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소탐대실’ 푼돈 아끼려다 수억원 날려
정곡 찌르자 도둑 제발 저린 듯 변명
이 사실을 알게 된 오 선배는 길길이 날뛰며 죽일 놈 살릴 놈하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러고선 또 다시 나에게 매달리며 부탁했다.
나는 흥분한 오 선배를 설득해서 당장에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말했다.
“선배님, 우선 당장에 토지 명의 이전 문제부터 해결합시다. 어서 등기비용을 지불하고 이전을 받는 게 중요합니다.”
죽 쒀서 개 준 꼴
화가 난 오 선배는 마지막으로 박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비용을 지불하라고 재촉했다. 허나 박 사장은 돈이 마련되는 대로 지급해 주겠다는 말뿐이었다. 일이 점점 더 꼬여 감을 느꼈는지 그때서야 어쩔 수 없다는 듯 오 선배가 마지못해 법무사에 비용을 입금했다. 그러나 산 넘어 또 산이었다.
법무사에서 법원에 등기신청을 위해 최종 등기부등본을 발급해보니, 박 사장과의 등기비용 문제로 시간을 끄는 며칠 사이에, 추가로 사채업자들로부터 근저당설정이 2건이나 되어 있고, 채권 가압류가 수억원이나 돼 있는 바람에 명의 이전해도 별 이득이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는 것이었다.
오 선배는 황당한 얼굴이 되어 다급히 나를 찾아와서는 한탄하듯 말했다.
“아니 임 이사, 박 사장 그놈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는가. 응? 나는 그래도 그놈을 믿고 그 많은 돈을 빌려주고 좋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어떻게 그 건축물과 대지를 모두 다른 놈들한테 넘겨줄 수가 있단 말인가?”
오 선배가 들고 온 등기부등본을 보니 불과 일주일 사이에 추가로 4건이나 설정과 가압류가 되어있어, 죽은 자식 뭐 만지는 격이 되어 있었다.
나는 박 사장보다 오히려 오 선배에게 속이 뒤틀렸다. 등기비용 수백만원을 아끼려다가 결국 수억원을 날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유부단한 박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그야말로 죽 쒀서 개 준 꼴이었다.
그나마 한 가닥 희망이라면 건축물을 이전받은 사람이 제3자가 아니고, 건축업자인 추 사장 부인이라는 점이었다. 추 사장이 부인 명의로 이전해 놓았다는 건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자의 명의를 빌려 신탁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고 있는 오 선배에게 위로하며 말했다.
“선배님,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마지막 수를 써야 합니다. 일이라는 게 내 뜻대로 움직여지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제 한 번의 기회를 붙잡고 한판 승부를 내야 합니다. 만일 제 말을 듣지 않으면 두 번 다시 기회가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보게. 내가 이제 무슨 수로 자네 말을 거역하겠나. 독약을 마시라 해도 마실 판이네.”
“일단 건축업자 추 사장이 부인 명의로 이전한 것을 역이용 해보자는 겁니다. 어쨌든 무언가는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내 말에 오 선배가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가?”
“선배님께서 지금 곧바로 박 사장을 만나 난리를 치면서 이번 행위에 대해 배임행위라고 하며 형사고소 하겠다고 강력하게 항의를 하세요. 단 건축업자 처 명의로 이전한 것은 절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됩니다. 내가 알고자 하는 건 박 사장이 추 사장 부인에게 명의를 넘겨준 사해행위를 밝히기 위함입니다. 우리 의도가 미리 발설되면 또 다른 장난을 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 후에 내일 중으로 무조건 박 사장과의 면담을 주선해주세요.”
나는 오 선배에게 더 이상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기 위해 단단히 일러 주었다. 그 역시 내 말을 듣지 않고 일이 꼬인 걸 아는지라 걱정 말라며 두 번 세 번 안심을 시켰다.
이튿날 오후, 오 선배와 함께 박 사장을 먼저 만났다. 막상 박 사장을 대하자 나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장난을 쳤다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 괘씸하고 화도 치밀어 올랐다. 따끔하게 한 마디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대의를 위해 내색치 않고 조용한 톤으로 부드럽게 대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박 사장, 아니 동생, 어떻게 된 거야. 나는 그래도 동생을 믿고 맡겼는데, 이건 좀 심한 거 아니야?”
“이사님,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법무사 비용이 없어 구하던 중에 어떻게 알았는지 사채업자들이 찾아와 설정을 해달라고 하고, 또 건축공사비를 받지 못한 하도급 업자들이 눈치를 채고 가압류를 한 것 같습니다. 에이, 그냥 돈이 있었으면 바로 등기이전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오 선배를 힐긋 쳐다보며 원망의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화가 난 오 선배는 “가압류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저당권까지 추가로 해준 이유는 뭐냐?”고 따졌다. 그제야 박 사장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오 선배를 제지하면서 박 사장에게 다시 물었다.
“이보게, 동생. 다 좋은데 건축업자 추 사장 부인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잖은가? 그런데 왜 그 부인 명의로 공사현장 건축물을 넘겨줬느냐 이 말이네.”
정곡을 찌르자 박 사장은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내 눈길을 피하며 변명하듯 말했다.
“저하고 추 사장 부인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요. 추 사장이 공사대금과 오 사장님에게 보증선 것을 피하는 것이 좋을 거 같다고 해서, 자신의 처 이름으로 하자고 하여 동의서를 작성해 명의를 이전해주게 된 것입니다.”
“그래? 그 심정이야 이해하네. 한데 이미 법무사에 가서 매매계약서까지 작성하고 인감과 도장까지 찍은 상태에서, 제3자에게 넘겨주거나 담보를 제공해주어 재산권을 침해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겠어?”
내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 선배가 인상을 쓰며 협박하듯이 말했다.
“박 사장! 당신 말이야! 내일 당장 고소할거야. 두고 봐!”
나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오 선배를 만류하며 박 사장을 향해 엄하게 말했다.
“뭐 그렇다고 오 선배께서 고소를 반드시 하겠다는 것은 아닐세. 다만 형사적인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해행위혐의로 민사소송은 할 것이네. 그렇게 되면 그 추 사장도 별 이익이 없지 않겠나? 지난번에도 내가 말했다시피, 저 물건을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면 박 사장은 장래 어떠한 보장도 받을 수가 없지 않겠어?”
“예, 실은 저도 이사님 말씀을 듣고는 그렇게 하는 것만이 쌍방 모두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끌다보니 옆에서 자꾸 협박하듯 해서 저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