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내란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사형을 구형했다. 이는 아직 선고가 내려지지 않았음에도 우리 사회의 형벌 감각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형 집행이 수십년째 중단된 나라에서 특검이 최고형을 제시했다는 사실은 법적 실효성을 떠나 강력한 정치적·도덕적 메시지를 던진다.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국가에서 사형 구형은 실질적 처벌의 예고라기보다 ‘가장 강한 비난’의 표현에 가깝다. 문제는 법이 비난의 언어로 작동하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집행되지 않을 형벌을 최고형으로 설정하는 순간, 형벌은 책임을 묻는 제도가 아니라 분노를 관리하는 장치로 변하고, 이는 법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전직 대통령은 중형을 선고받더라도 항소와 상고를 거치며 감형됐고, 정권교체 시점에는 특별사면이나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이는 개인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정치가 반복해 온 구조적 관행이다. 이번 사형 구형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간이 흐르면 무기징역이나 중형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크고, 다음 정권에서는 ‘국민 통합’이나 ‘정치적 부담 해소’라는 명분 아래 석방 논의가 등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형 구형은 실질적 책임을 묻는 형벌이라기보다, 향후 감형과 석방을 전제로 한 상징적 카드에 그칠 뿐이다.
여기서 다시 질문해야 한다. 전직 대통령에게 우리는 무엇을 묻고 싶은가. 개인의 범죄 책임인가, 아니면 헌정 질서를 훼손한 정치적 책임인가. 대통령은 개인이면서 동시에 제도인 만큼, 그가 대표했던 국가 운영의 시간 전체를 감방이라는 공간에 가두는 방식이 과연 성숙한 민주주의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을 일반 중범죄자와 동일한 교도소 체계에 편입시키는 것이 정의의 완성인지, 아니면 정치의 사법화가 낳은 또 하나의 상징적 장면인지 고민해야 한다. 응징의 강도가 민주주의의 수준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책임을 어떻게 남기느냐의 문제다.
이 지점에서 조선의 유배 제도를 떠올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견해다. 조선을 오늘의 민주공화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다만 조선이 권력을 다루는 방식에서 보여준 정치적 계산과 제도적 완충의 지혜는 참고할 가치가 있다.
조선이 온정적인 국가는 아니었지만, 권력을 제거하는 데 있어서는 놀라울 만큼 현실적이었다.
죽일 수 있었던 사람을 죽이지 않았고, 중심에서 배제하되 존재 자체를 말살하지는 않았다. 유배는 처벌이면서 동시에 질서 유지의 기술이었다. 권력을 상실시키되, 제도의 연속성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조선 왕조에서 왕이 유배된 사례는 극히 드물지만, 그 사례는 유배의 본질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뒤 강화도와 교동도로 보내졌다. 반정 세력은 그를 처형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왕을 죽인 정권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피해야 했고, 왕조의 정통성을 형식적으로라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연산군은 살아 있었지만, 권력에서는 완전히 제거됐다. 유배는 자비가 아니라 왕권을 무력화하는 가장 계산된 처벌이었다. 왕을 살려두는 선택은 인간적 배려가 아니라 정치적 기술이었다.
광해군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외교적으로 실리를 추구했지만 지배 이념과 충돌했고, 결국 인조반정으로 폐위됐다. 광해군은 강화도와 제주로 유배됐다. 조선은 그의 정책 노선을 부정했을지언정, 왕이라는 존재를 공개적으로 처형함으로써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
유배는 정치 노선에 대한 단죄였고, 제도를 지키기 위한 절충이었다. 왕을 제거하되 왕정은 유지하는 방식, 이것이 조선 유배의 핵심이었다.
연산군과 광해군은 반정으로 폐위된 후 끝내 복귀하지 못했다. 그 결과 이들은 왕으로서의 통치가 역사적으로 단절된 존재로 남았고, 다른 왕들과 달리 ‘조’나 ‘종’으로 끝나는 묘호를 받지 못했다. 유배는 단순한 신체적 격리가 아니라, 권력과 통치의 시간 자체를 종결시키는 제도적 선언이었다.
이 두 사례를 끌어오는 이유는 조선의 유배가 관대한 처벌이 아니라 가장 정치적인 처벌이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해서다. 조선은 개인의 책임과 제도의 연속성을 분리할 줄 알았다. 그래서 왕을 죽이지 않고, 유배지로 보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사형 집행이 없는 현대 한국에서 전직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하는 방식은 오히려 조선보다 덜 현실적이다. 조선은 살아 있는 권력을 다루는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우리는 집행되지 않을 형벌이라는 상징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상징은 결국 감형과 석방이라는 정치 현실 앞에서 무너진다.
그래서 필자는 제안한다. 조선 유배 제도의 취지를 그대로 가져오자는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전직 대통령에게 적용할 수 있는 별도의 처벌 체계를 법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가칭 ‘헌정 질서 파괴자 유배제’다.
이는 임기 중 또는 퇴임 후 중대한 헌정 질서 파괴가 확인될 경우, 일반 교도소 수감이 아니라 특정 지역에 거주 제한을 명시하고 정치 활동과 공적 발언을 장기간 제한하는 제도다. 예우와 경호를 최소화하고, 국가기록 관리하에 책임을 명시함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이다.
헌정 질서 파괴자 유배제는 가택연금처럼 일상을 유지하게 하는 처분이 아니다. 이는 조선의 유배처럼 권력의 중심에서 물리적으로 분리하는 공간의 처벌이다. 수도와 정치 무대에서 떨어진 한적한 곳으로 보내 공적 발언과 정치적 접촉을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감시가 아닌 단절, 보호가 아닌 퇴장이 이 제도의 본질이다.
이는 결코 면죄부가 아니다. 자유를 제한하되, 인격과 역사 전체를 파괴하지 않는 처벌이다. 무엇보다 ‘중형 선고 후 정권이 바뀌면 풀려난다’는 반복을 제도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응징의 강도를 높이는 대신, 책임의 지속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센 형벌이 아니라 더 정확한 형벌이다. 사형을 구형해 놓고 집행하지 않는 모순, 중형을 선고해 놓고 정치적 판단으로 석방하는 악순환을 끝내야 한다. 조선은 왕조국가였지만, 권력을 다루는 데 있어 지금의 우리보다 더 정교했다.
전직 대통령을 감방에 넣는 것이 정의의 완성은 아니다. 책임을 제도 속에 남기고, 권력을 역사 속으로 보내는 법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사형 없는 국가가 선택해야 할 가장 일관된 해법이다. 헌법 질서 파괴자 유배제 제안은 바로 그 권력의 퇴장 방식을 더 정교하게 제도화하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