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신중하고 유연한 통화정책 운용을 통해 물가안정과 금융 안정을 도모해 나가겠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1일 취임식에서 각오를 밝혔다. 그가 인사청문회 당일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첫 후보자라는 오명은 벗은 셈. 신 총재는 취임 후 숨 고를 틈도 없이 곧장 중동발 3고(고유가·고금리·고환율) 위험성이라는 시험대로 자리를 옮겨갔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와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국제결제은행(BIS) 경제보좌관 겸 통화경제국장.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까지도 달고 있던 이름표다.
신 총재는 40여년간 해외 경제학계와 국제기구 등을 거치며 쌓은 명성과 이력, 거시경제와 통화정책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로 지목됐다. 통화정책 수장으로서 지녀야 할 전문성과 경제 정책 방향성에서는 대체로 긍정 평가가 나온다.
탁월한
국제 감각
이재명 대통령은 인사청문 요청 사유서에 “국내외 금융·경제 상황에 대한 뛰어난 통찰과 통화정책 등 거시경제 정책 전반에 대한 이해, 탁월한 국제 감각을 모두 갖추고 있다”며 “물가안정과 금융 안정을 통해 국민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데 적임자”라고 지명 이유를 적었다.
이규연 대통령 비서실 홍보소통수석은 신 총재가 “학문 깊이와 실무적 통찰력을 모두 갖춘 국제금융과 거시경제 분야 세계적 권위자”라며 “중동 사태로 인해 국제 경제에 불확실성이 더 커진 상황에서 물가안정과 국민 경제 성장이라는 통화정책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신 총재는 2009년 이명박정부 시절 국제경제보좌관으로 일한 이력을 지녔다. 당시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였으며 통화정책 전문가로 통했다. 국제경제보좌관은 수석비서관과 비서관의 중간급으로 당시 청와대 직제개편 때 신설됐다.
신 총재를 두고,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사 교수 애덤 투즈(Adam Tooze)는 “BIS 수석 경제학자이자 ‘거시 금융론(Macro finance)’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가장 탁월한 사상가”라고 적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를 다룬 세계적 베스트셀러 <붕괴(Crashed)>에서다.
투즈는 신 총재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줬어야 한다고도 했다. 2022년은 벤 버냉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게 그 상이 돌아갔던 때다. 투즈는 당시 블로그에 “진정으로 현대 국제금융 시스템의 역동성과 그것이 실물경제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 경제학자에게 상을 주고 싶었다면” 그 상은 BIS 팀과 “가장 두드러지게는 신현송에게 돌아가야 했다”고 주장했다.
신 총재는 지난 2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 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한국 경제를 현 시점에서 진단하고 중점 과제를 꼽았다. 요약하자면, 신 총재호 한은은 CBDC와 예금토큰을 기반으로 프로젝트 한강과 아고라 프로젝트에 방점을 찍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는 취임식에서 우리 경제가 “중동전쟁에 따른 공급충격으로 물가와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고 진단했다. “국제유가가 상승해 물가 상방 압력과 경기 하방 압력이 동시에 증대됐고, 금융시장의 높은 변동성과 금융 불균형 누증 위험도 지속되고 있다”며 “녹록지 않다”고 평가했다.
국내 경제는 “인구구조 변화, 양극화 심화, 부동산시장과 가계부채 문제로 성장 동력이 약화하고 있다”며 “이 구조적 문제가 세계 경제 변화와 맞물려 어떻게 전개될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짚었다.
“오늘날 세계 경제 질서는 지정학적 갈등과 AI 기술 혁명으로 대전환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AI 기술 변화도 언급했다. AI 기술은 “지난 몇 년 사이에 산업 지형을 변화시켰다”며 “경제 성장과 생산성, 노동시장 등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옥스퍼드대 졸업 후 IMF와 BIS 거친 금융통
탁월한 사상가…“버냉키보다 낫다” 평도
이를 토대로 향후 4년간 한국은행이 추진할 중점 과제로 ▲신중하고 유연한 통화정책 ▲금융 안정 강화 ▲지급결제 안정성 유지 ▲경제 구조 개혁 등 네 가지를 들었다. 그중에서도 정부 및 관계기관과 커뮤니케이션을 자주 하고, 지급결제 혁신을 이루겠다고 한 점이 눈에 띈다.
물가안정과 금융 안정을 도모할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높이기 위해 정책 수단을 재점검하고 정부와는 정책 공조를, 시장과는 양방향 소통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급격한 금융시장 변화에 따른 건전성 지표와 시장가격 지표 움직임을 적극 활용해 조기 경보 기능을 강화할 것 역시 다짐했다. 비은행 부문 정보 접근성을 제고하고 금융기관의 부외 거래, 비전통 금융상품 등으로 분석 범위를 확장해 중앙은행이 금융 안정 역할을 강화할 방안을 관계기관과 논의해 나갈 것을 제언했다.
