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김명일 기자 = 정치인들은 복지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다. 화려한 듯 보이지만 단 한 표 차이로도 정치인들의 인생은 크게 엇갈린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낙선자들의 자살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이유다. 자살까지 내몰리는 정치인들의 낙선 후 실태를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전문직 출신이야 선거 끝나도 돌아갈 곳이 있지만 사실 대부분은 낙선 후 대책이 없다. 어제까진 왕처럼 군림하다 하루아침에 바닥까지 추락하니 그걸 못 견디는 사람도 있는 거다.”
낙선 후 정치인들이 받는 정신적 충격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선거를 위해 몇 년을 준비해왔던 사람들이고 낙선 후엔 또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정치생명 끝?
지난 18대 총선에서 낙선했던 한 정치인은 “개표 결과를 통해 낙선이 확정되었는데 주변에서 사람들이 ‘정치생명이 끝났다’고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릴 수가 없었다. 작게 수군거리는 것이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내 귀에 대고 누가 ‘넌 정치생명이 끝났다’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전형준 전 전남 화순군수가 지난 21일 한 원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유족에 따르면 전 전 군수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후 매우 힘들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선거가 끝나고 나면 낙선자들의 자살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지난 6·4지방선거 직후에도 강원도 인제군의원 3선에 도전했다 낙선한 김모씨가 목을 매 자살하고, 서울의 한 구의원에 출마했던 50대 남성이 자신의 차 안에서 자살을 기도하다 극적으로 구조되는 등 낙선한 정치인들의 자살기도가 잇달았었다.
이들이 자살까지 내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 출신 정치인의 경우 낙선 후에도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가 별 어려움 없이 생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취업에 어려움을 겪으며 끊임없이 정치권 주변을 맴돈다고 설명했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국회의원 시절엔 차에 탈 때 차문조차 스스로 열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혼자 사회에 나가게 되면 그야말로 ‘멘붕’이 오는 것”이라며 “국회의원 두 번만 하면 자기 손으로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된다고 하지 않나? 정치인들이 재선에 목을 매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선거판에 발을 잘못 들여놓았다가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많다. ‘도박중독’과 비견되는 ‘선거중독’이다. 유명 정치인들이야 후원금으로 선거비용을 대부분 충당하지만 정치 신인들은 자비를 들여 선거에 임해야만 한다. 게다가 선거비용을 보전받지 못할 정도로 득표율이 낮으면 선거비용은 고스라니 빚으로 남는다. 특히 고비용 저효율의 우리나라 선거제도하에서 낙선자들의 피해는 더욱 막심하다. 과거보다 선거가 투명해졌다고는 하지만 선거판에서는 여전히 ‘낙선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유효하다.
낙선 후 대책 없어, 복지 사각지대
‘낙선하면 집안 망한다’ 여전히 유효
선거비용을 보전 받을 만큼 선전하는 것도 문제다. 근소한 차이로 낙선하고 난 뒤엔 선거중독 증세가 더 심해진다. 선거에 점점 더 매달리다 보니 일부는 선거법을 어겨 팔자에도 없던 전과자 꼬리표를 달고 인생이 꼬이기도 한다. 정치판에 한 번 발을 들인 자들의 슬픈 운명이다.
정치인들은 당선되고 나면 고액연봉으로 떼돈을 버는 줄 아는 일반인들의 편견도 무척 부담스럽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고액연봉을 받는 것은 맞지만 그만큼 지출도 많다는 것이다. 여론의 질타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 등을 기어코 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3선에 실패하고 고향인 경남 사천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고 있는 강기갑 전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시 당선됐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억대 연봉을 받고 있었지만 강 전 의원에 따르면 당시 가정형편은 파산 직전이었다. 실제로 많은 국회의원들은 억대 연봉을 받고 있지만 지역구 사무실 유지비며 직원 인건비 등을 제하고 나면 적자가 나는 달도 많다고 하소연한다.
한때 나랏일을 관장했던 이들은 낙선하는 순간 이전에 보장 받았던 혜택과 특권을 모두 잃게 된다. 갑자기 소득이 뚝 끊기면 누구나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낙선 후 개인 파산신고를 하거나 생활고를 호소하는 정치인들도 많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정치인들에게 퇴직금이 있나 뭐가 있나? 억대연봉을 받아도 (워낙 지출이 많아) 정치하면서 월급으로 돈 모았다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 원래 자기 재산이 없는 사람은 낙선하면 당장 생활고를 겪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때 맛봤던 ‘권력의 맛’을 잊지 못해 정치권 주변을 계속 맴도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생활고보다 힘든 것이 주변의 시선”이라며 “나에게 조금만 서운하게 대해도 내가 낙선했다고 날 무시하나? 하는 자격지심이 생긴다. 물론 낙선하고 나면 주변의 대우가 달라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KBS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인임이 ‘권력을 잃느니 하루 빨리 죽는 게 낫다’고 말했는데 아마 많은 정치인들이 그 대사를 듣고 크게 공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망선고 다름없어
때문에 일각에선 유명 정치인이 낙선하게 되면 사정이 더 가혹하다고 귀띔하기도 한다. 이들은 이미 대중에 얼굴이 알려져 취업을 하거나 창업을 하기도 애매하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유명 정치인의 경우 인지도를 바탕으로 언제든 정계에 복귀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낙선 후에도 주변에 늘 사람이 많지만 빛 좋은 개살구”라며 “한때 당 총재까지 맡았던 인물이 돈 몇 푼이 없어 송사에 휘말려 체면을 구기는 경우도 있다. 과거의 영광에만 얽매이다 보니 생기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주변엔 지금도 그 시절을 잊지 못하고 배회하는 전직 의원들이 상당수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정치인들의 실태는 정치인들의 부정부패를 부추기는 한 원인이기도 하다”며 “고비용 저효율의 선거제도를 개선하고 이들이 낙선 후에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mi737@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형준 전 군수의 지역구는?
바람 잘 날 없던 전남 화순
낙선 후 자살을 선택한 전형준 전 전남 화순군수. 지난 10여년간 화순군수선거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임호경 전 군수와 그의 아내 이영남 전 군수, 전완준 전 군수와 그의 형 전형준 전 군수 등 두 집안 간에 갈등으로 당선된 군수들이 잇따라 중도 낙마하면서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그로 인해 지역 이미지마저 급격히 추락했다. 그동안 세 차례의 보궐선거로 인해 치른 비용만 수십억원에 달했다. 군수 공백으로 행정이 겉돈 데다 선거 때마다 공무원과 지역민들의 줄서기가 극에 달해 행정의 난맥상과 후유증도 적지 않았다.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