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이제 대체근무일 고민해야

2026.02.19 08:25:02 호수 0호

휴식권 넘어, 시간 경쟁력 설계할 때

17일은 음력 1월1일로, 한국의 설이자 중국의 춘절이었다. 같은 명절이었지만 명절을 다루는 방식은 달랐다. 중국은 약 95억명이 이동하는 대행렬 속에서 가족을 만나는 잔치를 만들었고, 동시에 거대한 소비와 물류, 관광의 경제 특수까지 함께 계산했다. 쉬는 날이 곧 시장의 시간표가 되도록 설계했다.



중국 정부는 15일(일)부터 23일(월)까지 9일을 공식 연휴로 하는 대신, 연휴 전후인 14일(토)과 28일(토)을 대체근무일로 지정했다. 길게 쉬되, 업무의 리듬이 무너지지 않도록 사전에 시간을 재배치한 것이다. 달력을 전략의 영역으로 끌어온 셈이다.

그래서 중국은 춘절이 끝난 24일(화)이 되면 곧바로 정상 속도가 붙을 것이다. 이미 앞뒤 주말 근무를 통해 비워질 시간을 당겨 채웠고, 복귀와 동시에 생산·유통·수출 등 산업의 스위치가 다시 켜지도록 준비해 두었기 때문이다. 연휴는 길지만, 재가동은 빠르다는 게 중국 당국의 설명이다.

휴식과 생산을 하나의 계획표 안에 넣어 둔 배열 덕분이다.

우리의 설 연휴는 다르게 흘렀다. 공식 휴일은 14일(토)부터 18일(수)까지였다. 그러나 복귀하자마자 다시 주말이 기다리고 있다. 집중할 시간은 짧고, 본격적으로 달릴 구간도 애매하다. 우리는 쉬는 데는 성공했지만 흐름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서 19일 아침 출근길은 낯설 수밖에 없다. 설 연휴 5일 동안 고향 방문이나 여행을 다녀왔던 몸이 갑자기 사무실의 시간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거기다 이틀만 지나면 다시 쉰다는 사실이 마음을 흐트러뜨린다. 설 연휴 후 시작과 동시에 끝이 예고된 구간, 그래서 연휴 후 이틀은 준비만 하다 사라진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회의는 잡히지만 결정은 미뤄지고, 계획은 세워지지만 실행은 다음 주로 넘어간다. 기업의 톱니는 맞물리지 못하고 공회전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손실은 분명히 발생한다.

이 애매한 구간이 오래 반복되면서 우리의 풍경이 됐다. 명절 뒤의 며칠은 원래 비효율적이라는 개념이 관습처럼 굳어왔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생각도 못했고, 대안 논의도 없었다. 시대는 바뀌는데 운영 방식은 그대로였다.

사실 우리는 다른 선택이 존재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긴 연휴를 만들되 그 이후의 업무 흐름까지 함께 설계하는 방식, 쉬는 날과 일하는 날을 하나의 세트로 관리하는 방법이다. 휴식이 끝나는 순간 곧바로 속도가 붙도록 만드는 구조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랫동안 대체휴일을 확대해 왔다. 공휴일이 주말과 겹치면 하루를 더 쉬게 했다. 휴식권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진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야 한다. 권리를 넓히는 데 성공했다면 이제 운영의 방식도 함께 발전해야 한다. 얼마나 더 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쉬고 어떻게 다시 일하게 할 것인가. 휴식과 노동은 분리된 시간이 아니라 연결된 구조기 때문이다.

연휴 후 이틀만 일하고 다시 멈추는 배열은 집중을 만들기 어렵다. 보고 체계도, 영업 일정도, 생산 계획도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시동을 걸었다가 곧바로 브레이크를 밟는다. 달릴 준비를 마칠 즈음 다시 멈추라는 신호가 떨어진다.

이제는 대체근무일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길게 쉰다면 그만큼 몰아서 일할 수 있는 연속 구간을 제도적으로 확보하자는 말이다. 특정 토요일을 근무일로 전환해 흐름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휴식의 질을 높이기 위한 역설적인 선택이다. 흐름이 이어질 때 생산성은 비로소 힘을 얻는다.

