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코리안 드림’ 로이 아지트의 잃어버린 15년

2026.04.06 14:35:19 호수 1578호

“한국에 온 걸 후회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코리안 드림’을 꿈꿨던 20대 이주노동자 청년이 15년 만에 폐병 환자가 됐다. 치료만 받아도 버거운 상황인데, 송사까지 진행 중이다. 하염없이 시간이 흐르는 사이 이 소송은 이제 40대가 된 노동자에게 ‘목숨줄’이 돼버렸다.

“내 골든 에이지(Golden Age)”. 그는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다. 20대 중반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던 청년은 지나가 버린 시간을 골든 에이지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황금 시절을 한국에서 허무하게 잃어버렸다는 뜻으로 읽혔다.

20대 청년
40대 됐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와 법무법인 원곡 등이 준비한 이날 기자회견은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로이 아지트의 산재 인정을 촉구하는 내용으로 진행됐다.

아지트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명문대인 자간낫 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한 뒤 2011년 처음 한국에 왔다. 2016년까지 일한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 한국어능력시험을 치른 뒤 2018년 다시 한국에 노동자 신분으로 들어왔다.

2011년 가구 공장에서 일하던 아지트는 이후 소방설비 제조업체를 거쳐 2021년 농기계 제조공장에 들어갔다. 아지트가 맡은 일은 기계의 금속 표면을 그라인딩 하는 일이었다. 2021년 가슴 통증을 느낀 아지트가 병원을 찾았고 ‘간질성 폐질환’ 진단이 나왔다.

아지트가 걸린 간질성 폐 질환이 그라인딩 과정에서 발생한 쇳가루 등 분진으로 인한 것인지를 두고 소송이 벌어졌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아지트의 산재 신청을 ‘불승인’하면서 사안이 법정으로 가게 된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아지트의 질환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로 ▲2021년 사업장 작업환경 측정 결과, 분진 정도가 유해인자 노출 기준 미만으로 평가된 점 ▲높은 수준의 분진에 노출됐다고 하더라도 근무 기간이 9개월 정도로 누적된 노출량은 적다고 판단되는 점 ▲본국(방글라데시)에서 기침을 많이 했다는 의무기록지 내용과 흡연 경력 등을 들었다.

아지트는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결정에 불복,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아지트의 질병과 업무 간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 2월 법원이 지정한 감정의는 업무상 질환을 인정하는 내용의 결과지를 제출했다. 2021년 이후 5년 가까이 이어진 아지트의 고통에 끝이 보이는 듯했다.

2011년 처음 한국행
2021년 이후 폐 질환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이 재감정을 신청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김달성 목사(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는 “산재 승인이 이뤄지지 않으면 아지트는 살아갈 수 없다.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인데 병원비는 많이 나오는 상황이다. 근로복지공단이 재감정을 신청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아지트는 또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고 한탄했다.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근로복지공단이 변론기일을 앞두고 재감정을 신청한 것은 의학적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재감정 결과가 나오는 데 1년이 걸리는데, 그동안 피해자는 치료도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삶을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아지트는 “가족과 함께 조금이나마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고자 한국에 왔지만 행복하기는커녕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면서 “나는 경기 지역의 한 공장에서 일하다가 폐 기능의 40%를 잃고 힘든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이어 “나는 근로복지공단의 적이 아닌 평범한 근로자일 뿐”이라며 “부디 나에게 무리한 행동을 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같은 날 오후 아지트의 방에서 그를 만났다. 아지트는 서울 용산구의 한 교회에서 살고 있다. 병들고 갈 곳도 없는 그를 주변 사람들이 조금씩 도운 결과였다. 교회에 도착해 아지트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마중 나오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길어지는
소송 문제

아지트가 취재진과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5분 남짓. 다시 그의 방으로 가는 길을 보면서 그 시간이 이해됐다.

좁고 복잡한, 미로에 가까운 길을 한참 걸어가자 집이 나왔고 그 안에 아지트의 방이 있었다. 집 안과 아지트의 방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물건이 있었다. 특히 아지트의 방은 그가 어떻게 누워도 발이 벽에 닿을 듯 좁았다. 안쪽에는 이불이 깔려 있고 선반 위에는 약이 가득했다. 가래 빼는 기구도 보였다.

아지트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지난해 12월에 걸린 감기가 아직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동네 병원에 5번이나 갔지만 낫지 않는다고 울상을 지었다. 아지트는 인터뷰하는 동안 여러 차례 울먹였다. 고국에서의 생활과 현재 처한 상황 등을 이야기할 때는 꽤 긴 시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거듭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아프다고 해도 외면하고 산재 신청을 취소하라고 종용하던 회사의 행태,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과 소송 과정에서의 재감정 신청 등을 말할 때 나온 표현이었다.

