기임원으로 근무한 오너다. 유진기업 측은 “퇴직금은 근무연한만큼 누적되고 유 회장은 30년을 일했기 때문에 절대 부정한 돈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1분기 보수 154억…2위와 100억 이상차
대부분 퇴직금 “경영권은 그대로 유지”
유 회장은 지난 1월 유진기업의 대표이사 및 등기이사에서 사퇴했다. 유 회장 사임 당시 유진기업 측은 “그룹 차원의 미래 먹거리 사업을 검토하고 계열사 간 시너지 제고 등의 큰 그림을 그리는 효율적 경영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유 회장이 물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 회장의 사퇴를 놓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특히 유 회장이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은 것을 두고 퇴직금을 받기 위한 심산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등기임원 사퇴진의에 의문부호가 붙었다.
등기임원 사퇴 논란은 그간 꾸준히 지적돼 왔다. 5억원 이상 받는 등기이사의 연봉을 공개하는 상황에서 이를 회피하기 위해 등기임원에서 물러나면서 거액의 퇴직금을 손에 쥐고 법적 책임을 피하는 오너들의 사례가 끊이지 않은 것이다. 등기임원에서 물러나면 보수 공개에 대한 의무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지난해 각각 215억원과 178억원이라는 거액의 보수를 받았다. 이 역시 정 회장은 95억원, 김 회장이 143억원의 대규모 퇴직금을 수령한 데에 따른 것이다. 오너 등기이사의 고액 퇴직금에 따른 고연봉 논란은 지난해부터 계속됐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유 회장이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것을 두고 몇 년 전부터 이어온 재판에 부담을 느낀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유 회장은 김광준 전 서울고검 부장검사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5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을 확정 받은 바 있다. 이밖에 무죄 판결을 받긴 했지만, 하이마트 2차 M&A 과정에서 선종구 하이마트 전 회장과 이면계약을 맺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한동안 법정을 들락거렸다. 다만 관련 혐의에 대해 1심은 지난 1월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 회장이 등기이사에서 물러났지만 유진그룹 경영권 행사에는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유진기업은 3월27일 주주총회에서 유 회장의 장남 유석훈 경영지원실 총괄부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했다. 유 회장은 현재 회사 대주주이자 그룹 계열사를 책임지고 대외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회장으로서 업무에 임하고 있다.
경영 지배력 여전
최근 유 회장의 퇴직금 문제가 이슈로 부각되면서 재계에서는 재벌 오너 일가 중 장기간 등기임원으로 일해 온 이들이 은퇴할 경우 또 다시 이런 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재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등기임원으로 일한 사람은 1967년 롯데제과 창립부터 지금까지 무려 48년째 등기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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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등기임원 연봉 공개 이후…
재벌들이 연봉공개를 꺼리면서 등기임원에서 사퇴하거나 보수를 5억원 밑으로 줄이고 있다. 대신 배당을 후하게 받기 시작했다. 정부가 가계소득을 보전한다는 취지로 배당 확대를 장려하는 분위기다. 보수는 줄어드는 대신 배당은 그만큼 늘리고 있다. 오너들은 등기임원에서 빠지면서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배당을 통해 그동안 받아왔던 보수를 채우고 있는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연봉공개는 대부분 월급쟁이 사장인 전문경영인들의 몫이 됐다. 전문경영인들은 철저한 성과에 따라 연봉을 받는다. 조금이라도 실적이 빠지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 지난해 1분기 96억원의 보수로 ‘연봉킹’으로 지칭받던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은 올 1분기 실적악화로 12억원여원을 받았다. 다른 전문경영인들도 비슷하다.
임원 보수 공개는 시행초기와 달리 확실히 변질됐다는 평가가 많다. 재벌총수들이 전문경영인 뒤에 숨으면서 보수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