여기서 흔히 나오는 반론이 있다. 왜 또 토요일에 일하게 하느냐는 질문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노동시간을 늘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흩어져 있는 시간을 교환해 집중도를 높이자는 제안이다. 총량이 아니라 배열의 문제다. 더 오래 붙잡아 두자는 것이 아니라 더 분명하게 나누자는 뜻이다.

오히려 지금의 구조야말로 체감 피로를 키운다. 쉬었는데도 쉰 것 같지 않고, 출근했는데도 일한 것 같지 않다. 리듬이 깨진 채 오락가락하는 시간이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든다. 애매한 시간이 반복될수록 의욕은 줄고 책임감도 흐려진다.

만약 이번 설에 우리도 중국과 같은 방식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연휴 전후의 토요일을 대체근무일로 돌려 14일(토)부터 22일(일)까지 8일의 연속 휴식을 만들었다면 국민은 이동과 소비, 가족과의 시간을 훨씬 여유 있게 설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업 역시 납기와 생산 계획을 명확하게 조정하며 복귀 첫날부터 곧바로 속도를 올렸을 것이다. 휴식은 더 깊어지고, 복귀는 더 빨라졌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법적 틀이다. 예를 들어 공휴일에 관한 법률에 ‘국가 경쟁력과 업무 연속성을 고려해 정부가 연휴 전후의 주말을 근무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할 수 있다. 노사 협의를 전제로 업종별 탄력 적용을 허용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또 근로기준법에는 해당 근무일을 연장근로로 보지 않고 사전에 휴일과 교환하는 제도로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현장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 휴일을 늘릴 때 만들었던 사회적 합의를, 이제는 재배치의 영역으로 확장해야 한다.

이것은 노동을 더 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흩어진 비효율을 줄이고 집중도를 높이자는 제안이다. 확실히 일하고, 확실히 쉬자는 것이고, 리듬을 설계하자는 요구다. 그래야 휴식은 죄책감이 없고 노동은 억울하지 않다. 사회 전체가 같은 박자로 움직일 수 있다.

우리는 임시공휴일을 만들 때마다 빠르게 적응해 왔다. 항공권도, 물류도, 학교 일정도 금세 새 달력에 맞춰 움직였다. 사회는 생각보다 유연했다. 문제는 언제나 결단이다. 바꾸지 못해서가 아니라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멈춰 있었을 뿐이다.

휴일을 늘리는 데에는 정치적 용기가 있었지만, 근무일을 옮기는 데에는 머뭇거렸다. 환영받는 선택에는 익숙했고 책임을 져야 하는 선택에는 조심스러웠다. 박수는 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운영의 결과에 대한 부담은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대가 달라져도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달력은 인기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다. 표를 얻는 방식으로 시간을 배열하면 효율은 언제나 뒤로 밀린다. 이제 정치가 감정보다 구조를 선택해야 할 차례다. 환호보다 운영을, 박수보다 지속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의 리듬이 흔들리지 않는다.

설 연휴 후 첫날 몸은 돌아왔지만, 마음은 아직 귀경길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메일은 열렸지만, 판단은 다음으로 밀린다. 모두가 시동만 걸고 있다. 출발선에 서 있지만 총성은 울리지 않은 느낌이다. 시간이 흐르는데 속도는 붙지 않는다.

이 시간을 줄일 방법이 있다면 시도할 이유는 충분하다. 연휴 이후 곧바로 달릴 수 있게 만드는 제도, 그것이 대체근무일 논의의 출발점이다. 다시 일어서는 순간까지 명절의 일부로 보자는 관점이다. 쉬는 시간뿐 아니라 복귀의 순간까지 설계해야 진짜 명절이 완성된다.

글로벌 경쟁이 일상이 된 시대에 휴일의 배열은 곧 경쟁력이다. 누군가는 시간을 전략으로 쓰고 있다. 우리 역시 감정의 만족을 넘어 시스템의 효율을 계산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차이가 결국 성과의 격차를 만든다. 달력을 다루는 방식이 국가의 실력을 증명한다.


쉬기는 길게 하되, 일은 몰아서 하자. 흐름을 만들고 속도를 붙이자. 명절 이후 우리가 던져야 할 다음 펀치는 바로 이것이다. 달력을 다시 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우리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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