아지트는 “그라인딩 작업을 하면 쇳가루가 많이 나오는데 외국인 노동자에게만 그 일을 시켰다”고 주장했다. 또 “마스크를 달라고 해도 주지 않거나 ‘네 돈으로 사라’는 말을 들었다. 숨 쉬기 어렵고 가래가 나오고 기침이 나는데도, 심지어 피가 나온다고 말해도 병원에 보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계단 한 층을 오르는 것조차 힘겨운 지경에 이르자 아지트는 회사에 말하지 않고 병원을 찾았다.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동네 병원에서는 ‘큰 병원에 가야 한다’는 말이 돌아왔고 어렵게 찾아간 큰 병원에서는 ‘빨리 수술해야 한다’는 말이 이어졌다. 수술을 받고 나서도 문제였다. 아지트를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주변 도움에
간신히 연명

아지트는 “병원에서 회사에 전화해 며칠 동안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결국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도움을 받았다. 그 사람이 나를 3일 동안 돌봐줬다”고 전했다. 수술 이후 아지트는 친구 집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김 목사를 만났다.

김 목사는 “아지트가 나를 찾아왔을 땐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다.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찾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몸은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상태였고 마음도 많이 다쳤다. 이후 페이스북에 아지트의 사연을 올렸더니 변호사, 의사, 교회 사람들의 도움이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목사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승인이 나지 않을 것이라곤 생각조차 못했다. 아지트를 치료해 주겠다고 나선 의사 선생님의 연구 결과도 있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신고 8개월 뒤에야 현장 역학조사를 진행했고 사측의 입장만 받아들여 불승인 결정을 내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지트는 “나는 한국의 적이 아니”라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자신을 적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그는 “나는 노동자일 뿐이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 공무원이 되고 싶었다. 그랬는데 나의 ‘골든 에이지’가 여기서 끝나 버렸다. 돈도 없고 몸도 망가졌다”고 눈물을 흘렸다.

아지트는 한국에 대해 양가감정이 드는 듯했다. 한국에 온 것을 후회한다면서도 주변 사람들의 도움에 크게 감사하고 있었다. 그에게 2011년으로 돌아간다면 한국에 올 것이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온 걸 후회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후회한다”고 했다.

근로복지공단 산재 불승인 이어
업무상 연관성 인정 이후 재감정

그러면서도 “김달성 목사님, 교회 사람들, 의사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나는 지금 살아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그래도 좋은 분들을 만나 다행”이라고 말했다.

실제 인터뷰를 마치고 인근의 기사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아지트를 알아봤다. 반계탕을 주문하는 그를 보면서 “아지트가 반계탕을 제일 좋아한다. 여기에 오면 반계탕만 먹는다”고 귀띔했다.

아지트의 젓가락질은 수준급이었다. 그에게 젓가락질에 관해 묻자 “배웠다”고 대답하며 수줍게 웃었다. 닭고기에 마늘을 곁들여 한 그릇을 다 먹은 그는 “사실 이 식당에 자주 오지 않는다”고 작게 말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내가 여기에 오면 돈을 받지 않는다. 그게 미안해서 잘 오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밥을 먹고 돌아가는 길에 아지트에게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뭘 하냐고 물었다. 그는 “한국어 공부도 하고 성경 공부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꾸만 숨이 차서 많은 걸 하진 못한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래를 빼고, 자기 전에 가래를 빼는 데만 수 시간이 소요된다고도 했다. 교회 앞에서 헤어질 때 아지트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고맙다고, 조심히 가라고.

김 목사는 “그래도 아지트는 운이 좋은 경우다. 우리 센터도 그렇고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지 않나. 이런 사례는 만에 하나”라고 한탄했다. 지난 9년 동안 이주노동자와 부대껴 온 그는 각종 산재 사건을 봐온 터였다. 그러면서 “산재 피해를 본 이주노동자의 99%는 어떤 치료도, 보상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듯이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고용허가제
“근본적 원인”

이어 “이주노동자 산재 문제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국가 정책이 이 문제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 그중에서도 이주노동자의 작업장 이동을 제한하는 독소 조항이 사업자와 노동자를 철저한 주종 관계로 만든다. 문제가 생겨도 이의를 제기하는 게 불가능하다. 국가 정책, 제도가 산재를 조장하고 있는 셈”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근로복지공단 입장 “소송 지연 아냐”

근로복지공단은 지난 1일 기자회견 이후 설명자료를 통해 “법원에 호흡기내과 감정을 추가로 신청했는데, 이는 이미 내려진 판단을 뒤집기 위한 것이 아니라 1차 감정에서 해소되지 않은 의학적 쟁점을 보다 충실히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공단은 처분하는 과정에서 직업환경연구원의 조사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판정을 거쳐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받았다”며 “최종적으로 불승인 처분이 적법한지에 대해서는 법원의 판단을 받고 있다”고 했다.

‘쟁점 확인 과정’ 해명

또 “법원 판단이 아닌 감정인 1인의 의견에 따라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공단 행정의 신뢰성에 문제로 여겨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번 소송의 당사자인 근로자에게는 다소 만족스럽지 않겠지만 공단은 재해자의 권리 구제를 외면하거나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소송 절차를 대응하고 있지 않다”며 “원 처분의 근거와 의학적 쟁점을 법원의 절차에 따라 충실히 설명하고 판단 받기 위해 필요한 소송 행위를 수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법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책임 있게 대응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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