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고의나 중과실이 없는 필수의료 행위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을 면제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국민의 재판청구권 침해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리적 주장만으로는 필수의료가 처한 처참한 현실과 사법 리스크가 초래한 연쇄 반응을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법조계가 형사 처벌 특례에 반대하는 표면적 이유는 피해자의 권리구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법조 시장의 구조적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형사 처벌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이 많아질수록 법률시장도 확대된다.
결국 더 많은 의사를 형사 법정에 세워 재판을 늘리자는 논리가 과연 국민의 권리 보호만을 위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법 리스크가 필수의료를 어떻게 궤멸시키는지 보여주는 가장 극명한 사례는 바로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이다. 2017년 발생한 이 사건으로 해당 분야의 권위자인 교수를 포함한 의료진이 포승줄에 묶여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비록 4년여의 처절한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이미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평생을 신생아 살리기에 헌신해 온 전문가는 범죄자 낙인이 찍히고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이 과정을 지켜본 의료계 전체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사건의 후폭풍은 법정이 아닌 진료실에서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사건 직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망률은 유례없는 속도로 폭감했다. 2019년 80%대였던 확보율은 불과 몇 년 만에 10%대로 곤두박질쳤으며, 이른바 ‘소아과 오픈런’이라는 사회적 비극의 시발점이 됐다.
최선을 다해도 예기치 못한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구속되고 재판받아야 한다면, 그 누구도 자신의 생애를 걸고 사지로 뛰어들지 않겠다는 강력한 거부의 몸짓이다. 법조계가 수호하겠다는 그 ‘재판청구권’이 정작 국민들이 아이를 데리고 갈 병원 자체를 없애버리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필수의료 보상 인상 역시, 높아진 수가가 다시 소송 비용과 변호사 선임료로 흘러 들어가는 구조를 전제로 한다면 근본 해법이 되기 어렵다. 현재 필수의료 기피의 핵심은 낮은 보상만이 아니다. 언제든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의료진을 위축시키고 있다.
고난도 진료를 행한 의사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면, 어떤 경제적 유인책으로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필수의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법적 위험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필수의료 수가를 대폭 인상해 위험을 감당하게 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한국의 인구 구조와 건강보험 체계를 함께 고려해야 할 문제다. 필수의료 수가를 크게 올리려면 건강보험료 인상이 뒤따를 수밖에 없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더욱이 생산가능인구는 줄고 고령 인구는 빠르게 늘고 있다. 이런 초고령사회에서 고비용 구조를 전제로 한 의료 체계를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국가 재정과 건강보험 재정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수가 인상을 요구하면서 소송의 문을 넓게 열어두자는 주장은 사회적 자원을 비효율적인 분쟁으로 소모하자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재판청구권은 존중돼야 하지만 그것이 필수의료 현장을 과도한 사법 리스크의 소용돌이로 몰아넣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의료사고의 해법을 형사 처벌과 소송에만 의존한다면, 그 비용은 결국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분별한 형사 처벌을 자제해 의사들이 소신껏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법조계 역시 직역의 이해를 넘어, 한정된 재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해 필수의료 체계를 지킬 것인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전문직의 수익 보전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생태계를 지키는 일이다. 필수의료 의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후적인 ‘무죄 판결’이 아니라,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는 ‘법적 안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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