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라는 비극의 현장에서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이들이 정작 자신의 무너지는 마음은 돌보지 못한 채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참혹한 기억에 갇힌 채 국가의 보호망 밖에서 홀로 싸우던 ‘민간 구조자’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재난 후유증 관리 체계에 대해 다시 한번 뼈아픈 경종을 울리고 있다.
30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29일 오후 12시 무렵, 경기도 포천시 왕방산 중턱에서 30대 남성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19일 가족과 연락이 끊긴 지 열흘 만의 비보였다.
A씨는 이태원 참사 당일인 2022년 10월29일, 해밀턴호텔 인근 골목에서 주점을 운영하던 평범한 상인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그는 상인이 아닌 ‘구조자’였다. 아수라장이 된 골목에서 쓰러진 피해자들을 직접 업어 나르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며 현장을 지켰던 이른바 ‘구조 의인’이었다.
이에 행정안전부 이태원참사피해구제심의위원회는 지난해 9월, 그의 헌신과 그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인정해 그를 ‘이태원 참사 피해자’로 공식 인정했다. 하지만 피해자 인정이라는 행정적 절차는 그의 삶을 끝내 구원하지 못했다.
참사 이후 A씨는 극심한 우울증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렸다. 여기에 참사 이후 급격히 침체된 이태원 상권의 여파로 운영하던 가게마저 적자가 누적돼 지난 2024년 결국 폐업에 이르렀다. 의로운 행동을 한 상인에게 돌아온 것은 지독한 악몽과 무거운 생활고라는 이중고였던 것이다.
주변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실종 직전까지도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구조 활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스스로 삶을 등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과 8월에는 참사 현장에서 사투를 벌였던 소방대원들이 잇따라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참혹한 현장 수습 과정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심리 상담을 받고 휴직까지 했으나, 끝내 그날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최근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숨진 소방관 2명을 참사 희생자로 분류하고 조사 개시를 의결했다. 구조 활동과 사망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조사해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겠다는 취지다. 이로써 특조위가 관리하는 희생자는 161명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제복을 입은 공무원조차 트라우마로 인한 공무상 재해 승인이 까다로운 현실에서, A씨와 같은 민간 구조자들은 아예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참사 당시 현장에 있던 소방관이나 경찰은 기관 차원에서 최소한의 모니터링이라도 이뤄지지만, 상인이나 주민 등 민간 구조자들은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국가가 이들의 존재를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정부의 심리지원 체계가 지닌 ‘수동성’의 한계는 명확하다. 실제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미화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관련 심리지원 건수는 2022년 5329건에서 2023년 2059건으로 줄더니, 지난해 7월 기준으로는 단 35건에 불과했다. 참사 첫해와 비교하면 무려 99%나 급감한 수치다.
이를 두고 고통을 겪는 이들이 사라졌다고 해석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정부의 적극적인 발굴 의지가 꺾였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한 재난 심리 전문가는 “참사 초기에는 집중적인 관심이 쏟아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지원 예산과 인력이 줄어들며 ‘찾아가는 서비스’가 중단된다”며 “정작 심각한 PTSD는 참사 발생 한참 뒤에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현재의 단기적 지원 방식으로는 이를 막기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트라우마의 발현 시점이 불확실함에도, 정부가 설정한 ‘피해자 신청 기한’은 더 큰 문제로 꼽힌다. 당초 정부의 피해자 신청 기한은 특별법 시행 후 2년 이내인 올해 5월20일까지였다. 다행히 지난 2월 개정된 이태원참사특별법은 이를 연장해,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종료 후 6개월 이내인 내년 3월15일까지로 시한을 늦췄다.
하지만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처럼 기한을 두고 피해자를 가려내는 방식은 트라우마의 본질을 외면한 행정 편의주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트라우마는 교통사고로 인한 골절처럼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외상이 아니다.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의 잠복기를 거쳐 서서히 일상을 갉아먹거나, 특정 ‘트리거’(Trigger)를 만났을 때 폭발하듯 발현된다.
참사 당시 자신의 고통을 인지하지 못한 채 타인을 구하는 데 집중했던 의인들, 혹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해 억지로 감정을 억눌러온 생존자들일수록 기한 내에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규정하고 국가에 신고하기란 쉽지 않다.
만약 내년 3월이라는 기한이 지난 뒤에야 뒤늦게 PTSD를 자각하거나 억눌러 온 우울증이 터져 나오는 이들은 법적으로 ‘피해자’ 지위를 얻지 못하고 국가의 지원 체계에서 완전히 배제될 위험이 크다. ‘언제 아플지 미리 예고하고 기한 내에 등록하라’는 식의 행정 자체가 모순인 셈이다.
이 같은 한계는 선진국의 사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월드 트레이드 센터 건강 프로그램(WTC Health Program)’을 통해 대응 인력과 목격자, 지역 주민 등 12만여명을 2090년까지 장기 추적 관리하고 치료를 지원하고 있다.
재난 현장의 목격자와 구조자들이 느끼는 죄책감이나 낙인 때문에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특성을 고려해, 신청 기한을 두지 않고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 핵심이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전날 논평을 통해 숨진 상인 A씨를 깊이 애도하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이들은 “참사 당시 수많은 지역 상인들이 두 팔 걷고 피해자 구조에 나섰다”며 “상인들 다수가 참사 트라우마에 더해 지역 상권의 침체로 경제적 어려움까지 겹쳐 고통을 호소해 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로운 일을 했음에도 지난 정부에서는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치유와 공동체 회복을 도외시했고 그 결과 모든 어려움을 상인들 개개인이 감내해야만 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참사 현장에서 희생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헌신했던 지역사회 상인과 주민을 포함한 모든 구조자가 개별적으로 져야 했던 심리적, 정서적 트라우마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단체는 “이제라도 지역 상인과 주민 등을 포함해, 구조자들과 목격자들의 트라우마 치유와 회복을 위해 정부의 폭넓고 빠른 지원 등 적극적인 조치가 절실하다”며 “끝나지 않은 참사의 고통이 더 깊어지지 않도록 하는 체계적인 조치들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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