‘원화의 국제화’ 추진과 ‘미래 통화 제도’ 설계 방침에 따른 도구로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와 예금토큰을 제안했다. “프로젝트 한강 2단계 사업을 통해 CBDC와 예금토큰 활용도를 높이고 아고라 프로젝트 등 국제협력을 통해 디지털 지급결제 환경에서 원화 위상을 높여 나가겠다”는 것.
기존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 등으로 화제가 됐던 스테이블코인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15일 인사청문회 때는 CBDC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각각 용도에 따라 역할이 있을 수 있다”고 두 가지 모두 사용할 가능성을 내비쳤으나 취임식에서는 달랐다. 같은 ‘테더(USDT)’라도 기반이 이더리움인지, 트론인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므로 ‘화폐 단일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스테이블코인은 보조 수단 정도로 활용할 가능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프로젝트 한강은 한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시중은행이 협력해 일반 이용자를 대상으로 수행하는 디지털 화폐 실거래 테스트(Pilot Test)다. 1단계는 2023년 10월부터 2025년 8월까지 진행했다. 디지털화폐 및 예금토큰을 제조해 발행, 유통, 환수를 거쳐 폐기되기까지 전 과정 작동 과정을 확인했다.
지난 2월부턴 2단계가 가동됐다. 생체인증, 개인 간 송금 등 시스템 확충을 시작으로 국고금 집행 시범사업 지원, 시중은행과 후속 실거래를 시행하는 데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상용화 기반 마련을 위한 외부 기관 종합 컨설팅도 진행한다.
아고라(Agora)는 BIS와 국제금융협회(IIF) 등이 추진하는 블록체인 기반 국가 간 송금 개선 프로젝트다.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유럽연합(EU), 영국, 일본 등 7개국 중앙은행과 40여개 각국 주요 은행이 참여하고 있다. 한강과 아고라가 연계되면 원화 예금토큰을 글로벌 영역으로 확장해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높은 변동성
불균형 누증
한은 조직 운영도 기존과 달리할 것을 목표했다. 임직원 각각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힘을 쏟겠다고 역설했다. “한국은행의 위상이 제고되는 과정에서 구성원 개개인도 함께 성장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조사 연구와 정책, 현업과 관리 등 전 부문에 걸쳐 성장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고 합당한 처우가 뒷받침되도록 조직 문화와 내부 경영 개선에 꾸준히 힘쓰겠다”고 했다.
신 총재가 취임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이하 재경위)는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두 번씩이나 채택하지 않았다. 그는 한은 총재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청문회 당일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최초 후보자였다.
앞서 재경위는 지난 15일 마련한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이 요구한 신 총재 자녀 자료가 제출되지 않자 보고서 채택을 미뤘다. 쟁점 중 하나는 영국 국적 장녀를 서울 강남 아파트에 내국인으로 불법 전입을 신고했다는 것이었다.
국회 재경위 소속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은 신 총재가 2023년 서울 강남구 논현2동 주민센터에 자필로 제출한 장녀 전입신고서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신 총재가 1999년 영국 국적을 취득해 외국인이 된 장녀를 자신이 보유한 서울 강남구 동현아파트에 전입한 것으로 신고했다는 것이다.
신 총재는 장녀를 외국인으로 해 사는 곳을 등록해야 했지만, 옛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그를 내국인으로 신고했다. 천 의원은 ‘주민등록 또는 주민등록증 등에 관해 거짓의 사실을 신고 또는 신청’하는 행위를 금지한 주민등록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 법에 따르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당시 신 총재가 장녀 전입 사유로 ‘가족과 함께 거주’를 기재한 점도 문제가 됐다. 청문회를 앞두고 그가 “장녀는 5년 전 결혼해 해외에서 독립된 가정을 이룬 상황”이라고 밝힌 부분과 다르다는 지적이었다.
천 의원은 “국회 답변서에는 ‘독립 가정’이라고 했으면서 전입신고서에는 ‘함께 거주’라고 했으니, 둘 중 하나는 명백한 거짓”이라며 “한국 국적자 혜택을 노린 것이 아니라면 의혹 해소를 위해 건강보험 및 출입국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1991년생인 신 총재 장녀는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2021년 9월 캘리포니아에서 결혼했다. 이번 허위 전입 신고는 장녀가 국적 상실 신고를 하지 않아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신 총재는 행정 절차를 잘 알지 못해 국적 상실 신고가 빠졌다고 해명했다. 그의 배우자와 장남이 각각 2011년과 2012년에 이미 국적 상실 신고를 완료한 것과 배치된다.
외국인 부인
외국인 자녀
배우자와 장남 국적 문제도 불거졌다. 신 총재 배우자는 미국 뉴욕에서 출생한 미국 시민권자다. 1996년 영국에서 태어난 장남은 영국 국적이다. 그는 만 18세 이전 한국 국적을 포기해 병역을 이행하지 않았다. 현재는 영국 런던에서 학업 중이다.
신 총재는 “배우자는 한국에 정착해 거주할 예정으로, 향후 국적 회복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며 “자녀들의 국적은 그들의 의사를 존중할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해 달라”고 했다.
