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스무명이 넘는 노동자가 불길 속에서 사망했다. 대부분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행을 결심한 이주노동자들이었다. 죄의 무게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조금씩 덜어졌다. ‘모든 생명의 무게는 같다. 하지만 어떤 생명의 무게는 다른 생명보다 가볍다.’
2024년 6월24일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에서 리튬 배터리가 폭발해 발생한 화재로 23명이 사망했다. 부상자 9명까지 포함하면 3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온 참사였다. 사망자 23명 가운데 18명이 이주노동자(중국 17명, 라오스 1명)로 확인됐다.
2주기
지난해 6월24일 피해자의 유족들이 아리셀 공장에 모였다. 이들은 이날 아리셀 참사 1주기 추모 위령제에서 박순관 아리셀 대표 등에 대한 엄중 처벌을 요구했다. 당시 김태윤 피해자가족협의회 공동대표는 “20차례 재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사고 책임자인 박순관 등은 아직도 아무런 죄가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면서 “너무나 분노하고 억울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같은 해 9월 수원지법 형사14부는 중대재해처벌법(산업재해치사) 및 파견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박 대표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 시행 이후 나온 최고 형량이다. 또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및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박 대표의 아들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에게도 징역 15년 및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박 대표는 아리셀 설립 초기부터 경영권을 행사해 왔고 이 사건 화재 때까지 주요 사항을 보고받고 개별 사안에 업무 지시를 내리는 등 명목상 대표이사가 아닌 사업 총괄 책임자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와 박 본부장 등이 파견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하지 않고 위험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장에 설치해야 하는 비상구나 비상 통로를 이용하기 어렵게 유지한 점을 모두 인정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도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리튬 전지는 한번 발화되면 소화가 매우 어려워 화재가 일어나면 급히 피신해야 한다. 그렇기에 리튬 전지 작업장은 1층에만 마련하는 게 지구촌 상식”이라며 “아리셀은 작업장을 2층에 마련했고 (그곳에) 이주노동자를 집중 배치했다”고 지적했다.
또 1심 재판부는 아리셀 참사가 ‘인재’라고 못 박았다. 예측 불가한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언제 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기업이 근로자의 안전․보건에 관한 부분에 비용을 최소화해 이윤을 극대화하다가 막상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막대한 자금력으로 유족과 합의해 기업가가 선처를 받게 되는 선례가 많다”며 “이런 악순환을 뿌리 뽑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산업재해 발생률이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의 판결 내용은 항소심에서 감형 사유로 등장했다. 수원고법 형사1부는 지난 22일 박 대표 등의 항소심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일부 혐의가 무죄로 뒤집혔고 유족 모두와 합의한 점 등이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 총괄본부장도 징역 7년 및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들 모두 1심 선고(징역 15년)의 절반도 되지 않는 형을 받은 셈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박 대표를 중처법상 경영책임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비상구 설치 의무 등에 대해선 1심과 판단이 달라졌다.
1심에서 15년, 2심 4년
유족 “중처법 왜 있나”
재판부는 “안전보건규칙 제17조는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과 작업장이 있는 건축물 자체에 비상구를 설치할 것을 규정하고 있을 뿐 층별로 비상구를 설치하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이 사건 공장 3동 2층에도 별도 비상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확장 해석”이라고 판시했다.
비상구 설치 의무가 없는 이상 비상구와 비상 통로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유지해야 하는 의무도 사라진다. 이 점을 유죄로 본 1심 판단도 뒤집혔다. 유족 모두와 합의한 부분도 영향을 미쳤다. 1심에서 유족과의 합의를 제한적으로만 양형 사유에 고려했던 것과 달리 항소심은 “합의를 양형에 제한적으로 반영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합의한 일부 피해자 유족이 처벌을 탄원하고 있으나 이를 이유로 합의를 양형에 제한적으로 반영할 경우 피고인이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소극적으로 하게 하거나 급기야 이를 포기하게 만들어 오히려 피해자들의 실질적이고 충분한 피해 회복을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들이 기존에 사고가 발생한 부분이나 작업상 안전조치가 필요한 공정에 대해서는 구체적 안전조치를 해와 아리셀 사업장의 위험성을 외면하고 이익 추구에만 몰두했다거나 안전조치를 완전히 방치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화재가 발생한 위치, 화재가 이례적으로 확산된 속도 등 화재의 특수성이 피해자들의 사상에 끼친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항소심 판결에 아리셀 참사 유족을 비롯한 시민단체 등은 강하게 반발했다. 중처법의 존재 의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피해자들의 유족을 대리하는 신하나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오늘 판결은 중처법에 대한 사실상의 위헌 판단”이라며 “이런 사건에서도 징역 4년을 받는다면 법이 있을 이유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도 “명백히 중대재해법을 형해화하는 판결”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의 감형 사유는 오직 합의로, 생계 문제로 민사상 합의가 불가피한 유가족들에게 ‘합의를 했으니 벌을 주지 않겠다’는 것은 법과 원칙, 사회적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법원이 앞장서서 돈 앞에 정의가 없다고 선고한 셈”이라고 꼬집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은 “재판부 스스로 중처법을 무력화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아리셀 참사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 안전을 도외시하고 불법 파견을 일삼고 저임금 이주노동자들을 착취한 대표적인 사례”라며 “이번 판결은 중대재해법을 무력화하겠다는 사법의 폭거이자 사법부 스스로 자기 존재 가치를 부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달성 목사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비상구나 비상 통로를 알려주는 기본적인 안전 교육조차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리튬 전지 생산 작업장을 2층에 마련하고 이주노동자들을 그곳에 차별적으로 배치한 사측의 중대 과실을 가볍게 보고 솜방망이 판결을 한 사법부의 결정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다가오는데…
그러면서 “산재를 일으킨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관행은 산재를 조장하고 증가시키는 큰 요인 중 하나”라며 “중처법은 사업주나 실질적 경영자가 법적 책임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크다. 이후에 중처법보다 더 강한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집행하기를 바란다. 산재를 줄이기 위해 직을 걸겠다고 한 노동부 장관과 정부 그리고 국회의 전향적인 변화를 촉구한다”고 언급했다.
<jsjang@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