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순방 징크스’ 왜?

2014.02.05 11:23:56 호수 0호

해외만 나가면 대형사건 ‘펑펑’

[일요시사=사회팀] 최근 ‘카드사태’와 ‘AI’가 확산되면서 어지러운 형국을 맞고 있는 가운데, 일명 ‘순방 징크스’가 어김없이 찾아왔다. 대통령이 해외출장을 가면 국내가 시끄러워진다는 것. 실제로 대통령이 외교무대에 설 때 마다 초대형 악재들이 펑펑 터졌다. 대통령이 해외만 나가면 사고가 터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순방만 다녀오면 국정지지도가 상승한다. 큰 폭은 아니지만 순방 전보다 높은 수치를 보인다. 이번 인도·스위스 순방도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24일 ‘갤럽’ 주간 정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 대통령이 인도·스위스 순방을 다녀온 뒤 54%의 응답자가 직무수행도를 묻는 질문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37%는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2% 포인트 올랐다.


우연? 필연?


지난달 박 대통령이 새해 첫 해외순방을 나섰다. 8일 간 인도와 스위스를 방문하며 경제외교에 집중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주특기로 자부하는 ‘창조경제’를 위해 스위스 경제구조를 벤치마크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아시아 거대 시장 인도에서는 현지에 진출한 포스코 등 우리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했다.

마지막 일정인 다보스포럼에서는 개막기조연설을 통해 규제를 확 풀겠다며 한국 투자확대를 권유했다. 박 대통령은 “제가 직접 주재하는 규제개혁장관회의를 통해 꼭 필요한 규제가 아니면 모두 풀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럼에 이어 퀄컴·아람코 등 유명기업 CEO들과 잇따라 만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으로 미소를 띠고 있을 때, 국내 상황은 엉망이 됐다. 대통령의 외교무대 뒤에서는 금융정보유출 사태와 AI(조류인플루엔자) 확산 같은 초대형 악재가 터졌다.


우선 AI의 경우 철새인 가창오리가 감염원으로 지목되면서 방역을 실시했지만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어 장기화가 우려된다. 또 금융정보유출 사건과 관련해 야당은 국회 청문회와 국정조사까지 염두에 두고 있어 거대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이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공약인 ‘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 공약을 여당에 떠넘기는 방식으로 사실상 고개를 돌린 데 대한 반발 역시 거세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원외 당협위원장들에게 선물한 ‘박근혜 시계’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인 것도 위 사건들과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사건들이 제대로 수습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의 국정관리 능력 부재론 등이 국정 운영에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렇듯 ‘순방 징크스’가 새해에도 이어지고 있는 상태다. 대통령이 나갔다 하면 시끄러워지는 정국. 과연 이번뿐일까.

박 대통령은 지난 한 해 동안 총 9개국을 방문했다. 국제기구(EU)까지 포함하면 총 10번 해외로 나갔다. 일정은 다자정상회의 5번과 G20(Group of 20:선진7개국·EU의장국·신흥12개국) 정상회의,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등이었다.


인도·스위스 떠나자…카드사태에 AI 확산
외교무대 설 때마다 초대형 악재들 터져


지난해 5월 박 대통령은 미국을 공식 방문했다. 당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방문길에 동행했다. 윤 전 대변인은 방미 도중 성추행 사건으로 전격 경질됐다. 순방 성과는 증발하고 청와대 얼굴에 먹칠만 했다. 윤 전 대변인은 칩거 중이며, 현재 수사는 끝난 상태로 곧 발표를 앞두고 있다.

이어 6월에는 중국을 다녀왔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했다. 박 대통령 출국 직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회의록 공개 명분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서해 북방한계선) 포기 발언 논란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회의록 논란은 일파만파 번져 박 대통령이 귀국한 이후로도 수개월간 ‘회의록 정국’이 지속됐다.

9월에는 러시아와 베트남으로 향했다. 그리고 30년 만에 ‘내란 음모’가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면서 국정원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이 파묻혔다. 채동욱 전 검찰청장의 혼외아들 논란까지 더해져 여야 간 대립은 극심한 혼란으로 치닫았다.




10월도 이변은 없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 다녀온 박 대통령은 기초연금 공약 파기 논란으로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하지만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를 반대하며 사표를 던진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이른바 ‘항명사태’로 박 대통령의 이미지에도 흠집이 생겼다.


11월에는 프랑스, 영국, 벨기에, EU(유럽연합) 등 유럽순방길에 올랐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박근혜는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부정선거 규탄 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프랑스 에펠탑과 루브르 앞에는 한국인 유학생과 동포들이 플래카드를 걸고 규탄시위를 벌였다.

박 대통령의 ‘순방 징크스’는 새해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복잡한 정국을 ‘외교 이미지’로 만회하려 하지만, 혼란스러운 정국은 변함이 없다. 이러한 징크스에는 불가항력적인 문제가 원인이 된 적도 있었지만 청와대와 정부가 정국 혼란을 일으킨 당사자인 경우도 있었다.

집권 첫해인 지난해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순방 징크스가 집권 2년차에도 여지없이 발목을 잡은 셈.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심이 출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단순 징크스?


한편, 전 대통령들의 징크스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순방 징크스에 시달렸다. 지난 2011년 10월 미국 국빈방문 직전에 내곡동 사저 사건이 터지며 방미 성과를 덮어버렸고 임기 중 네 번째 특검으로 번졌다. 지난해 1월 중국을 방문했을 땐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이 불거져 레임덕을 가속화시켰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2003년 노 전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 청와대로 전화를 걸어 화물연대 운송 거부 사태에 대해 알아보려 했지만 전화를 받은 사람이 없었다. 2006년에는 이해찬 총리가 ‘철도파업 중 3·1절 골프 파문’으로 사의를 표명하면서 아프리카로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불운을 피할 수 없었다. 1999년 옷로비 사건을 비롯해 간첩선 사건과 한일어업협상 비준동의안 파동, 불법대출 사건 등으로 정국이 시끄러웠다. 김 전 대통령 러시아 순방 땐 손숙 환경부 장관이 러시아 공연 무대에서 돈 봉투를 받았다는 이유로 한 달 만에 사퇴하기도 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통령 해외순방 최다 보좌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길에 거의 개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 총수 중 가장 활발한 사절단 활동을 보여준 것이다. 박 대통령의 새해 첫 순방길인 인도 방문까지 동행하며 총 5번째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현 회장은 유럽 순방 일정만 제외하고는 모두 참석하며 대기업 총수로서는 가장 많이 참석했다. 유럽 일정의 경우 유망 중소·중견기업들이 한-EU FTA를 활용해 유럽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한 자리여서 동행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현 회장이 여성기업인을 대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명감으로 대통령의 순방길에 동행한 것으로 분석하는 시각도 있다. 박 대통령이 같은 여성인 현 회장을 챙기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함께 나온다. 일각에서는 현 회장의 외삼촌인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의 영향력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후문도 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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