보유 자산 중 외화자산이 상당하다는 이유로 우려를 사기도 했다. 지난 13일 신 총재는 청문회 서면 답변서를 제출하며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며 “외화표시 금융자산을 상당 부분 처분했고, 외화자산 비중을 순차적으로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 총재는 본인과 배우자, 장남이 보유한 재산 총 82억4102만원 중 45억7472만원(55.5%)이 해외 금융 자산과 부동산이라고 신고했다. 일각에서는 환율이 상승할수록 원화 환산 평가액이 불어날 수 있는 만큼, 외환 당국 수장으로서 이해충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신 총재는 “이해충돌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며 “모든 정책 판단의 기준은 국민 전체의 이익일 것”이라고 했다. 또 “국내 주식은 매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신 총재는 런던 증시에 상장된 한국 주식 투자 상장지수펀드(ETF) ‘Franklin FTSE Korea UCITS ETF’를 지명 직전 매수했다는 의혹에는 “총재 지명 시기와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다. “한국 증시가 여타국 대비 강세를 보임에 따라 포트폴리오 관리 측면에서 매입해 온 것”이라 말했다.
본인 명의로 보유한 15억900만원 상당의 서울 강남구 언주로 동현아파트(84.92㎡)와 부부 공동명의로 가지고 있는 18억원 상당의 종로구 신문로 디팰리스 오피스텔(198.108㎡), 배우자 명의 2억8494만원 상당의 미국 일리노이주 소재 아파트 등에 대해서도 지적이 있었다.
신 총재는 다주택자 논란이 일자 “공직 후보자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며, 보유하고 있는 3채 중 2채를 매물로 내놨다”고 밝혔다.
청문회 당일 보고서 미채택 첫 사례
여권법 위반·외환 자산으로 ‘시끌’
재경위는 최초 인사청문회 개시일인 지난 15일에서 5일이 지난 20일 신 총재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재경위원장인 국민의힘 임의자 의원은 “대내외 경제 상황이 엄중해 한국은행 총재라는 직위의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많은 위원님께서 공감하시는 부분”이라면서 채택 이유를 설명했다.
임 위원장은 “국적을 상실한 자녀가 대한민국 여권을 이용한 출국 기록이 확인됐고, 대한민국 여권을 재발급받은 적이 있다는 것은 기재토록 하겠다. 그것은 팩트(사실)이기 때문”이라며 논란을 일단락 지었다. 천 의원 의견은 인사청문 보고서에 소수 의견으로 기재됐다.

신 총재는 1959년 대구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현대건설 부사장과 현대종합상사 사장을 지냈다. 아버지가 영국으로 일자리를 옮기게 되자 1968년부터 3년여가량 런던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다. 다시 귀국해 학업을 이은 적도 있으나 아버지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가 1974년부터 4년간 이매뉴얼 스쿨에서 공부했다.
1977년 옥스퍼드대 모들린 컬리지에 PPE전공으로 합격했다. 당시 모들린 컬리지 신입생 2인에게만 수여되는 더미십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1978년에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편입했는데, 한국과 영국 두 군데 대학 ‘이중 학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신 총재는 “입대를 앞두고 한국 문화를 익히고 적응 기간을 갖고자 고려대로 편입학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신 총재는 고려대를 1년 다니고 다음 해인 1979년 8월부터 서울 용산에 자리한 한미연합군사령부에서 영문 타자병으로 복무했다. 입대 직후 고려대에 휴학계를 제출했으나 기한 내 복학하지 않아 1984년 제적 처리됐다. 그는 1982년 3월 전역해 영국으로 돌아가 옥스퍼드대 철학·정치·경제학과에 정식 입학했다.
1985년 특별 최우등(Congratulatory First)으로 학부를 졸업했다. 당해 모들린 컬리지 졸업생 300여명 중 3명에게 수여되는 상이었다. 이후 1988년 옥스퍼드 대학교 너필드 컬리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사우샘프턴 대학교, 옥스퍼드대 너필드 컬리지,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교수로 근무했다. 영란은행 자문, 국제결제은행 자문교수도 담당했다. IMF 상주 연구자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2006년 IMF 연차 총회에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측하기도 했다.
보유 자산
얼마길래…
프린스턴대 휴즈-로저스 석좌교수, 뉴욕·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자문교수 겸 금융자문위원도 맡았다. 2010년 안식년 기간에 청와대에서 국제경제보좌관으로 근무하며 G20 의제 설정에 도움을 줬다. 당시 원화 변동성 제어를 목표로 ‘거시건전성 3종 세트’를 마련했다.
2014년 5월부터는 BIS 경제보좌관 겸 조사국장 겸 수석 경제학자로 일하며 10년 이상 연구를 총괄했다. 비유럽·미국 출신으로는 최초였다. 2025년 1월부터 한은 총재로 지명된 지난 3월까지는 경제보좌관 겸 통화경제국장으로 근무했다.
<younme@ilyosis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