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경제1팀] 여수에 또 재앙이 찾아왔다. 민족 대명절인 설, 여수 앞바다에서 원유유출 사태가 발생했다. 기름 냄새가 여수 시내까지 진동할 정도다. 근처 어민들의 피해가 극심하다. 보상이 절실한 상황. 하지만 어렵다. 유조선사인 선박회사와 GS칼텍스 간 책임공방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기업 환경사고는 보상받기 힘들다. 항상 그래왔다. 태안 기름유출 사태는 6년이 지난 지금도 피해보상 범위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최근 발생한 'GS칼텍스 여수기름유출 사건'은 여수에 찾아온 두 번째 재앙이다. 이번 사고는 여수시 낙포동 낙포각 원유 2부두에서 싱가포르 국적 유조선이 정박 중 도선사의 안전속도 무시로 송유관을 들이 받아 파이프 속 원유가 바다로 유출되면서 발생했다. 파손된 송유관은 모두 3개. 파이프 안에 담겨있던 원유와 나프타가 유출됐고 기름띠가 수십km 떨어진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와 경남 남해까지 확산되는 등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치열한 책임공방
20여년 전인 1995년 7월23일에는 여수시 남면 소리도 동쪽 8km 지점 해안에서 GS칼텍스(당시 LG정유) 기름을 적재한 유조선이 태풍으로 침몰하면서 5035톤의 원유가 바다에 유출돼 3826ha의 양식장에 피해가 발생했다. 이후 해안가와 바다 밑바닥에 기름 성분이 스며들어 조개류 양식장은 물론 저서생물에도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당시 피해어민들이 요구한 보상금은 754억원. 하지만 첫 번째 피해보상 타결까지 2년여의 시간이 소요됐으며 실제 보상이 이뤄진 금액도 501억원으로 보상률은 66%에 그쳤다.
당시 침몰한 유조선인 씨프린스호는 키프로스 국적으로 영국 선주상호보험에 배상책임 보험을 가입했다. 또 한국은 국제해사기구 산하 IOPC(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에 가입한 상태였다. IOPC가 주체가 돼 피해 내역을 확인했고 소송전을 거듭한 끝에 피해금액 중 일부에 대해서만 보상에 나선 것이다.
전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은 6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피해보상 범위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태안 기름유출 사건으로 불리는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은 지난 2007년 7월 삼성중공업 소속 크레인선과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태안 앞바다에서 충돌해 1만900톤의 원유가 유출되면서 발생했다. 유출된 기름은 태안 일대는 물론 충청도와 전라남도까지 흘러들어 사고발생 한 달 만에 양식장 5159ha가 황폐화됐으며 태안군·서산시·보령시·서천군·홍성군·당진시(당시 당진군) 등 6개 시·군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되기도 했다.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삼성중공업은 책임 소재와 피해 규모 산정 등을 두고 복잡한 소송전을 벌였다. 피해 주민들이 신고한 피해액은 3조4952억원. 그러나 IOPC가 자체 사정작업을 통해 인정한 피해액은 829억원으로 주민 신고액의 2.3%에 불과했다. 이에 주민들이 관할 대전지방법원에 사정재판을 요구하자 법원이 4128억원을 주민 직접 피해액으로 결정했으나 이마저도 신고액의 12% 수준에 그치면서 주민들은 현재까지 약 7만여건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잇따른 오염 사태…아직도 갑론을박
피해 입증 어려워 배상도 쉽지 않아
삼성중공업이 내놓기로 한 지역발전기금 2900억원의 출연금 배분도 갈팡질팡이다. 전남 3곳과 전북 군산·부안, 충남 보령·홍성 주민들을 주축으로 한 '서해안 유류피해 대책위원회'와 충청권 어민들을 중심으로 한 별도의 대책위가 대립하면서 어떤 기준으로 출연금을 배분할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처럼 환경재난에 따른 법정소송은 배상받기가 쉽지 않다. 특히 물을 통해 확산되는 환경재난은 더욱 그러하다. 피해의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2008년 발생한 포스코 마그네슘 공장 페놀 유출 사건과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사고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 4월 포스코 옥계 마그네슘 제련공장에서 석탄가스 제조공정에서 발생하는 페놀 등 오염물질 다량이 누출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줬다. 페놀원액을 보관하는 저장시설 연결배관 부위가 파손되면서 발생한 사건으로 오염물질 15톤 가량이 공장 인근 주수천과 바다로 유입됐다. 논란이 커지자 포스코는 지난해 10월 약 30억원을 투입해 재발방지 및 악취 발생 방지를 위한 설비 개선 사업을 추진하고 약 70억원을 추가로 들여 이미 설치되어 있는 장비를 개선하고 석탄가스 연료를 LNG나 혼합가스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 측은 또 페놀 유출 피해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발생한 주민 피해에 대해 보상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지만 포스코와 주민 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타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91년 3월 발생한 낙동강 페놀오염 사건은 구미공단 두산전자에서 페놀원액이 파손된 파이프를 통해 낙동강으로 유입됐고 정수장에서 사용한 염소와 페놀이 반응해 클로로페놀을 생성, 이 물을 마신 주민들은 두통과 구토 증세를 보였다. 두산전자는 조업정지 처분을 받았으나 사고가 단순 과실일 뿐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20일 만에 조업 재개가 허용, 재개 5일 뒤인 4월22일 페놀탱크 송출 파이프의 이음새 부분이 파열되어 또 다시 페놀원액 2톤이 낙동강에 유입되는 2차 사고가 일어났다. 결국 두산그룹 회장이 물러나고 환경처 장·차관이 인책·경질됐으나 피해를 본 1만3000여명의 주민들에 대해 이뤄진 배상 규모는 요구액에 미치지 못했다.
책임회피 급급
이번에 발생한 GS칼텍스 여수 기름유출 사건은 해양수산부가 "GS칼텍스가 선보상하도록 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GS칼텍스가 1차 보상을 하고 유조선사에 추후 민사소송을 통해 구상권을 행사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GS칼텍스 측이 "해수부의 일방적인 입장이다. 우리도 피해자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이번 사고가 유조선에서 유출된 사고가 아닌 송유관 파손사고여서 IOPC 적용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도 불투명해 갈등이 예상된다.
한종해 기자 <han10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