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오메가가 시간을 지배하는 방식

2026.02.20 09:05:53 호수 0호

기록은 숫자가 아니라 표준이다

동계올림픽이 열리면 우리는 늘 같은 장면을 본다. 세계기록이 나오는 순간 전광판에 숫자가 뜨고, 그 옆에 어김없이 OMEGA(Ω)가 함께 등장한다. 해설자는 “세계신기록”을 외치지만 화면은 먼저 오메가를 보여준다. 기록의 주인공은 선수지만, 기록의 권위는 시스템에서 시작된다는 무언의 선언이다.



세계기록(World Record)은 국제연맹이 공인하는 숫자다. 그러나 그 숫자가 세상에 태어나기까지는 계측이 필요하다. 0.01초, 0.002초, 때로는 0.001초 차이가 메달 색을 바꾼다. 사람의 감각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찰나를 기계는 구분한다. 그 미세한 경계를 재는 자가 승자를 확정한다.

오메가는 스위스 시계 회사 이름이자 대표 브랜드다. 올림픽 경기에서 오메가는 1932년부터 공식 타임키퍼를 맡아왔다. 거의 한 세기에 달한다. 이 시간은 단순한 계약 기간이 아니다. 반복된 정확성이 신뢰를 만들고, 신뢰가 표준을 만들었다. 브랜드가 장비를 넘어 제도로 변하는 시간이었다.

혹시 오메가는 이제 상징으로만 남은 건 아닐까? 첨단 영상 판독이 대신 기록을 확정하는 시대 아닌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초고속 포토피니시 카메라, 전자 출발 신호, 압력 센서, 광섬유 기반 데이터 전송, AI 판독 알고리즘까지 결합된 오메가의 통합 계측 체계가 경기장에 설치된다.

출발 총성과 동시에 전자 신호가 자동으로 기록을 시작한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은 초당 수만 프레임으로 촬영된다. 눈으로는 동시에 들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카메라는 수천분의 1초 차이를 구분한다. 선수의 몸이 아니라 결승선과 접촉한 첫 지점이 승부를 가른다. 승리는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로 확정된다.

빙상 경기에서는 사람의 눈이 무력하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두 선수의 발끝이 거의 동시에 결승선을 스친다. 관중은 숨을 멈추지만 판정은 지연되지 않는다. 이미 센서가 작동하고, 카메라가 저장하고, 알고리즘이 계산을 끝낸다. 승부는 끝난 뒤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통과하는 순간 이미 계산돼있다.


우리는 “세계기록이 깨졌다”고 말하지만, 더 정확한 표현은 “세계기록이 측정됐다”다. 기록은 존재 자체가 아닌, 측정의 반복과 일관성 속에서만 권위를 갖는다. 만약 계측이 흔들린다면 모든 기록은 주장에 불과해진다. 스포츠가 경기력만큼이나 계측 기술을 발전시켜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간은 자연처럼 보이지만, 스포츠에서의 시간은 설계된 구조다. 언제 시작하고 언제 멈출지, 어떤 기준으로 저장할지, 어떤 단위까지 공표할지 모두 사람이 정한 규칙이다. 0.1초에서 0.01초, 그리고 0.001초로 세분화된 단위는 기술 발전의 역사이자 경쟁의 역사다. 정밀해질수록 승부는 더 냉혹진다.

정확성이 높아질수록 우연은 줄어든다. 동시 불만이 사라지고, 애매함이 줄어든다. 그 대신 차이는 더욱 잔혹해진다. 실제 0.001초 차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메달 색을 바꾼다. 선수는 한계를 다해 달렸지만, 기계는 그 한계를 더 세밀하게 쪼갠다. 기술은 공정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냉정함을 강화한다.

계측 기술은 단순한 보조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경기의 일부다. 출발 센서의 반응 속도, 포토피니시의 해상도, 데이터 처리 지연 시간까지 모두 규정에 포함된다. 공정성은 규칙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규칙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완성된다. 그래서 표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한다.

오메가는 기록을 조작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록을 확정한다.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확정은 해석 이전의 단계다. 무엇이 먼저였는지, 무엇이 빨랐는지를 정하는 권한은 경기의 서사를 바꾼다. 승부의 이야기는 선수의 것이지만, 승부의 결론은 표준의 것이다.

우리는 숫자에 환호한다. 세계신기록은 언제나 전율을 준다. 그러나 그 숫자 뒤에는 수천장의 이미지와 방대한 데이터와 정밀한 알고리즘이 있다. 그 체계가 없다면 기록은 기억에 머물 뿐이다. 체계가 있기에 기록은 역사로 남는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스포츠에서 시간은 동일하게 재어질 때만 공평하다. 같은 장비, 같은 조건, 같은 기준 아래에서 측정될 때만 공정하다. 그래서 표준은 권력처럼 보이지 않지만,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동한다.

결국 기록은 선수의 이름으로 남는다. 그러나 시간은 시스템의 이름으로 저장된다. 우리는 속도에 환호하지만 승부는 표준이 확정한다. 오메가는 오늘도 시간을 재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또 하나의 기준이 되어 다음 경기를 기다린다.

모든 기록에는 두 개의 기호가 있다. 알파(α)는 최초의 기록이다. 누군가 처음으로 선을 넘는 순간이다. 오메가(Ω)는 최고의 기록이다.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끝의 지점이다. 알파가 문을 열면, 오메가는 그 문을 닫는다. 우리는 늘 알파에서 출발하지만, 오메가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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